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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몽상에 빠져보기…김명진의 젊은 그림 'Edgewalker'

기사입력 : 2020년07월24일 08:20

최종수정 : 2020년07월24일 08:20

[서울=뉴스핌] 이영란 편집위원= 많은 것들이 획일화, 균일화되는 시대에 화가 김명진(42)은 엉뚱하고 기이한 몽상을 즐긴다. 그리곤 화폭 위에 상상의 세계를 거침없이 펼쳐간다. 특히 외줄 위에 선 듯한 인간의 뒤엉킨 의식과 내면을 자유분방하게 그린다. 그 결과 화폭에는 묘한 기운과 흥미로운 암시들이 켜켜이 쌓인다. 들숨 날숨이 고스란히 투영되고,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마음껏 오가며 꿈결같은 형상들을 거리낌없이 쏟아내니 바로 '누구도 못말리는 젊은 그림'이다.

자유로운 화면구성과 활기 넘치는 붓질로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김명진이 'Edgewalker'라는 타이틀로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의 갤러리가이아(대표 윤여선)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다. 오는 8월10일까지 열리는 초대전에 김명진은 최근 제작한 신작 20여점을 출품했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김명진 'Edgewalker', oil pastel & acrylic on canavs, 2020 [사진=갤러리 가이아] 2020.7.23 art29@newspim.com

김명진의 그림은 알쏭달쏭하다. 작품마다 그리기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오일 파스텔과 아크릴물감을 번갈아 사용하며, 환상적이고 도발적인 화폭을 구현해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캔버스를 마주하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많지만 김명진만큼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세계를 대담하고 거침없이 그려내는 화가는 흔치않다. 자유로운 영혼이 그린 '날 것' 그 자체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감상자도 공상과 판타지의 세계에 빠져들고 만다.

이번 전시의 아이코닉한 작품을 보자. 체육관인 듯한 공간에 한 남성은 저 멀리서 글러브를 끼고 연신 샌드백을 치고 있다. 그가 흘린 땀방울로 바닥이 흥건하다. 그러나 화면 중앙의 노란 소파에 앉은 원숭이는 유유자적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다. 바나나를 보란 듯 먹어치우고, 다리까지 꼬고 앉아 두꺼운 책을 독파하는 모습이 가관이다. 원숭이 앞에는 테이크아웃 커피 한잔이 대기 중이다. 이 엉뚱한 풍경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김명진 'Edgewalker', oil pastel & acrylic on canavs, 2020 [사진=갤러리 가이아] 2020.7.23 art29@newspim.com

활짝 핀 꽃 한송이를 든 토끼는 누군가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기 직전이다. 나름 옷을 잘 차려입고 꽃까지 준비했건만 현관벨을 못 누른채 미적거리는 표정이 딱하기 그지없다. "어서 벨을 누르라고!"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토끼가 마주한 벽면 좌우에는 온갖 낙서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다. 조바심에 가득찬 한 남자의 내면을 어지러운 낙서들이 여지없이 암시해준다.

김명진의 그림에서 의인화된 원숭이와 토끼는 화가 자신이자 불안정한 삶을 영위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이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고, 그 경계 위에서 외줄 타는 사람처럼 위태롭기도 하고, 조급하기도 하며 때로는 짜릿한 전율도 느끼는 청년들을 화가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변주해내고 있다.

[서울=뉴스핌] 이영란 기자=김명진 'Edgewalker', oil pastel & acrylic on canavs, 2020 [사진=갤러리 가이아] 2020.7.23 art29@newspim.com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젊은 남자의 방을 그린 그림에선 공감 게이지가 단박에 올라간다. 좁은 방이 미어터질 정도로 온갖 책이며 잡동사니가 널려 있고, 흰색 이불은 먼지와 땀내로 잿빛으로 변했다. 뒤엉킨 이불 앞에 앉은 남자는 휴대폰을 쥐고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있다. 턱까지 괴고 있는 걸 보면 기발한 동영상을 보고 있는 걸까? 발디딜 틈 없이 어수선한 공간에 화분 속 식물조차 말라가는데 침대 위에 걸린 '왕관 액자'만은 예의 늠름하다. 난장판 속에서 혼자 독야청청이다. 뉴욕의 거리와 지하철을 누비며 낙서화를 남기고, 그림마다 왕관을 사인처럼 곁들였던 장 미쉘 바스키아(1960~1988)의 낙서화가 떠올려진다. 김명진의 거침없고 도발적인 그림을 보고 바스키아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 모두 겉은 멀쩡하지만 심정은 뒤엉킨 실타래처럼 복잡다단하고, 얼굴은 웃고 있지만 머리는 온갖 번뇌로 가득차 있지 않냐고 작가는 묻고 있다.

김명진의 이 같은 심리적 풍경화는 특유의 몽상적 서사와 문학적 페이소스가 팬층을 끊임없이 넓혀가고 있다. 이미 작가는 2015, 2016년 연속으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출품작가 중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선정하는 우수작가로 뽑혀 서울 한남동의 삼성 블루스퀘어 등에서 특별전을 가진바 있다. 또 한국무역협회가 후원하는 삼성동 트레이드타워 특별전시에도 초대돼 작품을 선보였다. 아울러 뉴욕, 마이애미, 휴스턴, 토론토, 런던, 홍콩 등 해외의 유수한 아트페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으며 현지 컬렉터들에게 판매되고 있다. 대구예술대학교를 졸업한 김명진은 이번이 여덟번째 개인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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