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수출농가, 코로나19로 매출 고꾸라져
"소규모 가족농가는 경제활동 불가능할 정도"
4차 재난지원금에서도 배제...국회 설득에 '사활'
전농 "4일 오전 이낙연 대표와 면담 예정"
[서울=뉴스핌] 이학준 기자 = # 1997년 농사를 시작한 박희성(가명) 씨는 2016년부터 경남 진주에서 약 2750평짜리 하우스 11동을 운영하면서 홍콩·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 딸기를 수출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항공길이 막히면서 수출량이 30~40%가 빠졌다. 해외에서는 지속적으로 발주가 들어오지만 배달할 항공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뭄에 콩 나듯 해외로 향하는 비행기는 있었지만 물류비는 기존보다 3~4배 오른 상태였다. 코로나19 여파는 매출 급락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 매출 떨어지는데 인건비·비료값 상승 '삼중고'
실제 코로나19가 터지기 전까지 박씨의 연평균 매출은 1억6000만원 정도였다. 딸기를 생산하기 위해 비닐·비료·인건비 등에 소요되는 지출 약 1억원을 제하면 손에 쥐는 돈은 6000만원 수준.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연매출은 9000만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매출 감소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코로나19로 외국인 노동자 유입이 감소하면서 1년간 인건비가 480만~600만원까지 오르고, 비료 등 공산품 가격도 상승하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결국 박씨는 수출을 포기하고 국내 시장에 눈을 돌리기로 했다. 문제는 해외에서 소비돼야 할 딸기 수량이 국내에 풀릴 경우 가격이 급락하면서 시장이 붕괴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박씨 또한 이런 우려를 모르지 않지만 별다른 활로는 떠올릴 수 없었다.
박씨는 "코로나19로 농민들은 IMF 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라며 "농민들도 정부에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데 재난지원금 대상에서 번번이 빠진 것이 서운하다"고 했다. 특히 "'코로나19가 퍼져도 딸기는 자란다'는 얘기를 한다"며 "농산물을 사용하는 식당이 장사가 안 되는데,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민들이 아무런 피해를 안 입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씨처럼 해외에 농산물을 수출하는 '수출농가'는 일정 규모 이상 농장을 소유하고 안전한 판매망을 갖춰 노하우가 쌓인 베테랑 농민들이다. 코로나19 여파를 버틸 여력이 있을 것이라 보였던 수출농가조차 휘청거리고 있는데, 일반 소규모 농가는 사실상 전멸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 농산물 가격 올랐으니 코로나19 버틸 수 있다?
4일 전국농민총연맹(전농)과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등에 따르면 올해 1월 서울 송파구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가락시장)에서 거래된 128품목 청과류 중 절반 이상인 59품목 가격이 지난해 1월 대비 상승했다. 52품목 가격은 10% 이상 올랐고 나머지 7품목은 5~10% 상승했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본격적인 김장철에 접어든 가운데 배추와 무는 추가 물량 공급으로 가격 안정권에 접어든 반면, 양념채소 가격은 급등해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서 관계자가 대파를 옮기고 있다. 농업관측본부는 이달 김장 양념채소(마늘·양파·대파·건고추) 가격은 생산량이나 재고량 감소 등의 이유로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2020.11.10 yooksa@newspim.com |
농민들은 가격이 상승했지만 생산량이 감소했기 때문에 이익을 보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1kg 당 1000원짜리 쌀을 100kg 팔았다면 매출은 10만원이지만, 1kg 당 2000원짜리 쌀 40kg을 판매하면 수익은 8만원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해 1월 가락시장에 반입된 청과물은 총 15만3758톤으로 지난해 동월 대비 1만8038톤 감소했다. 2019년 1월과 비교해서는 4만161톤이 줄었다.
전농 측은 정부가 표면적인 농산물 가격 상승만을 보고 농민들이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버틸 수 있다고 판단, 재난지원금 대상에서 농민들을 배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무진 전농 정책위원장은 "겨울 배추가 한파로 피해를 입었고 시장에 나올 수 있는 배추가 없다 보니 가격이 높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며 "이때 과연 농민들이 돈을 벌었냐"고 반문했다. 특히 "전체 농가 80% 이상을 차지하는 1.5헥타르 미만 농가는 경제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소득만 가져갔다"며 "꽃집은 지원금을 받는데, 화훼농가에 지원금을 주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고 강조했다.
◆ 국회 설득에 사활 건 농민들...이낙연 대표와 '면담'
전농은 지금껏 농민들도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다고 주장해 왔으나 매번 재난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됐다. 앞서 정부는 지난 2일 2021년도 추가경정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소상공인과 노점상 등 약 400만명에게 경영정상화 명목으로 6조8450억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서울=뉴스핌] 이학준 기자 = 전국농민총연맹(전농)이 지난달 25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면담을 요구하며 지역구 사무실 점거농성을 했다. 2021.03.03 hakjun@newspim.com [사진=전농] |
농민들은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가 농민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지원에서 배제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농식품부가 농민들이 얼마나 어려운지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요구안을 관철시켜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며 "농민에게 농식품부는 필요치 않은 존재"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농민들 상황이 좋다고 말해버린다"고 덧붙였다.
이에 농민들은 국회를 설득하는 데 사활을 건 상태다. 지난달 25일에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면담을 요청하며 지역구 사무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펼치기도 했다. 이들은 4일 오전 11시 20분 국회에서 이 대표와 면담을 갖고 재난지원금 지급을 요구할 계획이다.
hak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