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감 내세운 여름 아이돌 장기집권 사라져
긴 제목 호기심 유발…마케팅 기법으로 정착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올해 가요계의 트렌드가 바뀌었다. 매년 여름 아이돌의 청량한 노래들이 음원차트를 장악했다면, 이번에는 정반대다. 가을‧겨울에 사랑받는 발라드가 여름부터 강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간결함이 아닌, 긴 제목의 곡들이 대중을 홀리고 있다.
◆ 여름부터 가을까지…음원시장 장악한 발라드
올여름에는 솔로가수들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벤, 김나영, 임재현, 송하예, 윤하까지. 이들은 모두 여름에는 다소 무겁게 들릴 수도 있는 짙은 감성의 발라드를 들고 나왔다. 청량함을 내세우는 아이돌 시장에 빈틈을 노린 셈이다. 그 결과, '발라드 전성시대'라는 말까지 탄생시키며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
긴 제목과 발라드로 사랑받는 첸, 송하예, 악동뮤지션, 헤이즈(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사진=뉴스핌DB,스튜디오블루,YG엔터테인먼트] |
여름에 발라드로 사랑을 받았던 만큼, 가을에 컴백하는 가수들 역시 탄력을 제대로 받았다. 가을에 컴백한 악동뮤지션, 헤이즈, 폴킴, 케이시, 황인욱, 첸 모두 발라드로 또 다시 차트를 휩쓸고 있다.
악동뮤지션이 3년 만에 발매한 세 번째 정규앨범 '항해'의 타이틀곡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는 지난달 25일 발매돼 한 달이 흐른 현재에도 멜론 음원차트(24일, 오후 3시 기준)에서 1위를 지키고 있다.
'니 소식'으로 역주행 신화를 쓴 송하예가 최근 발매한 '새 사랑'도 2위, 임재현의 '조금 취했어(Prod.2soo)'도 3위를 랭크되면서 발라드 강세를 직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가온 디지털차트 42주차(10월 13일~19일 집계) 역시 악동뮤지션과 헤이즈가 나란히 1, 2위에 이름을 올렸고, 송하예와 임재현, 장덕철, 폴킴이 4위부터 7위까지 발라드로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외에도 전상근, 마크툽, HYNN(박혜원), 케이시, 첸도 차트에 오르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처럼 발라드가 오랜 기간 사랑받는 것은 이례적인 결과다. 올해 세븐틴과 뉴이스트, 청하, 있지(ITZY) 등 내로라하는 아이돌이 대거 컴백하고 차트 상위권에는 올랐지만, 발라드의 강세에 이전과 같이 장기집권으로 이어지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 열 글자는 기본…또 다른 트렌드로 자리잡은 '긴 제목'
음원차트를 보고 있으면 또 하나, 독특한 점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긴 제목'이다. 장범준부터 시작해 악동뮤지션, 거미의 노래 모두 10글자는 가볍게 넘어버린다. 제목이 너무 길다 보니 휴대폰으로 음원을 스트리밍할 때 제목이 잘려 안 보이는 현상까지 발생한다. 그럼에도 많은 가수들이 긴 제목을 선호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긴 제목으로 사랑받는 장범준과 거미의 노래 [사진=삼화네트웍스,냠냠엔터테인트먼트] |
멜론의 일간 차트 1,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악동뮤지션과 장범준의 노래 제목은 각각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 거야'로 모두 19자다.
거미가 부른 tvN '호텔 델루나' OST '기억해줘요 내 모든 날과 그때를', 임재현의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 먼데이 키즈의 '사랑이 식었다고 말해도 돼' 모두 10글자가 훌쩍 넘는다. 최근 컴백한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널 기다려'도 15글자나 된다.
예전에는 짧은 제목으로 곡의 분위기를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게 유행했다. 이제는 긴 제목으로 곡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그대로 드러낸다. 긴 제목은 가수들의 또 다른 마케팅 비법이기도 하다. 짧은 제목에 비해 긴 제목은 대중의 관심을 받기에 수월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한 가요 관계자는 "최근 발라드는 옛 감성과 더불어 기승전결이 뚜렷하다. 그래서 듣는 것은 물론, 따라 부르고 싶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에 혼자 노래방을 가는 것과, 유튜브에서도 노래방에 대한 관련 콘텐츠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노래방에서 부르기 좋은 발라드가 사랑을 받는 추세다. 현 트렌드가 음원시장까지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어 "긴 제목의 노래들을 보면 가사가 그대로 사용됐다. 제목으로 인해 어떤 스타일의 곡인지 대중도 쉽게 감을 잡을 수 있고, 10글자가 넘어가기 때문에 호기심까지 자극해 하나의 마케팅 수단이 된다. 가수들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예전과 달리 긴 제목을 선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alice0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