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원유 수출, ‘제로’로 만들기 쉽지 않아
글로벌 석유시장, 공급 부족에 취약
OPEC, 증산에 예전보다 한층 신중할 것
유가, 배럴당 80달러 넘을수도
미국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
[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산 원유 금수 제재에 한시적 예외를 인정하던 한국 등 8개국에 예외 연장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글로벌 석유시장에 어떠한 파장이 미칠지 우려가 심화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22일(현지시간) 심층보도했다.
백악관은 성명에서 “이란산 원유 수출을 제로(0)로 만들어, 이란 정권의 주요 수익을 없애기 위한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간밤 백악관의 발표에 국제 기준물인 런던선물시장의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은 6개월 만에 처음으로 배럴당 74달러를 넘어섰다.
런던선물시장의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 1주일 추이 [자료=인베스팅닷컴] |
◆ 미국, 정말로 이란산 원유 수출 ‘제로’로 만들 수 있나?
컨설팅 기관 FGE에너지의 추산에 따르면, 지난 5개월 간 이란은 일일 약 250만배럴(bpd)의 원유를 생산했고 100만~130만bpd를 수출했다. 유조선 추적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 외에도 이란은 은밀하게 원유 수출을 지속하고 있어 실질 수출량은 190만bpd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란산 원유는 대부분 한국과 중국, 일본, 인도, 터키 등 5개 주요 수입국으로 수출됐다.
죠반니 스타우노보 UBS자산관리 애널리스트는 FT에 “중국은 이미 미국의 일방적 제재에 반대한다는 신호를 보냈기 때문에 이란의 원유 수출이 제로(0)로 떨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외 다른 수입국들은 미국의 제재를 준수해 이란산 원유 수출량이 100만bpd 밑으로 떨어질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수입국들이 합법적으로 이란산 원유를 구매할 방법을 차단하면 미국은 이란의 원유 수출을 상당량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란이 최근 수개월 간 10만~30만bpd의 원유를 성공적으로 ‘밀반출’한 만큼, 이 정도 규모의 이란산 원유는 계속 글로벌 시장에 공급될 가능성이 높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 글로벌 시장, 공급 부족에 대비돼 있나?
지난해 말 글로벌 석유시장에서 과잉공급이 심해지자,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여타 산유국들이 수급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올해 1월부터 감산에 돌입한 만큼 증산 여력은 충분하다고 미국 정부는 관측하고 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충분한 공급’이 지속되도록 합의했다고 밝혔다. 미국 에너지부는 미국과 OPEC이 함께 증산하면 공급이 충분히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우디는 현재 산유량을 1000만bpd 밑으로 줄였으나, 100만bpd 정도는 즉각 늘릴 수 있다고 미국 당국자들은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계산이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컨설팅 기관 에너지애스펙츠의 애널리스트들은 “미국 에너지부의 추산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원유 공급 안정성에 대해 잘못 계산하게 됐다”며 “원유 수요 전망도 틀렸을 뿐 아니라 시장에서 다양한 등급의 원유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내전이 심화되는 리비아와 미국 제재를 받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공급 차질도 역시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 사우디와 UAE 외 감산 동참국들, 증산에 동조할까?
사우디는 감산에 동참하고 있는 다른 OPEC 회원국 및 비회원국과 조심스럽게 균형을 맞춰야 하는 입장이다.
지난해 OPEC과 연합을 맺어 감산에 동참한 러시아는 최근 수개월 간 증산 방법을 모색해 왔으며 증산 결정을 반길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란과 함께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베네수엘라는 미국 외교정책을 지지하는 증산 정책에 동의할 가능성이 낮다.
게다가 OPEC의 맹주인 사우디는 미국으로부터 뒷통수를 맞은 적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제재를 부활시킬 것이란 기대에 지난해 증산에 나섰다가 미국이 이란 원유 금수 예외를 인정하자 배신감을 느꼈을 뿐 아니라 다른 OPEC 회원국들의 원성도 샀다.
이에 따라 사우디는 이란산 원유 수출이 실제로 줄어드는 것을 목격한 후에야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셰일유 생산시설 [사진=블룸버그 통신] |
◆ 유가 급등할까?
미국 정부는 유가 급등 리스크를 일축하고 있다. 미국 당국자는 22일 “원유시장 공급량은 충분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에너지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수급이 급격히 타이트해진다면 주요 산유국들의 유휴 생산능력이 소진돼 향후 공급 부족 시 증산 대처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석유시장 전문가인 개리 로스 블랙골드인베스터스 최고경영자(CEO)는 “글로벌 석유시장에 공급 리스크가 상당히 크다”며 “베네수엘라와 나이지리아, 리비아 등의 상황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할 경우 증산할 여력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75~80달러, 혹은 이 수준을 넘어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 미국 경제 영향은?
지난 10년 간 셰일유 붐이 일면서 미국의 수입석유 의존도가 줄어 국제유가가 미국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줄었다. 연료 가격이 상승하면 소비자들은 불만이지만 셰일 산업은 혜택을 입는 구조가 형성됐다.
하지만 연료 가격 상승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가 점차 심화되고 있다. 특히 여름철 드라이빙 시즌이 다가오면서 휘발유 가격 우려가 상당히 거세지고 있다.
지난주 미국 휘발유 가격 평균은 갤런당 2.828달러로, 지난해 말과 비교해 56센트 오르며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기서 10센트만 더 오르면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가 상승의 책임을 OPEC에 돌리고 있지만, 앞으로 몇 개월 사이 휘발유 가격이 치솟으면 2020년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g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