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17회 아시아직업환경 피해자대회
"한국·일본·홍콩·대만 과로사 심각...기업·정부 책임 외면"
[서울=뉴스핌] 윤혜원 기자 = "2012년 2월 21일 선술집 체인점에서 일하던 모리미나 씨가 과로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하다 숨졌습니다. '몸이 아파요. 몸이 힘들어요. 기분이 가라앉아요. 빨리 움직일 수 없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누군가 도와주세요.' 불과 2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모리미나 씨의 수첩에 남아있던 말입니다."
일본 과로사방지오사카센터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키타데 시케루 씨는 2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제17회 '아시아 직업환경 피해자 대회'에서 일본의 과로사 사례를 소개했다.
'아시아 직업 및 환경 피해자 권리 네트워크'(ANROEV)는 2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제17회 '아시아 직업환경 피해자 대회'를 열고 일본, 대만, 홍콩 등 아시아 지역의 과로사 문제를 살펴보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2019.10.29. hwyoon@newspim.com |
'아시아직업및환경피해자권리네트워크'(ANROEV)가 주최하는 이번 대회에서는 일본, 대만, 홍콩 등 아시아 지역의 과로사와 과로자살 문제를 살펴보는 워크숍이 진행됐다.
이날 발제에 나선 키타데 사무국장은 "일본은 1980년대부터 비정규직이 꾸준히 증가했으며 최근 노동조합 조직률은 17%에 불과하다"며 "노동자에 해고를 빌미로 고강도 노동이나 노동조건 저하를 강요하고 '파워 하라스먼트'(power-harassment·직장 내 괴롭힘)를 일삼는 '블랙기업'이 속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에서는 노동계약법에 따라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없지만 블랙기업은 해고를 '개인 사정 퇴직'으로 둔갑시킨다"며 "해고를 앞세워 노동자를 실적 경쟁과 장시간 노동으로 몰아넣는 것이 블랙기업의 특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52만여명의 서명이 모여 2014년 '과로사방지법'이 제정됐지만 블랙기업이 지속적으로 생존하는 현실은 여전하다"며 "일본 정부는 표면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시정한다고 하면서 기업에 유리한 정책들을 도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콩의 신만시우 활동가는 "홍콩에서도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에 압박을 느끼는 데 대해 20여년 째 논의 중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공식 기준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며 "조사 결과 과로로 인한 극단적 선택은 올해에만 19건이 발생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진단했다.
이어 "홍콩 전체 노동자의 58% 가량을 차지하는 정규직 노동자들도 법정 노동시간을 넘어 근무를 한다. 특히 육상 수송, 건설 분야 등에서 초과근무가 만연한 상황"이라며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100명 안팎의 노동자들이 과로로 사망했다"고 강조했다.
대만의 린슈젠 활동가는 "1990년대 초부터 과로사 논의가 시작됐지만 큰 실효성을 거두지는 못했다"며 "2017년 과로사나 업무 질병 피해는 74건이 보고돼 있으며 드러나지 않은 숫자는 더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화이트칼라와 청년들의 과로 문제도 조명 받는 중이다. 차이나에어라인 스튜어디스들이 초과근무 반대 시위를 벌였는데, 당시 슬로건은 '돈은 원치 않으니 휴식을 달라'였다"며 "대만 정부는 노동시간을 2주당 84시간을 넘기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초과근무로 인한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에 최근 초과근무 시간을 명확히 입증하는 문제가 난제로 떠오르고 있다"며 "과도한 업무로 숨진 한 운전기사의 유족들도 피해를 호소했지만 초과근무 시간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아시아직업및환경피해자권리네트워크는 1990년대 태국과 중국 등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와 건물 붕괴 사고로 수많은 노동자가 사망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20여개국 시민운동가와 전문가가 결성한 단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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