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청와대와 여권이 모처럼 신이 났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주요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줄줄이 강등하면서도 한국의 신용등급을 유지한 데 크게 고무된 것. 피치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로, 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으로 유지했다. 피치는 효과적인 코로나19 정책 대응을 통해 주요 선진국과 영국, 홍콩 등 유사 등급(AA) 국가들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양호할 것으로 판단했다. 피치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1%로, 같은 AA등급 국가의 성장률 전망치 중간값 -7.1%에 비해 선방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피치는 문재인 정부의 확장 재정으로 재정적자가 늘어나는 현상은 경계했다. 고령화로 지출 압력이 커진 상황에서 높은 부채수준은 재정에 위험 요인이 될 수 있고, 신용등급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다.
여권 인사들이 피치의 신용등급 유지에 공치사를 하고 나섰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SNS에 "피치의 평가는 우리가 선택한 길이 옳았음을 보여준다"는 글을 올렸다. 또 "최근 우리는 수출도 회복됐고, 기업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보다 늘어났다"면서 "어려운 가운데 분투한 기업인에도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지난 6일 재계가 '공정경제 3법'의 속도를 조절해 달라는 하소연을 일축했던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의 '한국의 재발견'이라는 자화자찬은 볼썽사납다. 이 수석은 "지난 달 10일 외평채가 역대 최저 금리로 발행됐고, 유로화 채권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했다"면서 "국제적인 평가는 한국 경제를 강하게 신뢰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모든 (국가의) 증시가 다 좋은 것은 아니며 주로 미국 나스닥, 한국의 코스닥과 코스피, 중국과 대만 정도의 주식시장이 코로나 이전 수준을 넘어 플러스고 나머지 나라는 전부 마이너스 상태"라며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성공했음을 자랑했다. 최근 기업공개를 한 SK바이오팜과 카카오게임즈,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를 거론하며 "최초 IPO를 통해 4조~6조의 큰 기업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경제나 산업구조가 어디에 있을까"라는 대목에선 얼척이 없다. 한국 증시가 호조를 보이고 있는 것은 부동산정책 실패의 뒷면이지, 정부가 자화자찬할 꺼리가 아니다.
정부와 여당은 '신용등급 유지'에만 자만하지 말고, 피치의 경고를 허투루 들어서는 안된다. "총선에 승리한 현 정부는 남은 집권 기간 동안 재정정책을 보다 활발히 활용할 것", "정부 적자 확대에 따른 국가채무비율 상승은 향후 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피치의 지적이고, 경고다. 아직은 가계부채 상환능력과 은행 건전성이 양호하지만, 가계부채 규모의 증가로 취약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기업과 가계 부채도 결국에는 정부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런데도 이호승 수석은 "우리나라 채무비율은 주요국 대비 절반 이하로 양호하다"면서 "정부가 재정준칙안을 발표를 했고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연말까지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며 피치의 경고의 의미를 애써 모른 척했다. 그러나 정부가 오는 2025년부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60%와 연간 통합재정수지 적자율 3%라는 기준이 너무 허술하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다. 또 한도를 5년 마다 재검토하고, 예외 조항이 많아 국가부채의 관리 의지마저 의심받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 인사들이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경제위기 속에서 재정준칙 마련을 미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가의 장래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도 없는 태도다. 지금은 신용 등급을 유지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확장 재정으로 재정이 악화되면 신용등급을 내리겠다는 피치의 지적은 애사롭지 않다. 무디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올해 신용등급을 낮춘 국가가 107개국의 201건이다. 한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