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지난 5월 27일 매장주체부(시신이 있는 자리)에서 금동신발과 금동 달개(장신구) 일부가 확인됐던 경주 황남동 고분에서 이후 추가로 진행된 정밀 발굴 조사에서 금동관과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 은허리띠, 은팔찌, 구슬팔찌, 은반지 등이 피장자가 착장한 상태 그대로 확인됐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3일 "피장자는 금동으로 만든 관을 머리 부분에 착장했고 굵은고리귀걸이를 양쪽에 하고 있으며 금동신발을 신고 있었다"며 "관과 귀걸이, 가슴걸이, 허리띠, 팔찌, 반지, 신발이 일괄로 출토된 것은 1973~1975년 황남대총 이후 처음이며 이렇게 피장자의 장신구를 착장 상태 그대로 전체 노출시켜 공개하는 것도 처음"이라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120-2호분 금귀걸이 주변 유물 노출 세부 모습 [사진=문화재청] 2020.09.03 89hklee@newspim.com |
문화재청과 경상북도(도지사 이철우), 경주시(시장 주낙영)와 함께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의 하나로 2018년 5월부터 경주 황남동 120호분을 발굴조사(조사기관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하고 있으며 이번에 피장자가 착장한 장신구가 대구 발굴된 곳은 황남동 120호분의 봉토를 파괴하고 축조된 120-2호분이다.
이번 정밀 발굴조사에서 확인한 것은 피장자가 머리부터 발치까지 전신에 착장했던 금동관 등 6세기 전반에 제작된 장신구 일체다.
금동 달개 일부가 5월에 먼저 노출됐던 피장자의 머리 부분에서는 최종적으로 금동관이 확인됐다. 금동관은 가장 아래에 관테(머리에 관을 쓸 수 있도록 둥글게 만든 띠)가 있으며 그 위에 3단의 나뭇가지모양 세움장식 3개와 세움장식(녹각형 입식) 2개를 덧붙여 세운 형태다. 관테에는 거꾸로 된 하트 모양의 장식용 구멍이 정연하게 배치돼 있으며 나뭇가지모양 세움장식의 끝부분에도 거꾸로 된 하트 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경주 황남동 120-2호분 매장주체부 일부 노출 전경 [사진=문화재청] 2020.09.03 89hklee@newspim.com |
금동관의 관테에는 곱은옥(曲玉, 곡옥)과 금구슬로 이루어진 금드리개(금제수식)가 양쪽에 달려 있다. 관테와 세움장식 사이에는 'ㅜ, ㅗ' 모양의 무늬가 뚫린 투조판이 있는데, 세움장식의 상단에서도 투조판의 흔적이 일부 확인됐다. 이 투조판이 관모인지, 금동관을 장식하기 위한 용도였는지는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까지 출토된 경주 지역의 금동관 가운데 가장 화려하다.
금동관 아래에서는 금으로 제작된 굵은고리귀걸이 1쌍과 남색 구슬을 4줄로 엮어 만든 가슴걸이가 확인됐다.
그 아래에서는 은허리띠와 허리띠의 양 끝부분에서 4점이 묶음을 이룬 은팔찌, 은반지도 확인됐다. 오른쪽 팔찌 표면에서는 크기 1mm 내외의 노란색 구슬이 500점 넘게 출토돼 작은 구슬로 이뤄진 구슬팔찌를 은팔찌와 함께 끼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은반지는 오른손에서 5점, 왼손에서 1점이 출토됐는데 왼손 부분은 완전히 노출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조사가 이뤄지면 왼손 부분에서 은반지가 더 출토될 가능 성이 있다. 또 천마총의 피장자처럼 각 손가락마다 반지를 꼈을 가능성도 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구슬 팔찌 복원 모습 [사진=문화재청] 2020.09.03 89hklee@newspim.com |
금동관의 중앙부에서 금동신발의 뒤꿈치까지의 길이가 176cm인 것으로 보아 피장자의 키는 170cm 내외인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신라왕경사업추진단은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피장자의 성별 등을 포함해 추가로 더 밝힐 수 있는 것이 있는지를 확인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은허리띠의 드리개 연결부가 삼각 모양인 점, 부장칸에서 출토된 철솥의 좌우에 고리 자루 모양의 손잡이가 부착된 점 등 기존에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자료가 많아서 추후 종합적인 연구가 이뤄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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