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크루드족이 장악하고 있는 시리아 북동부 국경도시가 전쟁통이다. 터키군이 시리아국가군(SNA)과 손잡고 쿠르드족 소탕에 나섰기 때문이다. 공습·포격에 이어 지상 작전까지 개시하면서 8년 내전으로 얼룩진 시리아 영토에 또 다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터키군이 시리아 북동부 국경지역에 군사작전을 개시한 것은 지난 9일(현지시간)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터키군이 SNA와 함께 '평화의 샘'이란 명칭의 군사 작전을 개시한다고 밝혔다.
터키군과 함께 시리아 북동부 지역 쿠르드족 공격에 나선 시리아국가군(SNA) 민병대원이 10일(현지시간) 터키 국경을 넘어 이동하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작전은 북부의 쿠르드 민병대(YPG)와 이슬람국가(IS)의 위협을 제거해 남부 국경에서 테러 통로가 형성되는 것을 막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또, 안전지대를 설립해 시리아 난민의 귀국도 돕겠다는 계획이다.
터키 국방부도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터키군과 시리아국가군(SNA)은 '평화의 샘' 작전의 일환으로 유프라테스강 동쪽에서 지상 작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외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터키군은 이날 북동부 국경도시 라스 알-아인과 탈 아브야드 등을 공습했다. 현지 목격자들은 로이터에 YPG 주둔 부대와 탄약고를 중심으로 공습과 포격이 있었다고 했다.
터키 국영 TRT 방송 등도 터키군 F-16 전투기가 라스 알-아인을 공습하는 모습과 함께 터키군 포병대가 탈 아브야드를 향해 포격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CNN 방송도 라스 알-아인에서 공습으로 인한 대규모 폭발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안보 관계자를 인용해 터키군이 4곳에서 국경을 넘었다고 보도했다.
터키는 군사작전을 개시하겠다고 밝힌 시점부터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이를 의식한 듯 국방부는 배포한 영문 보도자료에서 "이번 작전은 유엔헌장 51조에서 규정한 자위권과 유엔 안보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對)테러 전투에 대한 결의안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 시리아 영토 보전을 존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쿠르드족을 겨냥한 터키군의 공습을 받은 시리아 북동부 라스 알-아인에서 9일(현지시간) 검은 연기가 피어오는 모습이 터키 국경 세일란피나르에서 포착됐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터키 관영 국방부는 지상 공격 개시 하루 만인 10일 탈 아브야드, 라스 알아인 인근 마을 11곳을 점령했다고 밝혔다. 9일 유프라테스강 동쪽에 있는 마을들을 먼저 장악하고 연이어 이곳들을 점령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YPG가 주축을 이룬 시리아민주군(SDF)의 무스타파 발리 대변인은 트위터에 "SDF 전사들이 터키 지상군의 공격을 막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시리아 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도 SDF가 터키군과 SNA의 공격을 저지했다고 했다.
사망자 집계도 다르다. 174명의 쿠르드 전사가 사망했다는 터키 국방부의 발표와 달리 시리아 인권운동가들은 8명의 전사와 7명의 민간인이 숨졌다고 했다. 시리아인권관측소는 최소 23명의 SDF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국경도시가 하루 아침에 전쟁통으로 변하자 쿠르드족 주민들은 피란길에 올랐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약 7만명이 피란했다고 추산했다.
10일 영국·프랑스·독일·벨기에·폴란드 등 5개국의 요청 하에 유엔 안보리 비공개 회의가 진행됐다. 하지만 터키에 일방적인 군사공격을 중단하라는 규탄 성명 채택은 무산됐다. 상임이사국인 미국과 러시아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러시아는 미국에 비난의 화살을 쐈고 미국은 터키의 군사적 행위를 지지하지는 않다고는 했지만 규탄하지는 않았다.
◆ 터키가 국경 넘어 쿠르드족 치는 이유
쿠르드족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나라 없는 민족'이다. 터키·시리아 북동부·이라크 자치지역·이란·아르메니아 등 곳곳에 유랑하고 있는 쿠르드족 인구는 약 4000만명이다. 터키 내 쿠르드족은 전체 인구의 약 20%로 가장 큰 소수민족이다. 이러한 터키가 자국 내가 아닌 남부 국경 넘어 있는 쿠르드족을 왜 소탕하려는 것일까.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국과 이라크에 소재를 둔 극단주의 무장단체 '쿠르드노동자당'(PKK)의 제거를 정치적 소명으로 여기고 있을 만큼 쿠르드 민족주의에 강경한 태도를 취해왔다. 그가 국경넘어 쿠르드족을 치는 이유는 YPG를 PKK의 분파로 간주하고 있어서다. 터키 정부는 자칫 시리아 북동부에 있는 쿠르드 진영이 국내 PKK와 세력을 합칠 수 있다고 보고, 최대 국가 안보 위협으로 생각한다.
◆ 먼저 '배신' 해놓고 중재 나서겠다는 트럼프
과거에도 시리아 사태에 개입한 이력이 있는 터키가 또 다시 시리아 쿠르드족을 치게 된 주요 배경은 미군 철수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에르도안 대통령과 통화 후 미군의 안전을 위해 그 다음날 시리아 북동부 국경 주둔 미군 철수를 발표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쿠르드족을 '배신'했다는 비난이 일었다. YPG는 미국의 지원 아래 시리아에 있는 ISIS 격퇴에 일조한 '동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론을 의식한 듯 10일 터키와 쿠르드족과 합의 중재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터키에 대한 금융 제재·수천 명의 병력 투입·터키-쿠르드족 간 합의 중재를 3가지 선택지로 제시했다. 이후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들과 만남에서 합의 중재를 가장 선호한다고 알렸다.
AFP통신은 익명의 미국 관리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외교관들에게 터키-쿠르드 간 '정전합의' 도출의 길을 모색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 유럽도 터키-시리아 쿠르드족 전시 상황 예의주시
이번 시리아 사태는 미국 뿐 아니라 유럽국에서도 큰 이슈다. YPG가 점령한 시리아 북동부가 대규모 유전이 밀집한 석유생산기지이기 때문이다. 시리아 정부가 지난 2010년 발표한 셰일오일 매장량은 약 500억t이었다. 대부분의 석유와 셰일가스 매장 지역은 동부와 북부에 있다.
또한 북동부 지역은 시리아에서 터키 국경으로 넘어가는 가스관과 송유관이 집중된 지역이다. 어느 국가가 이 지역을 점령하느냐에 따라 세계 석유시장 판이 흔들릴 수 있다.
시리아는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목에 있다. 과거 유럽국가들은 러시아로부터 석유를 공급받았지만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사태로 유럽연합(EU)과 갈등을 빚고 경제 제재까지 더해지면서 석유길 확보가 최대 과제가 됐다.
러시아도 시리아 사태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다. 바로 부동항(不凍港) 확보를 위해서다. 부동항은 1년 내내 해면이 동결하지 않는 항만을 뜻한다. 러시아는 큰 영토를 가졌지만 부동항이 없어 해면이 어는 가을, 겨울에는 군함 등의 운항이 어렵다.
크림반도를 병합한 이유도 바로 이 부동항 확보를 위해서였다. 크림 반도 병합으로 세바스토폴이라는 부동항을 취득한 러시아는 흑해 해군력을 대폭 강화하고 지중해 진출 경로를 얻었다. 러시아는 시리아 동부 타르투스에 해군 거점지로 두고 있어 사태에 귀기울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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