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구로공단 조성 목적 농지 강제수용
대법 배상 인정…'소멸시효' 헌재 위헌 적용
[서울=뉴스핌] 장현석 기자 = 박정희 정권 시절 구로공단 조성 과정에서 농지를 강제로 빼앗긴 농민과 유족들이 국가로부터 660억원대 배상금을 받게 됐다.
3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박모 씨 등 17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660억여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지난달 14일 확정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이번 재판의 쟁점인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5년)와 관련해 대법원은 중대한 인권 침해 등이 발생한 과거사 피해자에게 일반적인 소멸시효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에 대해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5년인) 장기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원심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따라 효력이 없게 된 규정을 잘못 적용했으나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한 결론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8월 "과거사 사건에 대해 민법상 소멸시효 제도를 적용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를 적용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헌재는 민법과 국가재정법 등에 따라 불법행위가 있던 날부터 5년, 손해 및 가해자를 인지한 날로부터 3년간 국가배상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가 소멸하지만 공권력에 의한 피해자들을 일반적인 경우와 동일 선상에 놓아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법원에 따르면 '구로공단 분배농지' 사건은 1961년 9월 정부가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구로공단)를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서울 구로구 구로동 일대 땅 약 30만평을 강제수용하면서 발단이 됐다.
당시 이곳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은 해당 땅이 1950년 4월 농지개혁법에 따라 서울시로부터 적법하게 분배받았다며 1967년 3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박정희 정권은 구로공단 조성에 차질이 빚을 것을 우려해 권력기관을 동원한 대대적인 소송 사기 수사에 들어갔다. 농지 분배 서류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며 농민들과 함께 농림부 등 각급 기관 농지 담당 공무원까지 잡아들인 끝에 유죄 판결을 받아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민사재판 재심을 청구했고 1989년 토지 소유권을 돌려받았다.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8년 7월 이 사건을 국가의 공권력 남용으로 벌어진 일이라며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후 피해 농민과 그 유족은 형사사건 재심을 청구해 2011년 12월 무죄를 확정받았다.
유족들은 민사 재심 판결에 대한 재심도 청구했다. 정부의 종전 재심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들이 2013년 4월부터 확정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박 씨 등은 "정부의 불법행위로 권리를 상실해 손해를 입었다"며 배상과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소유권이전등기 청구를 각하했지만 정부 소속 공무원의 불법행위로 인해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는 인정된다며 651억여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2심은 농지 소유권 취득이 불발된 1998년 당시 토지 시가에서 상환 액수만큼 제외한 부분을 유족이 배상받아야 할 손해액으로 산정해 664억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소유권이전등기 청구는 마찬가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원심은 소멸시효 5년이 완성됐음을 전제하면서도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은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이 정당하다며 그대로 확정했다.
kintakunte8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