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미국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배터리 데이' 행사에 미국 2대 리튬 회사 경영자들을 불러놓고 리튬을 자체 생산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는 테슬라가 본격적으로 리튬 생산 경쟁에 뛰어들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미국 업체들에 생산을 신속히 늘리라는 압박을 가한 것이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테슬라 '모델3'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사진=로이터 뉴스핌] 2020.07.07 mj72284@newspim.com |
머스크 CEO는 배터리 데이 행사에서 미국 리튬 생산업체 리벤트(Livent)와 앨버말(Albemarle) 경영자들을 앞에 두고 미국 텍사스주 네바다에 1만에이커에 달한 리튬 광산을 입수했으며 텍사스 신설 공장에 공급할 리튬 정제공장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발표에 다음날 리벤트와 앨버말의 주가가 추락하면서 양사 총합 17억달러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테슬라가 리튬 산업에 있어 심각한 경쟁자로 떠오를 가능성은 낮다고 관측하고 있다. 실제 리튬 산업에 뛰어들어 생산이 가능해지기까지 수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대신 이 선언은 현재 5개 업체가 장악하고 있는 리튬 산업에 생산을 증대하라는 압박을 가하기 위한 제스처라고 이들은 관측했다.
컨설팅업체 벤치마크미네랄인텔리전스의 사이먼 무어스 전무이사는 "비둘기들 사이에 고양이를 풀어놓은 셈"이라며 "'당신들이 스스로 신속히 우리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우리가 스스로 만들겠다'고 경고한 것으로, 업스트림 광산업체들을 닦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테슬라는 2만5000달러짜리 전기차 출시를 위해 배터리 비용을 절반 이상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씨티그룹 분석에 따르면, 2030년까지 연간 생산량을 2000만대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매년 3테라와트시(terawatt hours)의 배터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리튬 산업은 단지 테슬라 공급량만을 맞추기 위해 생산량을 8배 이상 끌어올려야 한다.
게다가 에너지 컨설팅업체 우드맥켄지는 전 세계가 파리 기후협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배터리 수요를 맞추려면 앞으로 15년간 리튬 산업에 500억달러가 투자돼야 한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리튬 가격이 3년 연속 하락하자 생산업체들은 생산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벤치마크미네랄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테슬라가 사용하는 수산화리튬 가격은 지난 1년 간 20% 급락했다.
투자가 확대되지 않으면 테슬라는 리튬 물량이 부족해져 앞으로 10년 간 가격 상승에 직면할 수 있다.
앨버말의 경우 지난 8월 리튬 가격이 하락하자 네바다주 실버스프링스 생산시설을 잠정 폐쇄해야 했다. 회사는 또한 호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에 위치한 수산화리튬 정제공장에 대한 자본지출을 축소하고 있다.
지난달 테슬라와 2022년부터 5년간 생산물 전량 공급 계약을 체결한 피드몬트 리튬(Piedmont Lithium)의 키스 필립스 CEO는 "테슬라가 못마땅해 하는 부분은 중국 외 리튬 시장을 앨버말과 리벤트 두 회사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테슬라는 매년 공급량 확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양사 모두 생산 확대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테슬라는 다른 리튬 업체를 성장시키면 시장에 물량이 더 많아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머스크 CEO는 피드몬트와 텍사스의 자사 정제공장 공급으로 리튬 생산 비용을 33% 낮출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들 공급량만으로는 테슬라 수요량을 맞추기에 턱도 없다고 리튬 전문 컨설턴트인 조 로리가 예상했다.
그는 또한 네바다 점토광에서 리튬을 채취한다는 머스크 CEO의 설명에도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머스크 CEO는 배터리 데이에서 "땅에서 진흙을 한 움큼 집어 리튬을 제거하고 흙을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리 컨설턴트는 "테슬라가 자체 생산으로 공급량을 충족시키는 데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여느 신생업체와 마찬가지로 테슬라도 초반 실패를 거듭할 것이며 고품질 리튬을 생산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그는 "하지만 머스크 CEO도 이러한 점을 모를 리가 없으므로 이번 선언은 리튬 업체들에 압박을 가하기 위한 전략이 아닐까 한다"고 덧붙였다.
켄트 매스터스 앨버말 CEO도 점토광에서 리튬을 채취하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방식일뿐더러 칠레와 호주에서 생산하는 것과는 비용 측면에서 경쟁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네바다주에서 광산을 가동하려면 연방정부의 허가가 필요한데 그 절차만 해도 몇 년이 걸린다.
무어스 전무이사는 "머스크 CEO의 선언은 미국 기반 리튬 공급망을 구축하자는 신호탄"이라며 "현재 세계 배터리 원재료의 80%가 중국에서 정제·가공되고 있어 전기차 배터리 부품의 생산을 독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테슬라는 부품 공급에 있어 중국을 잘라냄으로써 원자재부터 배터리까지 완벽한 미국 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타이어 원재료 자체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아마존 고무 농장을 사들였던 헨리 포드에 대한 오마주인 셈이다.
독일 본에 위치한 테슬라의 전기차 초고속 충전 시설에서 회사 차량이 충전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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