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성평등’ 필요성에는 업계 공감
부록 ‘가이드라인’ 내용이 오해 키워
불필요한 표현 다수, 신중한 태도 필요
[서울=뉴스핌] 정광연 기자 = 여성가족부(장관 진선미, 여가부)가 아이돌 외모 ‘검열’ 논란을 일으킨 성평등 안내서를 수정, 삭제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표현으로 성평등의 중요성과 논의 필요성 등에 대한 의미까지 퇴색시켰다고 말한다. 강제권은 없다는 주장이지만 정책 부서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여가부의 신중하지 못한 태도가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여가부는 12일 공개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 중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수정, 삭제한다고 20일 밝혔다. 이번 안내서는 2017년 4월 펴낸 내용을 개정, 보완한 것으로 부록인 ‘방송 프로그램의 다양한 외부 재현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포함해 47페이지로 구성됐다.
[자료=여가부] |
직접 살펴본 여가부 안내서는 성평등의 의미와 중요성 등을 설명하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0조(양성평등)을 거론하며 법적 의무가 있음을 명확히 하고 여성이나 남성의 성 역할을 규정하거나 외부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 하는 문제 등을 심도있게 거론한다.
특히 실제 방송 사례를 구체적으로 거론해 안내서를 보는 사람들의 쉬운 이해를 도우면서도 ‘특정 방송사나 방송인의 명예를 훼손할 뜻이 없음’을 밝히는 조심스러운 행보도 보인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 정도는 여가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이미 방송에서는 성평등이 중요한 화두로 자리잡았다.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문제가 될 수 있는 내용이 많은데 여가부가 제대로 된 지적과 제안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부록인 가이드라인이다. 앞선 내용과 달리 ‘해라’ 또는 ‘하지마라’는 식의 표현으로 안내서가 아니라 지침서라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내용이 상당수 포함됐기 때문이다.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한다’는 2-2조항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사용을 자제한다’, ‘연출을 자제한다’ 등도 제작 침해로 이해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논란이 된 아이돌 외모 ‘검열’ 조항(위)과 단계별 체크리스트. 업계에서는 여가부가 방송 제작 현장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다수 포함했다고 지적한다. [사진=안내서 내용 발췌] |
또한 ‘프로그램 기획 및 섭외 단계’와 ‘프로그램 제작 및 편집 단계’를 나누고 6~7개의 ‘단계별 체크리스트’까지 포함시킨 건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반응이다.
업계 관계자는 “취지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너무 세세한 부분에까지 간섭하는 느낌이 강한 건 사실이다"며 “무엇보다 ‘가이드라인’ 자체가 일종의 지침 아닌가. 권한이 없다고 해도 정부부처가 이런 내용을 공개한 이상 강제성을 염두에 둘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가부가 논란이 된 내용을 수정, 삭제한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표현과 내용으로 정작 방송 프로그램에서 성평등을 반영해야 하는 합리적인 의미까지 퇴색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정부의 안일한 태도가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 역시 “정부가 이렇게 오해를 받을 수 있는 표현과 내용을 담은 안내서를 냈다는 점은 문제”라며 “성평등에 대한 여가부의 올바른 지적과 대응마저 의미를 잃고 있는 부분은 아쉽다”고 밝혔다.
peterbreak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