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말 고액 잔액 650조, 작년말 대비 32조 증가
低금리에 정기예금 줄고 수시입출식예금은 늘어
"자금조달 비용 줄일 수 있지만...변동성 경계"
[서울=뉴스핌] 백지현 기자 = 기업의 예금으로 분류되는 10억원 이상의 고액 계좌 예금 규모가 처음으로 650조원을 돌파했다. 기업으로 흘러들어간 유동성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채 은행 계좌에만 쌓이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값싸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요구불예금이 대부분인 만큼 뭉칫돈이 한 번에 빠져나갈 우려도 같이 나타났다.
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기준 잔액이 10억원 이상인 저축성 예금(정기예·적금, 기업자유예금, 저축예금) 규모는 총 650조324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말 대비 32조3630억원 증가했다. 증가폭은 역대 5위 수준으로 2018년 하반기(33조2270억원) 이후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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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백지현 기자 = 10억원 이상 고액 저축성 예금 잔액. 2020.11.02 lovus23@newspim.com |
고액 계좌는 법인 소유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계좌 잔액이 대폭 늘어난 데는 기업들이 대출을 받아 투자를 하기보다는 비상용으로 현금성 자산을 축적하려는 수요가 높아진 탓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산업별 대출금은 올해 2분기 1010조764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9% 늘었다. 이는 지난 2009년 1분기(16.5%) 이후 11년만에 가장 큰 증가폭이다. 반면, 코로나19 불확실성으로 투자는 꽁꽁 얼어붙었다. 민간 설비투자 지출 규모는 3분기 연속 마이너스(-)다. 전년동기대비 증감율은 올해 1분기 -4.8%, 2분기 -4%, 3분기 -4.5%를 기록했다. 외환위기였던 1998년 4분기(-9.5%)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상품 별로는 현금화가 용이한 요구불예금 위주로 늘고 있다. 올해 6월말 기준 10억원 이상 계좌 가운데 기업 자유예금은 작년 말과 비교해 31조5970억원 늘어난 한편, 정기예금은 오히려 2조2030억원 줄어들었다. 지난 2018년 하반기 정기예금만 36조8690억원 늘어난 것과는 상반된 흐름이다.
한은 관계자는 "2018년 당시는 LCR 규제 도입 초기로 은행들의 예금 유치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저금리 기조로 정기예금 선호도가 낮아졌고 대기성 자금이 많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기업 예금이 증가한 것 자체는 은행들에 호재다. 채권을 발행하는 것보다 저렴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금리에도 불구하고 별 다른 예금 유치 노력 없이도 자금 유입이 원활하다는게 업계의 공통적 의견이다. A은행 관계자는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고 기준금리가 낮아진 가운데 은행권 사모펀드 사태로 시끌시끌해지면서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진 상황"이라며 "은행 입장에서는 비용을 아낄 수 있어 좋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돈을 어디에 굴릴지 애매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기예금과 달리 뭉칫돈이 빠져나갈 우려가 있어 은행들은 지급준비금을 더 많이 준비해야 하는 탓이다.
B은행 관계자는 "수시입출금은 대박주 공모 등 이벤트가 생기면 큰 자금이 갑작스레 빠져나가는 등 변동성이 크다. 은행은 저비용성 요구불예금이 많은 것도 좋지만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변동성이 낮은 정기예금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액 계좌 대부분은 MMDA 상품으로 운용되는데 이 상품은 보통 예금보다 높은 금리를 적용하는 만큼 비용절감 메리트도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lovus2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