SBS '조선구마사' 중국풍 소품·역사 실존 인물 왜곡에 뭇매
전문가 "단순한 역사 고증 문제 아닌 문화 침탈…제작진 책임의식 필요"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드라마의 역사 왜곡 문제가 반복되고 있지만, 이를 사전에 방지할 만한 현실적 대책은 방송사가 자체 심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가 관여할 경우 사전 검열에 해당하며 이는 '표현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중국풍 장면으로 국민적 뭇매를 맞고 있는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와 같은 사례는 시청자의 외면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22일 첫 방송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조선 왕실 역사 왜곡과 중국풍의 의상과 음식, 소품을 사용한 장면이 논란되면서 국민적 분노를 샀다. 양녕 대군이 들고 있는 칼은 중국검이고, 구마 사제에 식사를 대접하는 장면에서는 중국 월병과 왕만두, 피단(삭힌 오리알)이 등장한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조선구마사' 포스터 [사진=스튜디오플렉스, 크레이브웍스, 롯데컬처웍스] 2021.03.25 89hklee@newspim.com |
방송 이후 시청자들은 "아무리 픽션이지만 굳이 역사적인 인물을 왜곡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것도 모자라 국민청원에는 '역사 왜곡 방송물에 대한 법적 제재를 요청한다' 'SBS 방송 승인을 취소해달라' 등의 글도 게재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방송사의 주수입원인 광고 매출에도 영향을 끼쳤다. '조선구마사'에 제작 지원하기로 한 다수의 기업은 광고를 중단하겠다며 등을 돌렸다.
지금까지 사극과 시대극이 방영될 때마다 '역사 고증' 문제가 따라나왔지만, 이번 '조선구마사'가 특별히 국민적 분노를 산 이유는 최근 중국이 한국의 김치와 한복 등을 자신의 문화라고 주장하는 '동북공정' 사태가 심각해지면서다. 한국의 전통 문화를 집어삼키려는 중국의 태세에 맞서려면, 제대로 역사 고증을 한 콘텐츠가 제작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류 열풍'으로 국내 드라마가 해외로 수출되는 상황이 빈번한데, 이번 '조선구마사'와 같은 사례는 한국 문화를 중국 문화로 오해하기 쉬운 콘텐츠로 비친다는 거다. 이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힘을 싣게 되는 셈이다.
결국 SBS와 제작사는 논란이 된 중국풍 미술과 소품, 의상 사용으로 문제가 된 1, 2회차 VOD와 재방송은 수정하고 방영은 한 주 미루기로 했다. SBS와 제작사 측은 "중국풍 미술과 소품(월병 등)과 관련해 예민한 시기에 오해를 불러일으켜 시청에 불편함을 끼쳐 사과드린다"며 "실존 인물을 차용해 '공포의 현실성'을 전하며 판타지적 상상력에 포커스를 두려했으나 예민한 시기에 혼란을 드릴 수 있는 점을 간과했다"고 입장을 밝히며 사건 수습에 나서고 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구마 사제에 식사 대접하는 장면에 등장한 중국 왕만두와 피단(위), 월병 [사진=SBS '조선구마사' 캡처] 2021.03.25 89hklee@newspim.com |
방송계 관계자는 콘텐츠의 역사왜곡에 대한 판단은 정부가 할 수 없으며, 이는 사전 내용심의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정부의 지원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관여하게 되기 때문에 맞지 않는 방법"이라며 "창작은 창작의 영역으로 남겨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간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사전 심의는 못하게 돼 있다"며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추후 '조선구마사'와 같은 논란이 반복되는일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가장 큰 문제가 광고주가 자본을 다 뺐기 때문에, 방송사 입장에선 '조선구마사'와 같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제작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더 큰 문제는 이런 작품들이 해외 시장을 갖고 있는 넷플릭스로 옮겨가는 건데, 이는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면서 "방송사는 자전기능을 갖추려고 하는데 일반제작사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정덕현 문화 평론가도 정부의 대응시 '한중갈등'을 표면화 할 수 있기 때문에 콘텐츠의 역사 고증 문제는 방송사가 심사숙고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언급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이제 드라마의 역사 고증은, 비단 역사 논란 문제만이 아니라 문화 침탈 부분이다. 이는 사극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넷플릭스와 중국의 아이치이 같은 OTT 상에서 한국 콘텐츠가 서는 위치가 결정되기 때문에 작품을 만들 때, 제작진은 책임의식을 기본적으로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정 평론가는 또 "판타지 사극이나 퓨전사극일지라도 시대상 고증은 필요하다"며 "이야기는 허구라하더라도 조선인들이 어떤 걸 먹었고 입었고 살았던 것과 같은 것은 중요한 부분이며, 역사속 인물을 허구로 다루는 부분도 굉장히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더욱이 중국의 동북공정이 나오는 상황에서 '조선구마사'와 같은 사례는 중국이 '조선의 역사는 중국 역사다. 이미 우리 물건을 조선 시대부터 다 썼다'는 등의 빌미를 제공하는 부분이이기 때문에 이제는 신경을 써야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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