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걸이부터 생리대에 이름 적어놔"...과도한 규율 강요
이성 교제 적발되면 삭발..동성 선수 간 유사 성행위 강요도
인권위, 오는 24일 '학생선수 기숙사 실태조사' 결과 발표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 체육고등학교 육상부에 진학한 A양은 합숙 생활을 한 이후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하고 있다. 지켜야 할 규율이 많은 데다 일상적으로 단체 기합을 받는 탓이다. 기숙사 내에서는 항상 흰색 양말만 신어야 하고 침구나 옷 정리도 군대처럼 '각'을 맞춰야 한다. 양말 개는 법부터 속옷 개는 법까지 모두 규칙으로 정해져 있다. 개인 옷걸이는 물론 생리대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놓아야 한다. 심지어 후배들은 군인처럼 관등성명도 외쳐야 했다. 선배들이 후배의 물건을 만지면 "000호실 0번 000입니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목소리가 작거나 대답 속도가 느리면 기합을 받아야 했다. 화장실을 나가거나 생활실을 나갈 때는 선배에게 "나가 보겠습니다"라고 인사해야 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스포츠분야 폭력·성폭력 완전한 근절을 위한 특별조사단 구성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을 하고 있다. 2019.01.22 mironj19@newspim.com |
# 또다른 체육고등학교 축구부 선수인 B군은 동성 선배로부터 2년 동안 유사 성행위를 강요받았다. 이 선배는 인적이 드문 기숙사 창고로 B군을 불러내 한 달에 한 번씩 자신에게 유사 성행위를 해달라고 했다. 놀란 B군은 "장난치지 말라"며 상황을 모면했다. 하지만 선배는 대담하게도 다른 선수들이 있는 곳에서도 B군에게 유사 성행위를 요구하는 발언을 했다. B군이 이를 거절하자 선배는 B군의 신체 부위를 때리거나 어머니를 성적으로 조롱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 사실은 B군이 지도교사와 상담을 받으면서 처음 밝혀졌다. 학교 측은 즉각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어 가해 학생에게 특별교육 이수를 명령했다. 또 가해 학생이 다른 학교로 전학가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중·고등학교 학생선수들이 합숙하는 기숙사가 인권침해의 온상이 됐다. 선배의 폭언과 폭행은 물론 코치가 학생선수를 성폭행하는 등 인권침해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학생선수들에게 지나친 규율을 강요하거나 선배들이 후배에게 수시로 폭언, 폭행 등을 가한 사례를 무더기 적발했다고 23일 밝혔다.
인권위 스포츠특별인권조사단(특조단)은 지난 6월부터 4개월간 전국 16개 학교를 대상으로 '학생선수 기숙사 실태조사'를 벌였다. 특조단 조사결과 학생선수 기숙사에서 △과도한 생활수칙 강요 △휴대폰 사용제한 △외출 제한 △삭발 강요 등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 체육고등학교는 학생들의 휴대폰을 압수했다가 토요일 하루만 사용을 허락해주고 이성 교제를 하다 적발되면 삭발을 강요했다. 의류를 각 잡아 개도록 하거나 관등성명을 외치도록 하는 등 '병영적 통제'도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특조단 조사에서 학생선수 기숙사 내에서 최근 4건의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한 학생선수는 중학교 때 코치로부터 개인적인 만남과 음주를 강요받다가 고등학생이 된 후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권위는 △기숙사 내 상습 구타 △단체 기합 △동성 선수에 의한 유사 성행위 강요 △성희롱 및 신체폭력 등의 추가사례도 확인해 구체적인 사건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인권위는 오는 24일 오후 2시 서울YWCA 대강당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학생선수 기숙사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관련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이번 조사를 통해 학생선수 기숙사 내에서의 인권침해가 여전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학생선수 기숙사 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관련 부처 등에 권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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