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영덕 양성리유적에서 해안을 침입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시대 성곽이 확인됐다.
문화채청(청장 정재숙)의 허가를 받아 영덕 양성리유적을 발굴조사하는 (재)성림문화재연구원(원장 박광열)에 따르면 이번에 확인된 고려시대 성곽은 야산 정상부의 약간 아래쪽을 원형으로 돌아가며 땅을 굴착하고 성벽을 쌓아 올린 테뫼식(산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성벽을 두른 형태) 구조다.
발견된 성곽은 계곡을 가로막아 만든 동쪽 성벽까지 고려하면 테뫼식과 포곡식(하나 또는 여러 개의 계곡을 감싸도록 성벽을 쌓은 형태)이 혼합된 형태다. 둘레 약 400m, 내부 면적은 1만㎡가량으로 일반적인 성곽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라 중요 거점을 보호하기 위해 축조된 보루(적의 공격을 제어하는데 유리한 성곽 시설물)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영덕 양성리유적 조사지역 전경 [사진=문화재청 2020.03.05 89hklee@newspim.com |
성벽은 흙과 돌을 섞어 쌓는 토석혼축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높이는 2.6m, 너비는 7m 정도 남아있다. 성 안쪽에 해당하는 내벽의 경우 땅을 굴착하지 않고 자연지형에 30~50cm가량 산돌과 냇돌을 3~5단 정도 안으로 들여쌓기 해 경사지게 조성됐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성지 동쪽 내벽·배구수 전경 [사진=문화재청] 2020.03.05 89hklee@newspim.com |
지대가 낮은 아래쪽 외벽은 원래 지형 일부분을 수직으로 자른 후 바깥쪽으로 산돌과 냇돌을 쌓고 그 안쪽으로는 점토와 모래가 많이 섞인 사질토를 20차례 이상 엇갈리도록 수평(판축형태)으로 다져 넣어 쌓았다. 한편 남쪽과 남동쪽 성벽의 외벽 바깥쪽에서는 가장자리를 따라 일정 간격(420~470cm)으로 편평한 냇돌을 뒀는데 목책(말뚝을 울처럼 두른 형태)기둥을 높기 위한 시설로 추정된다. 다만 목책 관련 시설 주변으로 불에 그을린 흔적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목책은 화재로 소실된 것으로 판단된다.
성곽 내부에서는 건물지(창고·망루시설) 12기, 배수시설 등이 확인됐다. 해안이 조망되는 성곽의 정상부에는 사각의 망루 시설을 만들었고 그 동쪽으로 온돌을 갖춘 건물지 4동을 조성했다. 이와 함께 남쪽 성벽 내벽을 따라 사각형의 건물지 7개를 일렬로 배치했는데 이 중 일부는 화재로 소실된 후 건물을 다시 조성해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4호 건물지 내부에는 디딜방아 시설과 함께 다량의 탄화미가 확인돼 곡식 창고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출토유물 [사진=문화재청] 2020.03.05 89hklee@newspim.com |
과거 문헌 기록에서 양성리유적 성곽이 언급된 것은 확인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고려사>에 '왜구가 강릉부 및 영덕현·덕원현을 노략질했다(세가 권 43 1372년 6월6일), 왜구가 송생·울진·삼척·평해·영해·영덕 등지를 침략하고 삼척현을 불살랐다.(권134 열전 권제47 1381년 3월)'는 기록을 보면 양성리 일원 주변은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양성리유적 성곽은 동해안 지역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고려시대 토석혼축 목책성곽이라는 점과 더불어 성곽 내 건물의 배치, 성벽 축조기법과 구조의 특이함은 그 당시 성곽축조 방법과 구조 변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발굴현장은 코로나19 진행 추이를 검토해 추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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