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김근철 특파원=지난주 한반도 정세는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으로 출렁거렸다. 현기증이 날 정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정상회담 첫날 온갖 희망적인 언사를 주고 받았지만 결국 협상은 결렬됐다. 그만큼 충격과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빈손으로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들도 지난 주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과를 수습하는데 진땀을 뺐다. 그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사이에 무엇을 놓고 담판을 벌였는지, 서로의 의견은 어떻게 엇갈려는지 윤곽도 거의 드러났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해석과 접근이 나오고 있다. 그래도 딱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트럼프 대통령의 ‘올인’과 김 위원장의 ‘살라미’ 전술이 서로 접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일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통 크게 협상할 것을 주문하면서 ‘올인’하라고 주문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영변은 물론 모든 대량파괴무기(WMD)를 모두 공개하고 폐기에 나서면 미국도 제재 완화는 물론 경제 개발을 과감하게 돕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는 전언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지난 3일 다수의 방송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핵과 생화학 무기, 탄도미사일을 포기하는 결정을 하라고 했다"고 확인했다. 그는 이를 ‘빅딜’ 협상이라고 표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의 외교 안보 참모들이 ‘올인’ 또는 ‘빅딜’을 강조하고 나선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의 살라미 전술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다. 미국의 외교가에선 북한의 살라미 전술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돌린다. 살라미는 딱딱한 이탈리아식 소시지이고 잘게 썰어서 접시에 담는다. 북한은 그동안 핵 협상을 할 때마다 온갖 명분과 이유를 들어 비핵화 과정을 세분화한 뒤 각 단계마다 보상과 협상을 이어갔다. 결국 협상은 지체됐고 결국 유야무야 종결되고 말았다. 협상 기간동안 시간을 벌었던 북한은 어김없이 핵 개발에 다시 몰두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대북 협상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해왔다. 평소 과감한 ‘톱 다운’ 방식만 강조했지만 하노이에선 북한의 살라미 전술에 대한 수용 불가 입장도 분명히 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영변 핵 시설 일부 폐쇄’와 무기 수입 부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엔 대북 제재를 완화를 연계하자는 북한의 요구는 전형적인 살라미 전술로 보였던 것 같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앞으로 ‘올인’과 ‘살라미’를 두고 치열한 물밑 신경전과 힘겨루기를 이어갈 전망이다. 간극이 워낙 분명하고 커서, 현재로선 어느 선에서 접점이 형성될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지난달 2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만찬 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찬 중 웃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지난 1986년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마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단독 정상회담을 가졌다. 미·소 냉전이 여전하던 시절 두 정상의 만남은 전 세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군축과 냉전에 대한 이견을 좁히는 데 실패했다. 합의문도 채택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실패한 회담이었다.
그러나 외교사는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을 냉전 종식의 출발점이라고 평가한다. 레이건 전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레이캬비크 협상을 통해 서로의 차이점과 원하는 바를 분명하게 확인했다. 그후 잠시 냉각기를 가진 미국과 소련은 이견을 줄이고 접점을 확대하는 실질 협상을 진전시켜 끝내 냉전 종식과 군축 합의를 이끌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하노이에서 백악관으로 돌아온 뒤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김정은과 매우 실질적인 협상을 했고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고 그들도 우리가 무엇을 가져야 하는지 안다”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올인’과 ‘살라미’의 차이를 극복하고 제2의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의 신화를 창출할 수 있을지가 향후 비핵화 협상의 관전 포인트이자 승부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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