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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로 살아남기]⑥ 아재 사로잡다 '얄리의 아재비디오' 정세정

기사입력 : 2019년09월13일 09:00

최종수정 : 2019년11월19일 14:20

추억의 만화영화, 15분 영상 리뷰로 아재들 홀리다
비디오테이프 구하러 1년 새 일본만 세 차례 찾아

[서울=뉴스핌] 백진규 기자 = 만화영화 리뷰 채널 '얄리의 아재비디오'를 보면서 기자는 20년쯤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어릴 적 비디오를 빌려보거나, TV로 만화영화를 보던 때가 생각났다. 어느새 대학과 군대를 마치고 직장인이 됐지만, 철없던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한가로운 토요일 점심, 아재답게 삼계탕을 시켜놓고 만난 유튜버 정세정씨(33)의 시간은 기자보다 훨씬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본 덕후들 중에서도 단연 상덕후였는데, 그가 보여준 집 사진에는 게임팩을 후후 불어 꽂는 닌텐도 게임기와 브라운관TV(요새 TV로는 옛날 게임기 게임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오락실 게임기가 있다. 고전 만화들도 비디오로 소장하고 있다. 프라모델 만들기도 좋아해 매년 전시회에 참가한다.

유튜버 정세정씨. [사진=백진규 기자]

◆ 15분 영상 위해 30시간 이상 투자

정씨는 볼트론, 2020원더키디, 천사소녀 네티 등 만화를 리뷰하는 추억팔이로 아재들을 사로잡았다. 천사소녀 네티가 피치거울로 변신한다는 걸 기자도 이번에 다시 알았다. 맞아 그랬었지. 마녀가 볼트론 주인공을 죽여서 공주가 합류했었지. 영상마다 댓글이 넘쳐난다. 채널 구독자 94%가 남성이고 25~34세가 전체의 55%를 차지한다.

방송 1년만에 구독자가 8만명이다. 그는 매달 200만원이 넘는 수입을 올리는 투잡 유튜버다. 정씨가 건넨 명함에는 의료기기 회사의 마케팅팀장 직함이 찍혀 있었다. 10년째 해온 일이다.

"대학 시절 우연히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의료기기 쪽에 발을 들이게 됐는데 영업 일이 적성에도 잘 맞는 것 같다. 최근 유튜브 수입이 조금 늘기는 했지만, 앞으로도 일은 계속 할 생각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선 '자네 직업이 뭔가'라는 질문에 번듯한 직업이 나와야 유리한 점도 있고…"

의료기기 마케팅 업무와 유튜버의 상관관계는 있을까. 분명한 건 정씨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와 포인트를 마치 영업하듯 정확하게 짚어낸다는 점이다. 모든 리뷰는 결말까지 포함한 스포일러 영상들이다. 중간까지 재밌게 만화영화를 소개하고 "결말은 꼭 원작에서 찾아보세요"라고 해 봤자 실제로 원작을 찾아볼 사람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볼트론 리뷰 재밌게 보셨다고요? 만약 볼트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보면 어떨 것 같아요? 사실 재미 없어요. 전체 영상을 10~20분으로 압축하고 줄거리를 전해주니까 '아 그랬었지' 하면서 즐기는거죠. 직장인들이 만화영화 다시 볼 시간이 어딨어요. 제가 대신 봐주니까 인기가 있는거죠."

유튜브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다. 15분짜리 영상 하나를 만들기 위해 30~40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영상에서 놓친 부분이 있으면 "리뷰 제대로 하라"고 난리가 나기 때문에 무조건 정주행을 하고 작업을 시작한다. 보통 한 작품당 분량이 50편에 달하는데, 퇴근하고 이걸 다 보려면 정말 투잡을 뛰는 기분이란다. 처음엔 "왜 아무도 만화영화 리뷰는 안하지?" 하고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니 누가 하라고 해도 못할 작업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콘텐츠는 댓글로 구독자와 소통하면서 점점 다양해진다. '이 만화 뭐였죠 띠용'에서는 구독자들이 댓글로 문의한 만화영화 제목을 함께 찾아본다. 심심한 아재들의 집단지성은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우리나라에서 96~98년 사이에 방영한, 인간형 로보트 5기가 나오고 그 중 2기는 여자 모양이었다"는 막연한 댓글에도 '천하무적 오보트'라는 답이 나온다.

다만 영상이 쌓여가면서 구독자들의 요구도 함께 늘고 있다. 왜 일본 만화만 리뷰하냐, 왜 이런이런 작품은 안 해주냐고. "우리가 그시절 즐겨본 만화영화들은 대부분 일본 작품이에요. 하지만 삽화 작업은 우리나라가 외주를 받아 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작가 인건비가 싸서 그랬을 듯싶은데요. 국산 에니메이션도 계속 찾는 중입니다. 앞으로는 1960년대 70년대에 했던 더 고전 만화들도 소개할 계획입니다."

어떤 때가 가장 힘들까. 리뷰하고 싶은 영상을 못 구할 때다. 그는 유튜브를 시작하고 나서 비디오 영상을 구하기 위해 일본 아키하바라만 세 번을 찾았다. 일본 옥션에서도 매번 옛날 만화영화를 검색한다. 그나마 일본은 나은 편이고, 국산 애니메이션 찾기는 훨씬 더 어렵다. 청계천 동묘시장 비디오 가계를 돌아다니다 '피구왕통키-슈퍼매직볼'을 구하기도 했다.

얄리의 아재비디오 10월 12일 공연 홍보영상 [캡쳐=얄리의 아재비디오]

◆ "수익만 좇지는 않겠다", 만화음악 공연도 준비

유튜브로 수익이 생겨 좋지만, 그는 따로 수익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는다. 순수하게 시작한 만큼 다른 아재들과 함께 즐기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장난감 냄비 냉동식품 등 다양한 광고 문의가 들어왔지만 모두 거절했다. 채널 성격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정씨는 자신의 카톡이나 SNS에서도 유튜브 채널을 홍보하지 않는다. 회사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도 자신이 유튜버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구독자들의 피드백에 답해주기 위해 유튜브용 스마트폰을 따로 개설해서 조용히 관리하고 있다.

그렇다고 자신의 정체를 무조건 숨기자는 건 아니다. 정씨는 스스로를 관종이라고 했다. 원래 개그맨을 하고 싶어 방송사 오디션을 보기도 했었다. "모든 유튜버는 사실 관종이에요. 남이 나를 봐주길 원하잖아요. 저도 예술가병 중2병이 있거든요. 제가 하는 말이나 행동에 사람들이 반응하는 걸 보고 싶은데, 그 최고의 플랫폼이 유튜브입니다."

만화음악을 테마로 한 무료 콘서트도 준비 중이다. 올해 2월 유튜브에 공연멤버 모집영상을 올렸고 모두 10명이 모여 매주 연습하고 있다. 오는 10월 12일 서울 홍대 브이홀에서 300석 규모로 공연한다. 무료이며, 선착순 입장이다.

"일본에서는 만화나 영화를 갖고도 음악회를 많이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문화가 아직 없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잘 준비하고 있는지 걱정이 앞서지만, 다행히 경험 있는 분들이 모여서 즐겁게 연습하고 있죠. 만화영화로도 함께 즐기는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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