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잃지 않도록...국회가 뜻을 모을 때"
피해자 부모들 참석...눈물바다 된 기자회견장
[서울=뉴스핌] 이학준 기자 = 어린이 교통사고 방지법인 '하준이법'의 하준이 어머니와 '태호·유찬이법'의 태호 아버지, '민식이법'의 민식 아버지가 법률 통과를 눈물로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이 끝나고도 국회의사당 울타리를 부여잡은 채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교통사고 등으로 사망한 아이들 부모와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어린이 교통사고 방지법 통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아이들 이름이 붙은 법안들을 국회가 하루라도 빨리 통과시켜 다시는 우리 아이들을 잃지 않도록 힘을 실어달라"고 촉구했다.
[서울=뉴스핌] 이학준 기자 =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이들 부모들과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교통사고 방지법 통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9.10.21. hakjun@newspim.com |
이들은 "볼 수 없는 아이들 이름에 '법' 자를 붙이고 법안 통과를 위해 백방으로 뛰는 것이 과연 어떤 심정인지 우리 중 누가 상상할 수 있겠냐"며 "이 법안은 보도자료나 의정보고서 소재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아이들이 다치고 죽는 위험에 처해 있다"며 "지역구 예산과 선거운동이 당신들의 눈을 멀게 만들지 않기 바란다. 어린이 생명안전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위해 각 당 원내대표들이 뜻을 모을 때다"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하준 군 어머니 고모 씨와, 태호 아버지 김모 씨, 민식이 아버지 김모 씨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아이들 이름을 딴 법안의 통과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었다. 기자회견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눈물이 터졌다.
하준 군 어머니는 "사고로 하준이를 보낸지 올해 10월로 2년 됐지만 저는 사고 날로부터 아직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못했다"며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하준이법은 반쪽이고, 저는 계속 이 생지옥에 남아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연히 차가 서 있어야 하는 주차장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길 바라는 게 욕심이고 요구냐"며 "우리를 성난 부모가 되게 하지 말고 온전히 떠난 아이 묻게 해달라"고 덧붙였다.
민식이 아버지는 "우리가 국회에,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당신들 때문에 아이들이 죽었다'고 화를 내야 한다. 그런데 거꾸로 우리가 부탁하고 있고, 눈물로 호소하고 있지 않느냐"며 "제발 부모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다면 다른 걸 다 제쳐두고 아이들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전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이들 부모들은 국회의사당 울타리를 부여잡고는 눈물을 훔쳤다. 울음을 멈추지 못하면서도 서로를 다독였다.
[사진=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 제공] |
당시 4살이었던 하준 군은 2017년 10월 서울랜드 동문주차장에서 주차된 자량이 굴러 내려와 사망했다. 이에 2018년 1월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하준이법을, 올해 7월 이용호 무소속 의원이 제2 하준이법을 각각 대표발의했지만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하준이법은 경사진 곳에 노상 또는 노외 주차장을 신설할 경우 미끄럼 방지를 위한 고임목 설치 및 미끄럼 주의 안내표지 등을 구비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8살 태호·유찬 군은 올해 5월 인천 송도 축구클럽 차량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해당 축구클럽은 현행법에 따른 체육시설업체 해당되지 않았고, 사고 차량은 도로교통법상 어린이 통학버스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아 논란이 됐다.
이에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올해 5월 체육 교습을 하는 축구 클럽 등이 어린이 안전 통학을 위한 의무를 준수하도록 하는 태호·유찬이법을 발의했으나 현재 소관위 회부 미상정 상태다.
올해 9월 9살이었던 민식 군은 충남 아산에서 차량사고로 사망했다. 민식 군이 사망한 곳은 어린이 보호구역인 스쿨존이었다. 그러나 스쿨존에서 사망사고를 일으킨 운전자에 대한 별도의 처벌 규정이 없어 비판 여론이 일었다.
이에 어린이 보호구역 내 무인교통단속 장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민식이법이 발의됐지만 2달 째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밖에도 '해인이법', '한음이법' 등 차량사고 등으로 세상을 떠난 아이들 이름을 딴 아동 교통사고 방지법들은 통과되지 못한 채 잠들어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정미 의원은 "우리 사회에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뛰고 있는 사람 앞에서 국회는 초라하고 작아 보인다"며 "이 자리에서 주신 질타와 비판을 잘 수용하고 (법이 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아이 부모들과 정치하는엄마들은 일주일 동안 전체 의원실에 개별 방문해 법률안 통과를 촉구하는 동의서를 전달할 계획이다.
hak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