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데어라이엔 獨 국방장관, 첫 여성 EU 수반될까
라가르드 총재, 커리어마다 '여성 최초' 수식어 따라 붙어
美 정가에도 거센 여풍...2020년 대선 지형 바꾸는 女 후보들
[서울=뉴스핌] 김세원 기자 = 미국과 유럽의 정치, 경제계에서 '우먼 파워'가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진행된 민주당 대선 후보 1차 TV 토론과 지난 2일(현지시간) 마무리 된 유럽연합(EU) 지도부 인선의 가장 큰 화두도 바로 '여성'이었다.
미국에서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메사추세츠)과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캘리포니아)이 토론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차기 대권 후보로 급부상했다. 유럽에서는 EU 지도부 4개의 요직 중 2개를 여성이 꿰차면서 거센 여풍(女風)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미국과 유럽에 여성 리더의 시대가 찾아올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폰데어라이엔 獨 국방장관, 첫 여성 EU 수반될까
유럽연합(EU) 지도부와 28개의 EU 회원국은 사흘 동안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임시 정상회의를 통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독일 국방장관을 EU의 행정부 수반격인 집행위원장에 지명했다. 차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에는 프랑스 출신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낙점됐다.
아직 이달 중 유럽의회에서 진행되는 인준 절차가 남아 있지만, 폰데어라이엔 국방장관과 라가르드 총재가 공식으로 취임하면 유럽에서는 여성 최초의 EU 집행위원장과 ECB 총재가 탄생하게 된다. 두 사람 모두 오랜 기간 이어져온 남성 지배 문화에 금을 내고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지도부 인선 결과 발표 이후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여성 집행위원장이 나오는 것은 "좋은 신호"라고 설명했다.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결과에 매우 행복하다"고 언급하며 "결국 유럽은 여성"이라는 표현으로 이번 지도부 인선 결과를 압축했다. EU 회원국의 대립으로 지도부 인선 작업은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다. 하지만 이날 결과가 발표되자 투스크 상임의장은 "결과를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폰데어라이엔 국방장관은 독일 기독민주당(CDU) 소속의 정치인으로 메르켈 총리와도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폰데어라이엔 장관은 한 때는 메르켈 총리의 정치적 후계자로 거론된 인물이다. 그는 벨기에 브뤼셀 출생으로 유년 시절을 벨기에에서 보낸 뒤 13살 때 가족들과 함께 독일로 이주했다. 폰데어라이엔 장관은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이후 하노버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그는 정계에 진출하기 전까지 산부인과 의사로 일했다.
폰데어라이엔 장관은 이후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 장관 장관을 역임했으며, 2009년부터 2013년까지는 노동부장관을 맡았다. 7명의 자녀를 둔 어머니이기도 한 폰데어라이엔 장관은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 장관 시절 남성의 육아 참여를 강하게 독려했다. 파이낸셜타임(FT)에 따르면 그는 보육시설 증대를 추진하고, 남성의 유급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했다. 2013년에는 메르켈 총리로부터 국방장관으로 임명되며, 독일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에 올랐다.
폰데어라이엔 국방장관이 EU 집행위원장에 공식적으로 취임하게 될 시, 그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와 이란 위기, 기후 변화, 이민 문제 등의 주요 현안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
왼쪽 위부터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독일 국방장관,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미국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메사추세츠),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캘리포니아) [사진=로이터 뉴스핌] |
◆ 라가르드 총재, 커리어마다 '여성 최초' 수식어 따라 붙어
차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로 지명된 프랑스 출신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이미 여러 차례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은 적이 있는 인물이다. 영국의 BBC는 라가르드 총재의 ECB 지명 소식을 전하며 "라가르드 총재의 커리어에는 '여성 최초'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라고 설명했다.
전직 변호사 출신인 라가르드 총재는 글로벌 로펌인 '베이커 앤 매켄지'의 첫 여성 회장을 지냈으며, 2007년 프랑스 재무장관에 임명됐다. 자국인 프랑스는 물론 주요 7개국(G7) 최초의 여성 재무장관이다. 이후 2011년에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IMF 총재에 임명되면서, 국제금융 기구 수장으로 활약해왔다. 그리고 라가르드 총재는 ECB 차기 수장으로 지명되며 또다시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게 됐다.
라가르드 총재는 평소 여성의 지위 향상에도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는 여성의 참여가 전 세계 경제를 개선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올 초 "내가 여러번 언급했듯, 리먼브라더스가 아니라 리먼시스터스였다면 오늘날 세상은 달라졌을 것이다"이라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 美 정가에도 거센 여풍...2020년 대선 지형 바꾸는 女 후보들
미국 정가에서도 거센 여풍이 불며, 여성 정치인들이 정치 지형을 바꾸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특히 2020년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TV토론에서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캘리포니아)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메사추세츠)이 눈도장을 찍으면서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이 형성해온 양강구도를 흔들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를 증명하듯 첫 TV 토론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해리스와 워런 의원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연출했다. CNN이 지난 1일 여론조사기관 SSRS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해리스와 워런 의원은 각각 2위(17%)와 3위(15%)를 차지했다. 1위는 22%의 지지율을 얻은 바이드 전 부통령이 차지했다. 하지만 바이든 전 부통령의 지지율은 5월에 진행된 조사 때 보다 10%포인트 가량 떨어졌다. 반면 해리스와 워런 의원의 지지율은 각각 9%포인트, 8%포인트씩 상승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과는 여전히 격차가 있긴 하지만 두 여성 후보가 약진하면서 일각에서는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에 대한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인터넷매체 복스(VOX)는 "이주 열린 토론회는 단순히 어떤 후보가 (대통령에) 가장 적합한 인물인지를 시험해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과연 여성이 승리할 수 있을 것인지 알아보기 위한 시험이기도 했다"라고 설명했다. 매체는 그러면서 해리스 후보를 비롯한 몇몇 여성 후보들이 이 과정을 모두 통과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CNN은 해리스와 워런 후보의 약진으로 "여론조사에서 선두주자를 달리던 바이든 전 부통령과 샌더스 의원이 갑자기 역풍을 맞게 됐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방송은 또 두 후보가 선거 캠페인에서 자신들이 여성이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단순히 여성으로서가 아닌 대선 후보로서의 자질을 뽐냈으며, 정책적인 면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이다.
두 후보가 민주당 경선 판도를 흔들면서 이번에는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아직은 이르다는 경계심이 혼재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패배는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일종의 악몽으로 남아있다.
선거 기간 당시 성차별적인 발언을 가감 없이 내놓았던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이 힐러리 전 국무장관을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수많은 여성에게 패배감과 분노를 안겨주었다. 힐러리 전 국무장관 역시 선거 이후 자신의 패배 원인 중 하나로 미 사회에 남아있는 성차별을 꼽은 바 있다. 아직은 여성을 최고지도자로 맞이할 수 없다는 인식이 사회에 여전히 팽배하다는 것이다.
saewkim9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