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 "디지털 성범죄 처벌 수위 높여야" 주장 설득력 얻어
디지털 성범죄 '폭증'..처벌은 '솜방망이'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가수 정준영의 성관계 동영상 불법촬영 및 유포를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3일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2015~2016년 한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여성들과의 성관계 사실을 언급하며 몰래 촬영한 영상을 전송하는 등 수차례 동영상과 사진을 지인들과 공유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정씨가 빅뱅 승리와 함께 있는 카톡방에도 불법 촬영한 것으로 의심되는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한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 사회에 만연한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 정부가 보다 강력한 대응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여성계의 의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폭증’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방통위의 디지털 성범죄 정보 심의 건수는 7648건이다. 지난해 전체 심의 건수는 1만건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접속차단은 7461건, 삭제 106건 등 모두 7567건에 대해 조치가 이뤄졌다. 방심위는 디지털 성범죄 영상이 해외사이트에 업로드되면 접속차단 조치를, 국내 사이트는 삭제 등의 조치를 내리고 있다.
방심위의 디지털 성범죄 심의 건수는 2014년 1807건에서 2015년 3768건, 2016년에는 7356건으로 해마다 2배 가까이 늘고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의 조사에서도 2007년 전체 성범죄 건수 중 3.9%에 불과했던 디지털 성범죄가 2017년 20.2%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12일 성명서를 통해 “(정준영 사건을 보면)우리 사회에 여성을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고 성적 쾌락의 대상으로 여기는 왜곡된 시선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며 “공인인 유명연예인들조차도 여성을 단지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 바라보거나 자신의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한 객체로만 파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방심위는 지난해 4월 전담팀까지 신설해 불법촬영물과 초상권 침해정보를 단속하고 있지만, 근절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방심위 관계자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 건수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폭증했고 문제의 사이트 대부분이 해외에 있다 보니 영상물 삭제에도 한계가 있다”며 “최근 범정부 차원에서 디지털 성범죄 근절 대책을 추진하는 만큼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처벌은 ‘솜방망이’
대법원의 ‘불법촬영·유포 등 디지털 성범죄 처벌 현황’ 자료를 보면 2012~2017년 사이 카메라 등을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른 인원은 7446명으로, 이 중 징역이나 금고형을 받은 경우는 647명(8.7%)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음란물을 유포해 재판을 받은 1680명 중 징역, 금고형을 받은 피고인도 30명(1.8%)에 그쳤다.
현행법은 카메라나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퍼뜨릴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촬영 당시에는 의사에 반하지 않았더라도 이후 그 의사에 반해 촬영물을 퍼뜨리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른 촬영자나 유포자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법을 손질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의 경우, 불구속 수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 증거물 폐기, 재유포 등의 피해도 발생해 수사단계부터 엄격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빅뱅 승리(왼쪽)과 정준영 [사진=뉴스핌DB] |
현재 촬영대상자의 의사를 무시한 촬영이나 유포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법률이 국회를 통과한 상태다. 또 영리를 목적으로 촬영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물 또는 복제물을 유포한 경우에는 현행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서 '7년 이하의 징역' 처벌만 가능하도록 했다.
최원선 바른미래당 부대변인은 13일 ‘황금폰이 울리고 여성들은 울었다’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그동안 디지털 성범죄는 계속 있어 왔지만, 이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 여전히 범죄는 진행중”이라며 “정부와 국회는 지금이라도 함께 성범죄 근절을 위한 강력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디지털 성범죄 뿌리 뽑겠다”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정부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앞선 1월 24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조정회의에서 방통위 등 7개 정부 부처는 ‘웹하드 카르텔 방지 대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웹하드 카르텔 주요 가담자는 구속 수사하고 징역형 이상의 형사 처벌을 내린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불법음란물을 유통해 돈을 번 사업자에게는 세금을 추징하고 관련된 범죄수익까지 몰수·추징할 수 있도록 ‘범죄수익은닉규제법’도 빠른 시일 내에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국내 웹하드 업체들이 디지털 성범죄 동영상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유통하고 있다는 점에 비춰, 유통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게 정부의 목표다.
이 총리는 이 자리에서 “웹하드 카르텔의 범죄를 근절하려면 불법촬영물로 돈을 벌 가능성을 차단하고 수익이 생겼다면 몰수하는 등 원천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며 “경찰과 검찰도 단속기간이 아닌 평소에도 불법촬영물 문제를 강력하게 단속하면서 법에 정해진 최강의 수단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이낙연 국무총리가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19.03.12 mironj19@newspim.com |
경찰청도 각 지방경찰청 사이버성폭력수사팀을 중심으로 △웹하드 업체와 유착된 헤비업로더 △프로그램 개발·판매자·광고주 △기술적 조치를 무력화한 필터링 업체 △디지털장의업체 등에 대해 집중 단속을 시행한다.
또 여성가족부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의 인력을 기존 16명에서 26명으로 늘리고 △불법 촬영물에 대한 신속한 삭제 지원 △상담 △수사 요청 등을 통합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형사적 조치뿐만 아니라 피해자 보호를 위한 조치도 다양하게 강구하고 있다”며 “최근의 사건들로 인해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만큼 새로운 근절 기법을 연구해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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