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뉴스핌] 남효선 기자 = "키다리 아저씨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대구시는 지난 2012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익명으로 나눔을 실천해 온 '키다리아저씨'가 올해도 따뜻한 마음이 담긴 성금을 전해왔다고 23일 밝혔다.
지난 10년간 이맘때쯤이면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매년 익명으로 기부를 하는 키다리아저씨다.
지난 22일, 올해도 어김없이 공동모금회로 키다리아저씨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날 저녁 키다리아저씨 부부와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희정 사무처장, 공동모금회 직원들이 대구 시내 한 골목안의 작은 식당에서 만났다.
키다리 아저씨는 간단히 인사를 건넨 후 예의 낡은 가방 속에서 봉투 한 개를 꺼냈다.
봉투에는 5000여만 원의 수표 1장과 손글씨로 쓴 메모 1장이 들어있었다.
'나눔' 10년의 약속을 스스로 지켜온 대구 키다리아저씨가 지난 22일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보내 온 성금과 손끌씨 메모.[사진=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2020.12.23 nulcheon@newspim.com |
메모에는 "스스로와의 약속인 10년의 기부를 마지막으로 익명 기부를 마무리 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앞으로도 많은 키다리아저씨들이 나눔에 참여를 했으면 좋겠다"는 글귀가 손글씨로 씌여 있었다.
또 "나누는 동안 즐거움과 행복함을 많이 느꼈다"며 나눔을 통한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실천해 온 키다리아저씨의 소박하면서 커다란 마음이 담겨있었다.
대구에서 크지 않은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키다리아저씨는 1960년대 학업을 위해 고향인 경북도에서 대구로 왔다고 했다.
그러나 부친을 여의면서 일찍 가장이 되었고 생업을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결혼 후 세평이 안 되는 단칸방에서 시작한 키다리아저씨 부부는 근검절약을 몸에 익혔고 수익의 1/3을 소외된 이웃들에게 나누는 삶을 이어왔다고 했다.
회사를 경영하며 위기 때마다 기부를 중단하기를 권유하는 직원들도 있었지만 "이 돈은 내 돈이 아니다"는 생각을 다지며 "처음부터 수익의 일부분을 떼어놓고 나눔을 이어왔다"고 말했다.
키다리아저씨는 가족들도 모르게 기부를 이어왔다.
키다리아저씨의 아내는 "첫 번째와 두 번째 기부할 때는 남편이 키다리아저씨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서 "어느 날 신문에 키다리아저씨가 남긴 필체를 보고 남편임을 짐작해 물어서 알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남편의 아름다운 마음을 읽은 아내의 응원으로 '나눔 실천 10년의 약속'을 이어올 수 있었다며 키다리아저씨는 아내에 감사했다.
언론에 보도된 키다리아저씨의 필체를 보고 아버지가 키다리아저씨라는 것을 알게 된 자녀들도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아내가 다시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손주 또한 할아버지를 닮아 일상에서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고 귀뜀했다.
키다리아저씨는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앞으로 더 많은 키다리아저씨가 나타나 더불어 함께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 주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키다리아저씨가 지난 2012년 1월부터 올해까지 9년간 10회에 걸쳐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를 위해 전한 기부금은 10억3000여만원에 달한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난 10년간의 아름다운 약속을 마무리하는 키다리아저씨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며 "키다리아저씨의 따뜻한 나눔은 우리 대구는 물론 대한민국 전체에 큰 위로와 격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nulche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