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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이용수 할머니 "윤미향, 용서한 적 없어…벌 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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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집회 끝내겠다는 것 아냐...방식 바꾸자는 것"
"윤미향, 김복동 할머니 끌고 다니면서 이용해"
"'안성쉼터' 화려하게 지어놓고 윤미향 아버지가 살아"

[서울=뉴스핌] 이정화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2) 할머니는 25일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용했다고 비판했다.

이 할머니는 이날 오후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을 용서한 적 없다"며 "이것 또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구=뉴스핌] 정일구 기자 =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회계관리 부실과 전 이사장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의 후원금 사적 유용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열린 2차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0.05.25 mironj19@newspim.com

다음은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 전문.

두 번째 이제 기자회견을 합니다. 누구를 원망하고, 또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제가 저번에 기자회견 할 때 이미 했지만, 많이 생각 못하는 것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검찰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정신대대책협의회입니다. 정신대대책협의회는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입니다. 그런데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 하는 것은 정신대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하고 위안부 아주 더럽고 듣기 싫은 위안부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했지만 위안부 할머니는 간 데가 다 다릅니다.

잠깐 제가 갔던 곳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나이로 하면 16살 만으로 하면 14살입니다. 저는 양력으로 돼 있습니다. 왜? 그때 성을 갈지 않으면 배급을 안 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을 갈아서 야스하라라고 갈았습니다. 그런데 학교도 그때는 일본 학교입니다. 제가 3, 4학년까지 다녔습니다. 때문에 가타카나를 알았습니다.

끌려가서도 가미카제 부대 특공대 부대로 끌려가서도 그 장교가 가타카나로 이렇게 써줘서 대화했습니다.
이 군인이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야스하라 도시코. 그 후에 겪으면서 제가 생각할 때 끌려가서 당한 것은 말로는 못 합니다. 제가 쭉 30년 동안 해 오면서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이 증언을 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확실하고 또 바른말 하고 이러니까 정신대대책협의회라는 데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92년도 6월 25일에 신고를 할 적에 윤미향이 간사였습니다. 25일에 했는데 29일에 모임이 있다고 오라고 해서 갔습니다. 어느 교회입디다. 교회 갔었는데 그날따라 일본 어느 선생님이 정년퇴직하고 돈을 1000엔인가 줬다 그러면서 백만원씩 나눠 줬습니다.

그게 무슨 돈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때부터 모금을 하는 걸 전 봤습니다. 왜 모금을 하는지 그것도 몰랐습니다. 따라다니면서 모금을 하는데 보니까 농구선수들이 농구를 하는 데 기다렸어요. 기다렸는데 그 농구선수가 돈을 이렇게 들고 모금을 하더라고요. 그 돈을 받아 오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그게 왜 그런 줄 몰랐습니다.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저렇게 농구를 막 하면서 이기려고 애를 쓰고 하는데 거기 버젓이 앉아서 농구 끝나고 하면 돈을 걷어온 걸 받아서 나왔습니다. 좀 늦었습니다. 좀 늦은 시간인데 배가 고픈데 좀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하니까 돈 없습니다. 돈을 걷어서. 그래도 그것이 뭐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디 가도 또 교회 가도 또 돈을 주면 그걸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모르고 쭉 30년을 해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무엇입니까. 정신대대책협의회입니다. 그러면 공장 갔다 온 할머니들로 해야 되는데 말하자면 공장 갔다 온 할머니들은 밀가루 반죽해서 만들어서 빚어놓고 속에는 맛있고 귀한 것을 넣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속에는 위안부입니다. 그런 그걸 해도 쭉 30년을 그렇게 해도 전 몰랐습니다. 그저께도 몰랐습니다. 어제 저녁 가만히 생각하니 이것은 왜 무엇 때문에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 위안부 생명을 걸어놓고 끌려간 이 위안부를 자기네들이 정신대 할머니와 합해서 쭉 이용해 나왔습니다.

저는 그것도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어저께 제가 생각하니 이럴 수가 있나. 30년 동안 앉아서 얘기하는 게 사죄하라, 배상하라 하는데 일본 사람이 뭔 줄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하죠. 섞어서 사죄도 하지 말고 안 해도 된다는 거 아닙니까? 이것을 30년 동안 해가 나오면서도 사죄 배상을 요구하고 그 학생들까지 고생을 시켰습니다.

그 학생들 돈 받아서 챙겼습니다. 이래서 어제 저는 잠도 한숨도 못 잤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정신대 대책협의회는 정신대만하지 자기네들이 무슨 권리로 위안부 피해자를 이용합니까? 이것을 생각하니 저는 자다 일어나서 펑펑 울었습니다. 왜 내가 이렇게 바보같이 이렇게 당하면서 여태까지 왜 말도 못 했나, 하는 걸 생각하니 그래 내일 기자회견에는 이것을 반드시 밝혀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사죄 배상 요구하는 것을 막았잖아요. 위안부하고 정신대하고 어떻게 같습니까? 위안부는 생명을 걸어놓고 거기 가서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데 이런 그것을 30년을 이용했습니다. 저는 결심했습니다. 내일 기자회견 할 때는 이것을 내가 반드시 밝혀야 되겠다. 일본이 그 사람들 바보입니까? 정신대대책협의회가 위안부 문제를 하는데 거기가 해당치도 않았는데 뭣 하러 그 사람들이 사죄하고 배상하겠습니까?

안 한 이유를 저는 알았습니다. 이것 또한 무엇입니까? 내가 왜 팔려야 됩니까.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아들에 딸 하나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놓으면 터질까 불면 날아갈까, 불상 많은 곳에 쌀 올려놓고 엄마가 수야 이리 오너라 해서 가서 먹이고 했습니다.

이런 남의 집의 귀한 딸 고명딸을 밤에 그것도 끌고 가서 대만, 가미카제 부대를 가서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끌고 가서 전기고문과 갖은 칼로 몸을 긁어서 이렇게 죽여놨습니다. 일본은 그 군인이 보니까 방에 들어가라고 해서 보니까 군인이 앉아 있는데 거기 들어가라 해서 안 들어간다고 하니 와서는 그냥 머리를 끌고 질질 끌고 가서 광 아래 자물쇠 큰 게 달려있었습니다. 그걸 팍하면 문을 확 열지만 밀었습니다.

또 이렇게 해서 발로 그거는 돌덩이보다 더 군홧발이었습니다. 허리를 발길로 차서 엎어졌는데 너무너무 배가 찢어지도록 아프고 죽도록 아파서 저 잘못한 것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잘못했다고 빌면서 살려달라 했습니다.

이런 데 또 머리 뜯고 앉혀서 두 팔을 이렇게 해놓고 거기다 놓고 여기 하나 감고 여기 하나 감고 지금 머리에 귀에 소리 납니다. 그때 제가 엄마라고 크게 불렀던 적이 귀에서 나는지 머리에서 나는지 이것을 어린 나이에서부터 지금까지 지금도 납니다. 이래도 이걸 왜 그런지 누구한테라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정신대대책협의회 이걸 밝혀줘야 되지 않습니까? 할머니 어디 갔다 왔습니까, 해서 밝혀줘야 하는데 한 번도 할머니 앉혀서 절 받은 적 없습니다. 그냥 모여서 노는데 밥 먹는 데도 어디 갔다 왔습니까, 그거 갖고 책을 냈습니다.

93년도부터 책을 내놓고 그 책을 6500원에 파는 걸 봤습니다. 그래도 그걸 몰랐습니다. 그런 책 낸 줄 모르고 그것이 당연한가 보다 하고 다니면서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제가 증언도 하고 또 정신대 대책협의회 박물관을 짓는 데 서대문 형무소에서 짓는다고 했습니다.

그때 박경림 씨하고 저희 큰 조카하고 저하고 가서 15만원을 받고 정신대 대책협의회에서 증언했습니다. 이러면 그 박물관에 대표가 돼 있습니다. 대표라 소리 하지 마라, 창피하다 했습니다. 그러면 대표 소리는 안 해도 대표 대우는 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3월 30일에 제가 전화를 했습니다. 미향 씨, 이러면 안 되잖나. 안 그러면 그렇지 않으면 해결할란다, 했는데 아주 큰 소리로 당당하게 기자회견 하라고 해서 제가 5월 7일에 기자회견 한 겁니다.

이런 등등을 제가 하나하나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빨리 생각이 안 납니다. 이래서 제가 했다고 기자회견을 했는데 어느 날입니다. 여기 왔습니다. 소위 그 국회의원으로 나올 적에 제가 도와준 건 없지만 가보고 돼야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저따위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나갔다가 들어오니까 들어와서 있는데 문을 열어달라 해서 열어주니까 윤미향 씨가 싹 들어오는 거예요. 제가 넘어갈 뻔했습니다. 놀라서. 그러면서 와서 무릎을 꿇고 무슨 말인지 용서? 뭐를 용서합니까. 뭘 가지고 와야 무엇을 가지고 와야 용서를 하지요.

하든가 안 하든가 하는데 뭐를 용서(합니까?) 보니까 엄청나구나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검찰에서도 할 것이고 내가 며칠 후에 기자회견을 할 테니 그때 오라고 그랬습니다. 그러고 나갔는데 나가보니까 소위 교수라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사람이 있는데 내가 말을 안 했습니다. 뻔뻔스럽게 차에 내려서 휠체어를 타려고 하니 뻔뻔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윤미향이를 오게 했답니다. 무엇입니까? 이것은? 윤미향한테 며칠 후에 내가 기자회견을 할 테니까 그때 오라고 하고 나갔는데 나가보니까 뭐 있더라고요. 있는데 거기서 무슨 원수 진 것도 아니고 30년을 지내왔습니다, 했는데 한 번 안아달라 합디다.

그래서 저는 생각에 그래, 이게 마지막이다. 하는 생각을 하고 안아주니 저도 인간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30년을 같이 했으니까 원수는 아닌데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너무 눈물이 왈칵 나서 제가 막 울었는데 이걸 가지고 기자님들 좀 부탁드립니다. 명백하게 좀 기사를 내주세요. 그걸로 용서했다, 이런 기사. 너무 황당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이것은 확실하고 명백히 여러분들도 책임이 다 돌아가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걸 명백하게 하려 그랬는데 혼자 생각은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걸 그만둬야 하지 말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맘대로 뭐든지 하고 싶음 하고 팽개치고 하는데 어떻게 30년이나 같이 했는데 해 나왔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마음대로 팽개쳤습니다.

우리 국민들 세계 여러분들이 그 데모에 나오십니다. 그분들도 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했습니다. 이래놓고 또 자기가 사리사욕을 차려서 맘대로 또 국회의원 비례대표도 나갔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저한테 얘기도 없었고 하니까 자기 맘대로 하는 거니까 제가 뭣을 용서합니까? 이름도 성도 없는 용서? 자기 맘대로 했으니까 자기 맘대로 하든지 말든지 하는 거지 저한테 하든 책임을 미룰 필요는 없잖습니까?

물어볼 필요도 없잖습니까? 무엇 때문에 용서를 바랍니까?그게 아니라도 여러 수십만 가지를 제가 다 말씀을 못 드립니다. 속이고 이용하고 재주는 곰이 하고 돈은 받아먹었습니다. 30년 동안 재주 했습니다. 이런 것도 모르고 용서를 바랍니까?

저는 데모 방식을 바꾼다는 거지 끝내는 건 아닙니다. 김학순 할머니가 시작했고 또다시 새롭게 좀 학생들한테 교육적인 것을 하기 위해서 제가 이걸 바꾼다 했습니다. 그러면 먼저들 얘기했습니다. 일본과 한국은 이웃 나라입니다. 이러면 이 학생들이 결국에는 그 나라 주인 아닙니까. 이 학생들이 알아야 사죄 방식을 하는지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일본 아베는 서류 나온 것 다 불살라 버려놓고는 한국이 거짓말한다, 학생들한테 물으면 한국이 거짓말쟁이다, 거짓말만 한다, 이렇게 나오니까 그것도 몰라서 그런 것 아닙니까.
우리 학생들도 몰라서 그렇고. 일본 학생들도 그걸 모르고 거짓말만 저 한국이 거짓말만 하는 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겁니다. 일본과 한국을 학생들이 서로 왕래하면서 이게 시한이 오래 갈 겁니다. 가도 이 학생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희 한국이 왜 일본에 배상하고 사죄하라 하니? 무엇 때문에? 이런 얘기 하면 그러면 일본은 왜 하지 않니? 하면 그게 아니라고 하고 거짓말이라 하니까 우리는 그 말만 들었다, 한국이 거짓말만 한다,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걸 학생들한테 가르쳐서 서로 왕래하면 친해지면 속에 할 말도 있고 또 배워야 합니다. 배워야 알지요. 그래서 제가 짧은 생각인지 모르지만, 저로서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대구에 역사관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었습니다. 이걸 누가했습니까? 대구에 아주 유명한 최봉태 변호사가 대표로 있으면서 이것을 했습니다. 그래놓고는 지금은 윤미향을 밀고 있습니다. 윤미향을 밀고 있으면서 어느 날 아침에 할머니 윤미향 욕하지 마세요, 김복동 할머니 존경받고 있지 않습니까 (했습니다.)

그러면 나비기금이라든지 하는 것 김복동 할머니 이름으로 했다고 김복동 할머니 돈입니까? 어느 날 미국을 가기로 했는데 윤미향이 모금을 했어요. 모금을 600만원인가 했는데 저한테 하는 말이 전화가 왔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정신대대책협의회 사람 아니라고 못 오게 해요.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러면서 모금을 허락했습니까? 제가 간다고 했습니까? 그뿐 아닙니다. 그런데도 저는 30년 그거만 얘기했는데 줄줄 나오는 게 엄청나게 나옵디다. 말도 못 하게 나옵디다. 그러면 할머니들 팔아서 그랬으니까 왜 위안부 할머니를 자기가 했습니까. 부정 아닙니까? 이것도 죄를 받아야 합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한쪽 눈 실명입니다. 실명이고 한쪽 눈 조금 보이는 이 할머니를 끌고 다녔죠. 미국으로 어디로 끌고 다니면서 할머니 있을 때 잘해야 하는데 고생시키고 끌고 다니면서 할머니 이용해먹고 그렇게 해놓고도 뻔뻔스럽게 묘지에 가서 눈물 흘려요? 그것은 가짜의 눈물입니다.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그것도 죄인데 죄를 모르고 아직까지 그것은 다 검찰 측에서 밝힐 겁니다.

하지만 정신대대책협의회에서 위안부를 이용한 것은 도저히 용서 못합니다. 이것도 또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제가 나이가 들다 보니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로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과 한국과 학생들 해서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올바른 역사를 공부해서 위안부 문제 사죄하라 배상하라 적어놨습니다.

천년이 가든 만년이 가든 일본이 반드시 해야 합니다. 이걸 하기 위해서 가르치기 위해서는 양국 간 친하게 지내면서 이걸 역사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이니까, 이분들을 올바른 역사 교육을 해서 이 억울하고 누명 쓴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 해결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제가 당해야 하고 이게 죄입니까? 늦게까지 산 게 죄입니까? 왜 이렇게 당해야 합니까? 끝까지 이렇게 당하고 있는 제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할머니들한테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다, 언니, 동생들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와서 나를 용서해달라고 빌랍니다. 그래서 그걸 생각하니까 너무 제가 미안한데 저는 하나도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위안부는 여자입니다. 이것이 세계의 여성분들께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참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세계의 여성 여러분들 저희가 위안부지만 여성이라는 그 두 글자가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하면 이런 것도 내가 좀 미안한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 생각을 했는데 이 기회를 빌려서 모든 여성분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이런 누명도 쓰실 것이고 여자이기 때문에 여자다, 위안부는 여자다, 하는 것 때문에 여러분들도 그런 소리도 들으실 겁니다. 해서 제가 한 사람 한 사람한테 어떻게 합니까. 이런 기자회견을 통해서 세계여성분들한테 이 위안부가 여러분들의 여자라는 두 글자 손상 입었다는 게 참 죄송합니다, 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이 교육을 확실히 두 나라가 서로 왕래하고 친하게 지내서 이 역사를 알아서 이 억울하고 억울한 위안부 문제를 사죄받고 배상해야, 제가 사죄를 받아야 위안부 누명을 벗습니다. 제가 왜 위안부가 성노예입니까. 그 더러운 성노예 소리를 왜 하냐, 그러니까 미국이 들으라고 미국 사람들 겁내라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이렇게 팔아가면서 무엇을 했습니까. 그렇게 한 줄 몰랐습니다. 저 안산이라 하는 곳도 보니까 쉼터를 화려하게 지어놨습디다. 그래서 윤미향 대표, 위대한 대표의 아버님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것들이 엄청나게 나왔는데 그것은 검찰 측에서 다 밝힐 겁니다.

이 죄를 모르고 아직까지도 큰 소리 하고 있는 이 사람들, 죄는 지은 대로 가고 공은 닦은 대로 갑니다. 꼭 이 죄를 물어야 합니다. 그런다고 마음이 제가 편한 건 아닙니다. 고쳐야죠. 이후에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또한 무슨 말씀이 있겠습니까. 여러분들한테 이걸 밝히기 위해서 정말 너무 (많이들) 오셨는데 장소가 너무 좁습디다. 제가 해야 하니까 여러분이 다 오셔서 (기자회견장에) 가시도록 하기 위해 장소를 바꿨습니다.

여러분들 기자 여러분들 부탁드립니다. 꼭 했던 말 그대로 해주세요. 없는 말 추측해서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저를 욕보이는 말씀입니다. 기자 여러분들이 이것을 다 옳은 말씀으로 기사를 내주셨으면,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가 오늘 장소를 바꾸라고 했습니다.

바꿔서 여러분과 같이 앉아서 마지막 얘기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 여러분들도 너무 가슴 아파 할 것이라 제가 요점만 얘기했습니다. 여러분들 그리 아시고 정말 죽겠습니다. 너무 죽겠습니다. 그 좁은 데서 만약에 하면 또 코로나가 퍼졌다고 하는데 걱정이 됐어요. 좁은 데서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여러분들을 이렇게 큰 데 모셨습니다. 그 점을 양해하시고 꼭 기사는 있는 그대로 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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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5차 발사 성공...군집위성 5기 궤도 안착 [세종=뉴스핌] 이경태 기자 =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5차 비행을 마치고 위성 15기를 모두 성공적으로 사출했다.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초소형군집위성(네온샛) 5기를 한 번의 발사로 순차 투입하며 국내 첫 군집위성 발사를 해냈다. 우주항공청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누리호는 7일 낮 12시25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제2발사대에서 이륙해 낮 12시45분 비행을 마쳤다. 우주청은 초소형군집위성 5기와 큐브위성 10기가 성공적으로 사출됐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누리호가 7일 전남 나로우주센터 제2발사대에서 우주를 향해 날아 오르고 있다. [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2026.10.07 photo@newspim.com 누리호는 이륙 뒤 1단과 페어링, 2단을 차례로 분리하고 3단 엔진으로 고도 약 575km에 올랐다. 이어 네온샛 2호를 시작으로 5기를 35~40초 간격으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내보냈고, 부탑재위성인 큐브위성 10기를 10초 간격으로 2기씩 사출했다. 오태석 우주항공청장은 이날 오후 1시께 나로우주센터 임무지휘센터(MDC)에서 "오늘 누리호는 예정된 발사 시각 12시 25분에 정상적으로 발사되었으며, 이는 그간 발사 이력상 최초로 예정 시간에 발사가 이루어진 사례"라고 말했다. 오 청장은 현재까지 확인된 비행 정보와 영상을 종합하면 누리호가 예정된 비행 절차에 따라 목표 궤도에 도달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초소형군집위성 5기도 계획된 순서에 따라 모두 분리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까지 확인된 위성 분리 과정과 비행 상황을 종합하면 위성 분리는 당초 계획에 따라 정상적으로 수행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오 청장은 이번 발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군집위성 5기를 우주공간에서 안전하게 분리하는 것이었다며, 이를 위해 발사체 3단이 설정된 각도와 시간 간격에 따라 자세를 바꿔가며 위성을 순차적으로 분리하는 새로운 기동 방식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항우연은 나로우주센터와 제주추적소, 필리핀 동쪽의 팔라우추적소에서 받은 발사체의 작동 상태와 위치·속도·자세 정보를 바탕으로 누리호가 목표 궤도에 정확히 도달했는지, 각 위성이 계획된 시점과 조건에 따라 정상적으로 분리됐는지를 정밀 분석하고 있다. 임무를 마친 누리호 3단은 분리된 위성과의 충돌과 궤도상 자발적 폭발을 막기 위해 남은 산화제와 헬륨 등 잔여가스를 배출하는 후속 조치도 마쳤다. ◆ 국내 첫 군집위성 발사…위성 5기 '다방향' 분리 이번 발사는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위성 여러 기를 한 번의 발사로 순차 투입한 국내 첫 군집위성 발사다. 누리호 상단은 위성끼리 부딪히지 않도록 자세를 제어하며 네온샛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내보냈다. 우주청에 따르면 2호와 3호, 5호와 6호 사이에는 60도, 3호와 4호, 4호와 5호 사이에는 30도씩 기울기를 바꿔가며 분리하도록 설계됐다. 큐브위성까지 모두 분리한 뒤에는 누리호 상단과 위성 간 충돌을 막기 위한 회피 기동을 수행한다. 누리호 5호기 3단에 장착이 완료된 초소형군집위성(네온샛) 2~6호 5기. [사진=우주항공청] 여러 위성을 연달아 내보내기 위해 탑재부 설계도 바꿨다. 기존 누리호의 소형 위성분리장치를 바탕으로 일체형 클램프 밴드 방식의 저충격 위성분리장치를 새로 개발해 처음 적용했고, 큐브위성을 싣기 위한 하부링도 새로 달았다. 위성부 무게는 네온샛 5기 약 500kg, 큐브위성 10기 약 96kg, 위성사출장치와 어댑터 약 475kg을 합쳐 약 1071kg이다. 차세대중형위성 3호를 실었던 4차 발사(약 960kg)보다 무거워졌다. 목표 고도는 4차 600km에서 이번에 570km로 낮아졌다. 네온샛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소가 개발을 총괄한 100kg 미만 초소형 지구관측위성이다. 항우연이 지상·검보정·활용 시스템을, 쎄트렉아이가 위성 본체와 탑재체를 함께 개발했다. 흑백 1m급·컬러 4m급 해상도의 전자광학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은 국가안보와 산불·홍수 등 재난·재해 대응에 쓰인다. 이번에 올린 5기는 1차 양산기다. 2027년 6차 발사에서 2차 양산기 5기(7~11호)가 더해지면 10기가 두 개의 궤도면에서 군집을 이룬다. 군집이 갖춰지면 한반도를 하루 3회 이상 촬영하고 같은 지점을 24시간 안에 다시 촬영할 수 있다. 10기를 운영하면 하루 약 70만㎢의 영상을 얻을 수 있다. 과학커뮤니케이터인 강성주 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한국과학기술미디어센터에 "이제 누리호의 성공 기준도 단순히 끝까지 비행에 성공해 위성을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가에서, 실제 배치나 요구 조건이 더 까다로워진 위성 임무를 얼마나 정확하게 수행했는가로 넓어지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민간 인력이 콘솔 잡았다…한화에어로 42명 투입 체계종합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역할도 커졌다. 누리호 1~3호기는 항우연이 제작을 주관했지만, 4호기부터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제작을 주관하고 있다. 이번 5호기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제작을 총괄 주관했다. 발사운용 참여 범위도 넓어졌다. 이번 발사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발사통제센터(LCC) 콘솔 22개 중 20개에 23명이 참여해 18명이 콘솔을 직접 운용했다. 임무지휘센터(MDC) 6명, 발사대(LP) 10명, 발사체 이송 안전 3명을 더하면 모두 42명이다. 4차 발사 때는 콘솔 조작을 항우연이 맡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참여에 그쳤다. 이번에는 상당수 콘솔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인력이 조작하고 항우연은 관리·감독을 맡았다. 발사운용 주관은 1~4차와 마찬가지로 항우연이 맡았다. 민간의 역할은 6차부터 더 커진다. 누리호 6호기부터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단조립 공장에서 단 조립을 마친 뒤 바닷길로 나로우주센터에 옮겨 전체 조립을 한다. 6차 발사에서는 기술이전 대상인 발사통제센터 콘솔 거의 전부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운영할 예정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4~7차 발사운용에 참여하며, 고도화사업이 끝난 뒤 누리호 후속 발사를 민간 주도로 이어가기 위한 기술을 익히고 있다. ◆ 1차 실패 딛고 2~4차 성공…5차 위성 15기 사출 누리호는 2021년 10월 1차 발사에서 1.5톤급 위성모사체를 궤도에 올리지 못했다. 이듬해 6월 2차 발사에서는 성능검증위성과 1.3톤급 위성모사체를 궤도에 올리며 개발에 성공했다. 2023년 5월 3차 발사에서는 차세대소형위성 2호와 큐브위성 7기를, 2025년 11월 4차 발사에서는 차세대중형위성 3호와 큐브위성 12기를 실어 날랐다. 3차 발사부터는 반복 발사로 신뢰성을 높이고 기술을 민간에 이전하는 한국형발사체 고도화사업(2022~2028년, 사업비 7968억8000만원)으로 진행되고 있다. 2027년 6차 발사에는 네온샛 7~11호가, 2028년 7차 발사에는 차세대중형위성 5호가 주탑재위성으로 실릴 예정이다. 위성이 궤도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는 지상국 교신으로 확인한다. 네온샛은 초기 운영 기간 대전 항우연 지상국이 주관제소를 맡고, 노르웨이 스발바르 지상국이 위성당 100회가량 관제를 지원한다. 남극 세종기지 지상국도 초기 운영에 활용된다. 정상 운영에 들어가면 제주 국가위성운영센터가 주관제소가 된다. 구체적인 비행 결과와 위성의 궤도 투입 결과는 정밀 분석이 끝나는 오후 2시께 프레스센터 상세 브리핑에서 발표된다. 네온샛 초기 교신 결과는 오후 4시30분께 공개할 예정이다. 큐브위성 10기의 교신 종합 결과는 13일께 발표한다. biggerthanseoul@newspim.com 2026-10-0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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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주인 찾는 홈플러스, 희망퇴직 카드 꺼냈다 [서울=뉴스핌] 남라다 기자 = 홈플러스가 경영 정상화를 위한 인력 구조조정에 나섰다.  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이날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와 홈플러스 일반노조에 희망퇴직 시행 관련 공문을 발송했다. 신청 기간은 이날부터 오는 22일까지다. 퇴직일은 이달 31일이며, 회사는 퇴직금을 다음달 14일까지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홈플러스. [사진 = 뉴스핌DB] 홈플러스는 앞서 지난달 15일 각 노조와 만나 경영 상황을 설명하고 정상화 방안의 하나로 희망퇴직을 언급했다. 이번 희망퇴직은 매출 부진과 대형마트 사업 매각의 어려움이 이어지는 가운데 추진됐다. 홈플러스는 최근 매출이 당초 예상에 미치지 못하고, 대형마트 부문 매각 의향자 확보에도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회생계획안 인가 이후 경영 정상화에 힘쓰고 있으며, 구조혁신을 통해 전반적인 영업환경을 안정시키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nrd@newspim.com 2026-10-0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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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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