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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큰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타계…27년간 400조 삼성을 일구다

기사입력 : 2020년10월25일 10:53

최종수정 : 2020년10월26일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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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 93년 신경영 선언
87년 10조 매출→작년 314조로 커져…자산 400조
2010년 경영 복귀…평창 올림픽 유치에도 크게 기여

[서울=뉴스핌] 김선엽 기자 =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1993년 고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2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며 삼성그룹 전체를 바꾼 시작으로 기억된다.

고인은 이병철 삼성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1942년 대구에서 출생했다. 일본에서 중학교를, 서울에서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한 뒤 일본 와세다 대학과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부친인 이병철 삼성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이 회장은 1987년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78세로 타계하면서 회장직에 취임했다. 그는 취임과 함께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서울=뉴스핌] 김선엽 기자 = 1972년 이병철 선대회장이 가족들과 장충동 자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병철 선대회장,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삼성 제공> 2020.10.25 sunup@newspim.com

이 회장은 1987년 12월 취임사를 통해 "90년대까지는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사실 신경영 선언까지 크게 효과를 보지 못했다. 당시 국내 1위 기업이었던 삼성 내부에선 제일주의 의식이 팽배했고 이 회장은 이를 뜯어 고치고자 했다.

이건희식 신경영은 취임 6년 뒤인 1993년에 전격적으로 선언됐다. 사내방송을 통해 세탁기의 불량 소식을 접하며 개탄했고, 이것이 삼성의 대대적인 변화를 추진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이 회장은 곧바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사장단 및 임직원 회의를 갖고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는 신경영의 핵심을 선언했다.

그는 "인공위성은 대기권 밖으로 10~15분, (보잉)747은 1~2분 사이에 3만4000피트까지 올라가야지 중간에 떨어지면 폭파하던가 주저 앉아버린다"며 국내 일류로 올라온 삼성이 세계 일류로 가지 않으면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후 이 회장의 경영은 공격적으로 변했다. 1995년 그는 시판한 휴대폰중 불량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15만대 물량을 모두 회수해 공장 전체 임직원이 보는 앞에서 소각했을 정도다. 이때에 약 150억원의 휴대폰이 연기로 사라졌다.

이를 기점으로 삼성은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재계 순위 4위에 머물렀던 삼성은 신경영을 펼치며 재계 2위로 뛰어올랐다.

수치로만 봐도 이건희 회장 시절 신경영의 성적은 눈부시다. 이 회장의 취임 당시 삼성의 매출규모는 9조9000억원으로 재계 2위였지만, 32년 간 18배 성장해 2019년 314조원으로 커졌다. 이 기간동안 삼성은 스마트폰, TV, 모니터, D램, 낸드플래시 등 수 많은 세계 1등 상품을 만들어냈다. 작년 말 기준 삼성그룹의 자산 총액은 400조원이다. 

[서울=뉴스핌] 김선엽 기자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 호텔에서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신경영'을 선언하는 모습. 2020.10.25 sunup@newspim.com

물론 이런 성과를 이루기까지 고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삼성자동차(현 르노삼성차)의 실패는 이 회장과 삼성에게 유래없는 위기를 안겨주기도 했다. 삼성차 법정관리 과정에서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400만주를 부채 청산을 위해 내놔야만 했을 정도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했다면 변화와 혁신은 제대로 가동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삼성 내부의 설명이다. 이 회장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로 여전히 임직원들에게 힘을 불어넣고 있다.

'반도체가 삼성을 뒤흔들고 있다'는 우려 속에서도 변화와 혁신에 속도를 내며 반도체를 세계시장 1위에 올려놨고, 이후 휴대폰 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하며 애니콜 신화를 만들어냈다.

갤럭시 시리즈를 통해 10년째 삼성전자가 전 세계를 호령하는 현재 상황도 안주문화 틀에서는 어림없었을 일이다.

이 회장은 지난 2010년 3월 삼성 경영에 복귀하면서 "앞으로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며 제2의 신경영 선포에 가까운 위기론을 꺼내든 바 있다.

반도체와 휴대폰으로 대변되는 사업구조를 변화시키며 새로운 먹을거리 찾기가 본격화되는 순간이었다.

고인은 기업 경영 외에도 여러 방면에서 발자취를 남겼다.

고인은 199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선임됐으며 고인은 2011년 7월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유치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00명이 넘는 IOC 위원들을 만나며 직접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 뜻에 따라 28일까지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삼성 측은 "조화와 조문은 정중희 사양한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김선엽 기자 = 이병철 선대회장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80년 삼성본관 집무실에서 함께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삼성 제공> 2020.10.25 sunup@newspim.com

sunup@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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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이시바' 누구?...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직 사임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정국의 관심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로 쏠리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곧 총리직을 맡는 일본 정치 구조상 이번 총재 선거는 사실상 다음 총리를 뽑는 절차다. 자민당은 조만간 새로운 총재 선거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2024년 9월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경합했던 주요 인사들이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국 운영이 소수 여당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차기 총재가 야당과 어떻게 연대할지, 어떤 연립 구도를 짤지가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권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지난달 29~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다카이치가 23%, 고이즈미가 22%를 기록했다. 나란히 1, 2위다. 자민당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고이즈미가 32%로, 다카이치(17%)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카이치는 2024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에게 역전패했다. 고이즈미 역시 의원 표에서 선두에 올랐지만 당원 표에서 밀리며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당내 기반과 대중적 인지도를 겸비해 차기 선거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주자들이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981년생(44세)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2009년 중의원 첫 당선 이후 줄곧 '포스트 아베',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다. 환경상, 농림수산상을 거쳤으며 개혁 성향과 젊은 이미지로 지지층을 넓혔다. 2024년 총선에서 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농림수산상으로 복귀해 쌀 유통 개혁 등 농정 개혁에 매진했다. 대중적 인지도와 '고이즈미 브랜드'라는 정치 자산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1961년생(64세)으로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여성 정치인이다. 2021년 총재 선거에 첫 도전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3위를 기록했다. 2024년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의원 72표, 당원 109표)를 얻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역전 당했다. 유일한 여성 후보로서 '보수의 아이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던 의원 그룹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이시바 정권에서 당직 제안을 거절하며 독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야시·모테기 등 잠룡도 주목 고이즈미와 다카이치 두 선두 주자 외에 잠룡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옛 기시다파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시바 정권의 2인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은 당내 경험과 풍부한 인맥을 강점으로 삼고, 아소 다로 전 부총리와 교류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5선 의원으로, 동기 의원들과 옛 니카이파의 지원을 받으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 총재 선거 이후에도 정국 '안갯속'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 표를 합산하는 방식이 원칙이지만, 긴급 시에는 국회의원과 지방 지부 대표만 투표하는 '양원 의원 총회'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 표의 비중이 커져 파벌 역학이 중요해진다. 차기 총재가 선출되더라도 곧바로 정권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헌법상 총리는 국회에서 지명되는데, 자민·공명 양당은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야당이 단일 후보를 세워 결집할 경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민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더라도, 예산안·세제 개혁 법안 등 국정 운영은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차기 총재는 곧바로 '연립 확대'나 '정책 연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고,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어떤 야당과 손을 잡을지가 핵심 화두가 된다. 결국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단순히 차기 지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일본 정치가 다당제 속에서 어떤 연립 구도를 구축할지 시험대가 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goldendog@newspim.com 2025-09-0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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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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