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포기하지 않겠다'라는 중국 정부 의지 반영
위축된 홍콩 증시 구제 역할 기대
[서울=뉴스핌] 강소영 기자=17일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회)가 홍콩 H주 비유통주의 전면적 거래(유통) 허용에 대한 국무원의 비준을 획득하고, 향후 관련 제도 개혁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H주 비유통주의 유통화 개혁은 심각한 침체에 빠진 홍콩 증시에 있어 매우 큰 호재가 될 전망이다. 특히 시장은 이번 H주 제도 개혁 단행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몇 년 간 'H주 유통화 개혁' 시행 일자를 신중하게 조율하던 중국 증권당국이 홍콩 시위 사태로 정국이 매우 혼란한 '민감한 시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36kr 등 중국 매체는 '베이징'이 이번 개혁을 통해 장기간 이어진 시위로 위축된 홍콩 증시 회복을 유도하도, 홍콩을 '사수'하겠다는 의중을 시장에 전달한 것으로 분석했다.
◆ H주 유통화 개혁, 어떤 의미
홍콩 증시는 올해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글로벌 증시가 역대 최고점을 찍으며 호황을 보인 것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뤘다. 미국 3대 증시 지수는 11월 들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상하이지수는 2900선 아래로 떨어졌지만, 연초 대비 상승률이 16%를 넘는다. 일본과 유럽 증시도 급등했다. 홍콩 항셍지수만 0%에 가까운 상승률을 나타냈다. 지난주(11월 4~15일) 한 주 동안 5% 넘게 빠졌다. 한 주 낙폭이 5~6%에 달하는 것은 홍콩 증시에선 흔한 일이 돼버렸다.
심각하게 침체된 홍콩 증시를 살리기 위한 카드로 중국 정부가 H주 유통화 개혁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H주 유통화 개혁을 이해하기 위해선 H주와 홍콩 상장 중국 기업 종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중국에선 주식을 국내주식(domesticshares·內資股)과 외국주식(foreignshares·外資股)으로 분류한다. 전자는 위안화로 표시되고 중국 국내 증권거래소에서 위안화로 거래되는 주식을 가리킨다. 후자는 중국 본토에 소속된 기업이 위안화로 발행한 주식이지만, 위안화 이외의 통화로 거래하는 주식을 가리킨다. 홍콩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주식이 외국주식(外資股)에 속한다.
H주는 중국 본토에 등록된 기업이 홍콩거래소에서 발행한 주식을 가리킨다. 위안화로 가치가 표시되지만, 거래는 홍콩 달러로 이뤄진다. 앞에서 언급한 분류에 따르면 외국주식(外資股)에 속한다. H주 발행 상장사는 국내에서만 유통이 허용되는 국내주식(內資股)과 홍콩에서 거래되는 외국주식을 모두 가지게 된다.
특이한 점은 외국주식으로 분류된 H주만 홍콩증시에서 거래가 허용되고, 국내주식에 포함된 대주주 보유 지분은 비유통주라는 이름으로 거래를 할 수 없도록 한 점이다. H주 거래 제도를 설계할 당시 중국 정부가 기업의 외국자본은 장려하면서, 대주주가 보유한 중국 자산이 외국에 함부로 팔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 장치다.
문제는 H주 종목 상당수가 거래를 할 수 없는 비유통주의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일례로 호텔 서비스 기업 진장캐피탈(錦江資本·2006.HK)의 그룹 전체 지분 가운데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한 종목의 비중은 25%에 불과하다. 대주주가 보유한 75%에 달하는 지분은 매매가 불가능하다.
증감회가 이번에 발표한 전면 유통화 개혁은 거래를 할 수 없도록 제한한 대주주의 지분도 시장에서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 바뀌는 H주 거래 제도, 홍콩 증시에 어떤 순기능 하나
기존 H주의 비유통주 제도는 나름의 순기능이 있었다. 상당수 지분이 거래할 수 없도록 묶여있던 탓에 일반 주주들이 대주주의 '먹튀'를 우려할 필요는 없었다. 중국 자본시장에서는 회사 주식이 오르면 대주주들이 보유 지분을 대량 매도해 차익을 챙기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일종의 보호예수 주식이 대량으로 시장에 쏟아지면서 해당 종목은 물론 주가지수가 하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현재 H주의 규제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훨씬 큰 것으로 지적받고 있다. 대주주가 보유 지분을 거래할 수 없다 보니 △ 자본조달을 통한 기업 발전 △ 매도를 통한 기업가치 실현이라는 기업공개(IPO)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된 것이다. 현재로선 자본조달만 가능한 반쪽짜리 IPO인 셈이다.
기타 여러 가지 문제점도 초래했다. 우선 대주주 혹은 기업 소유자들의 경영 원동력을 약화시켰다. 회사를 잘 경영해 주가가 올라가면 보유 자산도 늘어나고, 필요할 경우 보유한 주식을 현금화할 수 있지만 비유통주로 묶여있는 상황에선 굳이 주가를 올리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중국 주식시장에서 활발한 주식담보 대출도 불가능하다. 사실상 거래가 안되는 주식을 담보로 자금을 제공하는 금융사가 없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기업 가치가 실제보다 저평가되는 사례가 많다.
H주 대주주들은 '편법'을 통해 자구책 마련에 나서기도 한다. H주 종목 상장사가 A주 상장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제도상 허점을 이용해 중국 본토 상장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는 가뜩이나 까다로운 심사로 IPO 대기 시간이 긴 A주의 적체 현상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홍콩거래소에서 H주 섹터 역시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아왔다.
36kr은 H주 전체 주식 유통이 H주 거래 활성화와 홍콩거래소 시장 회복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 중국 정부, '홍콩 포기할 수 없다'라는 메시지 전달
특히 H주 제도 개선에 나선 '시점'의 특수성이 개혁의 효과를 극대화 할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 증감회는 2017년부터 H주 전면 유통화 시범 테스트 방침을 발표했다. 당시 시범 시행 대상에 선정된 기업은 세 곳에 불과했다. 2018년 4월 레노버(聯想,03396.HK), 5월 중국항공과기공업(中航科工,02357.HK), 7월 의료기기 업체 웨이가오구펀(威高股份,01066.HK)을 끝으로 추가 시범 대상자는 발표되지 않았다.
증감회가 H주 주식 유통거래 제도 시행에 매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홍콩 정국이 극도로 불안하고, 시장이 위축된 지금 제도 개혁에 나선 것은 홍콩 경제와 시장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중국 매체는 분석했다.
중국 증감회는 본토 증시에서도 유사한 제도 개혁으로 성과를 거둔 경험이 있다. 2005년 단행된 비유통주의 유통화 개혁이다. 중국은 1990년대 국영기업을 상장하면서 주식을 비유통주와 유통주로 구분, 유통주만 증권거래소에서 매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하자 비유통주를 유통주로 전환하는 제도 개혁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결국 2005년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문제점을 보완해 다시 한 번 유통주 개혁에 나섰다. 이후 중국 증시가 외형적인 성장을 이루는 등 성과를 거뒀다.
js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