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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사법농단, 그 후

기사입력 : 2021년03월24일 10:22

최종수정 : 2021년03월24일 10:22

[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참혹한 조사결과로 충격과 실망감을 느끼셨을 국민 여러분께, 사법부를 대표하여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2018년 5월 31일. 김명수 대법원장은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과 관련한 대법원 자체 조사를 마친 뒤 이렇게 말했다. 사법부가 자신들의 목표를 위해 정부와 판결을 두고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은 의혹제기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이었다. 당초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시작된 이 사건은 전직 사법부 수장이 구속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번졌다. 김 대법원장은 참회를 담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법원행정처 폐지 등 파격적인 쇄신을 약속했다.

고홍주 사회문화부 기자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법원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안타깝게도 내가 만난 전현직 법관들은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고법부장 승진제도가 폐지됐고 법관들이 직접 법원장을 추천하는 등 여러 제도가 변화하긴 했지만, 정작 사법농단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꼽혔던 문제들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다. 법원행정처에 대한 참회성으로 내놓은 사법행정자문회의는 법관이 다수로 구성돼 있고 어디까지나 '자문'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사법행정의 외부 개방에는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 김 대법원장은 사태 이후 만신창이가 된 조직을 제대로 추스르고 달래지도 못했다. 사건이 불거진 뒤에는 '고발이나 수사의뢰는 하지 않겠지만 검찰 수사에는 협조하겠다'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고, 수사가 마무리된 뒤에는 관련자들의 징계 절차도 머뭇거렸다. 개혁을 바라는 쪽도, 이러한 기류에 반발하는 쪽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최근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직 만류 녹취가 공개되면서 불만이 폭발한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책임을 김 대법원장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법관들에게 '셀프 재판'을 하게 둘 수 없다며 특별재판부를 만들어야 한다거나 법관 탄핵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정치권은 어느새 사법농단 사건을 잊었다. 사법부를 비판하던 목소리는 검찰로 옮겨갔고 검찰개혁에 집중하는 사이 사법부 개혁도, 사법농단 재판도 모두의 관심 속에서 잊혀졌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 추진의 목적과 의의는 차치하더라도, 왜 하필 지금이었을까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나마 지난 23일 내려진 이민걸·이규진 전 판사에 대한 첫 유죄 판결은 이 사건을 다시 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일각에서는 해당 재판부가 사법농단 관여 법관들을 유죄로 만들기 위한 원 포인트 인사였다고 비판하지만, 법원행정처가 일선 재판관의 판단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판사들의 의견 개진을 저지하려는 행위는 해서는 안 된다는 일침을 준 판결이었다.

다만 재판부도 언급했듯 두 전직 판사들이 사리사욕을 위해 이런 행위를 한 것은 아닐 것이다. 특정 판사를 나쁜 사람으로 간주하고 단죄하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면 문제는 영원히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더욱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법부가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법부는 부패했다'는 무조건적인 질타와 비난이 아니라 더 많은 감시와 관심이다.

adelant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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