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기업 현금화조치 시행 '초읽기' 돌입
미쓰비시 상표권·특허권 매각할수도
한일관계 감안하면 실제 집행은 부담
[서울=뉴스핌] 허고운 기자 = 한국 대법원 판결에 따른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위한 일본 기업 자산 강제매각(현금화)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강제매각이 현실화될 경우 첫 대상은 한일 합작회사 피엔알(PNR)의 주식 일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은 지난 1일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에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위한 자산 압류 서류 등을 공시송달했다.
공시송달은 법원이 서류를 공개 게시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송 당사자에게 서류가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포항지원이 정한 공시송달 기간은 오는 8월 4일 오전 0시다. 이 기간이 지나면 포항지원은 일본제철의 국내 자산에 현금화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사진=뉴스핌DB] 2020.06.04 nulcheon@newspim.com |
◆ 압류자산 규모 작지만 파장은 커
강제매각 대상인 압류 자산은 일본제철이 포스코와 함께 설립한 합작회사인 주식회사 PNR 주식 중 일본제철이 보유한 8만1075주다. 액면가 5000원 기준 약 4억 530만원에 해당한다. PNR의 자본금은 약 390억원으로 일본제철은 주식 30%에 해당하는 약 234만주(110억원 상당)를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금화 작업은 이미 이뤄진 자산 압류에 이어 가치 산정, 매각 절차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일본은 이 절차에 협조하지 않는 '지연 전략'을 쓸 가능성이 높아 최종 낙찰, 매각에 이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납입하는 시기는 8월보다 훨씬 늦어질 수 있다.
일본제철의 압류자산은 한 해 매출액이 60조원이 넘는 일본제철 입장에서 큰돈은 아니다. PNR의 경영에 큰 영향을 줄 수준도 아니다. 하지만 자산압류에 이어 강제 매각이 실제로 이뤄질 경우 미칠 파장은 작지 않다. 일본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조선인을 강제로 동원한 기업 혹은 그들의 후신이 다수 존재한다.
당장 우리 대법원 확정 판결로 진행 중인 일본 기업의 자산 압류는 대구지법 포항지원 외에 울산지법과 대전지법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울산지법은 전범기업 후지코시가 소유하고 있는 대성나찌유압공업 주식회사의 주식 7만7500주(액면가 1만원 기준 7억6500만원)를 압류하고 있다.
대전지법은 대표적인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의 상표권 2건과 특허권 6건을 압류했다. 이들 권리의 구체적인 가치는 산정 작업이 필요하지만 매각이 진행될 경우 주식보다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 현금화 추진시 일본도 관세·비자 등 맞대응할듯
압류된 상표권은 미쓰비시중공업(MHI)과 미쓰비시중공업그룹(MHI Group) 영문 약칭을 이용한 로고인 것으로 전해졌다. 상표권을 매각해 소유자가 달라지면 미쓰비시중공업은 한국 안에서 이 로고를 자유롭게 쓸 수 없게 된다. 특허권 중에는 발전기술 특허가 포함됐다. 한국의 발전소에 가스터빈 등을 납품하는 미쓰비스중공업의 영업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이외에도 한국에서 일본 기업에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과 판결이 줄 이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기에 한국 정부가 국제법 위반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까지 소멸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 문제와 결합되면서 갈등이 더욱 고조됐다. 일본이 수출규제 철회에 미온적으로 나오자 한국 정부는 지난 2일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재개로 맞섰다. 다음 날(3일)에는 서로 "유감의 뜻"을 주고받은 한일 외교장관 통화가 있었고, 직후에 '공시송달' 사실이 알려졌다.
강제 매각이 한일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만큼 법원이 그대로 추진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일 외교당국 간의 대화가 진행 중이며 일본 내에서 한국산 제품 수입관세 인상, 한국인 비자 발급 제한, 주한대사·총영사 일시귀국,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등 대응카드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heog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