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대한통운 등 무리한 M&A로 '승자의 저주' 빠져
금호아시아나그룹, 한때 재계 7위서 50위권 밖으로 밀려날 듯
[서울=뉴스핌] 정탁윤 기자 =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결국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한다. 그룹의 60%인 아시아나항공마저 매각하면 금호아시아나는 중견기업 신세로 전락한다. 금호그룹은 2008년 한때 재계 순위 7위까지 올랐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5일 오전 금호산업 이사회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박삼구 회장의 대우건설, 대한통운 등 무리한 인수합병(M&A)에 따른 이른바 '승자의 저주'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2006년 당시 6조4000억원에 인수한 대우건설이 결국 박 회장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재계에선 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한통운은 몰라도 대우건설을 인수했다 토해 낸 것이 결국 '승자의 저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이렇게 만든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에 따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자산 규모 축소도 불가피하다.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말 별도 기준 자산 규모는 6조9250억원으로 그룹 총자산(11조4894억원)의 60%를 차지했다.
아시아나항공을 떼어내면 그룹의 자산 규모는 3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된다. 자산규모 4조원대로 재계 순위도 현재 25위에서 50위권 밖으로 밀려날 것으로 예상된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사진=뉴스핌DB] |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946년 4월 7일, 창업주인 고(故) 박인천 회장이 광주에서 광주택시(금호고속)를 설립하면서 태동했다. 4월 7일이 금호아시아나의 창립기념일이다. 이후 1948년 광주여객자동차라는 이름으로 운수업을 본격 시작했다.
아시아나항공은 1988년, 정부가 제2의 민간정기항공 운송사업자로 금호그룹을 선정하면서 설립됐다. 최초 사명은 '서울항공'이었지만, 취항 직전 아시아나항공으로 변경됐다. 아시아나항공은 금호그룹을 대기업 반열에 올려놓았다.
호남기업 이미지가 강한 금호그룹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승승장구했다. 2002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에 오른 박삼구 회장은 공격적으로 회사 규모를 키웠다. 2006년 대우건설을 6조4000억원에, 2008년에는 대한통운까지 4조1000억원에 인수했다. 그 결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8년 한때 라이벌 한진그룹을 제치고 재계 순위 7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박 회장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그룹 전체의 재무구조가 악화됐다. 2008년 대한통운 인수후 재계에선 이른바 '승자의 저주'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승자의 저주'는 인수합병(M&A) 업계에서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했지만,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위험에 빠지는 상황을 뜻한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박 회장 및 금호아시아나그룹에 결정타였다. 2009년 12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과 구조조정 방식의 일종인 자율협약 절차를 밟았다.
박 회장은 2009년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토해내고, 금호렌터카와 금호고속까지 매각하며 경영 정상화에 집중했다.
그룹을 경영 위기에 빠뜨린 책임으로 물러났던 박 회장은 2010년 11월 그룹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 신분으로 경영에 복귀한다. 2013년 11월에는 금호산업 대표 자리를 맡았고, 2014년 10월 금호산업은 조건부로 워크아웃을 졸업한다.
이후 2015년 박 회장은 우여곡절끝에 금호산업 인수에 성공한다. 아울러 2017년 1월 금호타이어 마저 인수에 나섰지만, 결국 1조원대의 자금 마련에 실패하며 그해 11월 금호타이어 인수 포기를 선언했다. 금호타이어는 중국 타이어업체인 더블스타에 매각됐다.
금호산업 인수로 '화려한 부활'을 꿈꿨던 박 회장은 자금 압박에 광화문 사옥까지 내다 팔았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다. 최근엔 아시아나항공 회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라는 승부수까지 던졌지만 무용지물이 됐다.
tac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