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남라다 기자 = 쿠팡이 미국 증시 직상장을 선택하면서 때 아닌 '국부 유출' 논란이 한반도를 뜨겁게 달궜다. 쿠팡이 미국 현지법인 '쿠팡 INC'를 통해 뉴욕거래소(NYSE)에 상장한다고 밝힌 직후부터다.
"돈은 한국에서 벌면서 상장은 미국에서 한다"는 것이 논란의 요지다. 이는 '한국 패싱' 의혹으로까지 번졌다. 한국 투자자를 따돌리고 미국 투자자에게만 투자 기회를 줬다는 곱지 않은 시선 때문이다. 쿠팡이 미국행을 결심한 데에는 '기업의 논리'가 자리한다. 쿠팡은 한국의 상장 규제로 상장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고 보고 애초에 미국 나스닥으로 방향을 잡았다.
남라다 뉴스핌 산업2부 기자. 2021.03.09 nrd8120@newspim.com |
한국거래소는 유니콘 기업에 유리한 성장성보다는 '기업의 경영지표'를 종합적으로 심사하기에 쿠팡에 불리한 측면이 있다. 당기순이익·자기자본 등이 그 예다. 쿠팡처럼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기업은 한국거래소 심사 통과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것이 투자은행(IB) 업계의 중론이다.
반면 기업의 '미래 성장성'에 주목하는 미국 증시의 '유연함'은 재무구조가 탄탄하지 않은 쿠팡이 IPO을 추진하는데 있어 큰 원동력이 됐다.
문제는 쿠팡의 미국행 직후에도 국내 전자상거래(e-commerce, 이커머스) 시장을 바라보는 정부의 안일한 인식이다. 쿠팡이 상장 계획을 밝힌 직후 정부여당은 '제2의 쿠팡을 키우기 위한 벤처생태계를 조성하겠다며 K-유니콘 육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쿠팡이 미국 증시에 상장된다면 국내 유니콘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인정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치켜세우며 "벤처투자 활성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쿠팡 상장 이후 국내외 투자자들의 관심은 K-유니콘으로 집중될 것으로 점쳐진다. 이런 중요한 시점에 정부와 국회가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쏟아내고 있어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는 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제2의 쿠팡' 육성하려는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지난 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소비자 피해를 막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에 앞선 지난해 9월 발의한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제정안에 이은 두 번째 규제안이다.
여야 의원의 법안 발의도 잇따르고 있다. '로켓정산법', '라이브커머스 판매영상 보존·열람법', '온라인플랫폼법 개정안' 등이 대표적이다. 규제는 전방위적이다. 쿠팡 등 온라인 플랫폼 운영사업자를 비롯해 배달앱·숙박앱·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96만여개 업체가 규제 대상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는 소규모 온라인플랫폼 사업자도 포함된다. 업계는 이번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신규 사업자들의 온라인 플랫폼 시장 진입은 사실상 어려워질 것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소비자의 피해의 연대책임이 강화된 플랫폼 사업자가 규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일정 규모를 갖춘 입점업체하고만 거래를 확대할 가능성도 크다. 이커머스 업체들의 주장과 같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꺼내든 규제 카드는 '양날의 검'과 같다. 불공정한 행위를 적절하게 규제한다면 '공정한 시장질서'를 확립하는데 기틀을 마련할 수 있지만 시장 흐름을 역행하는 '과도한 규제'는 이커머스 시장의 근간을 위협한다. 이번 온라인 플랫폼 규제법안은 후자에 가깝다.
과거 대형마트 영업을 제한한 유통산업발전법에서도 과도한 규제에 따른 역효과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형마트 규제법은 당초 전통시장을 살리는 것이 입법 취지였지만 마트 업계의 시장 위축만 초래했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법 역시 갑질 근절과 소비자 보호라는 좋은 취지와는 달리, 코로나19 장기화로 급성장하는 이커머스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현재 발의된 법안만 15개에 달한다. '중복 규제' 내용도 포함돼 있어 논란을 낳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규제의 방향성이다. 이해 당사자가 많은 산업인 만큼 정부는 각종 규제를 적용하는 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 단기적 시각이 아닌 쿠팡과 같은 유니콘 기업을 '100년 플랫폼 기업'으로 발돋움시킨다는 생각을 갖고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규제와 징벌 일변도로 나가서는 제2의, 제3의 쿠팡을 키울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nrd812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