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현행법상 단속공무원 ‘강제력’ 행사 권한 없어"
전문가 “사법권 남용 우려...경찰과 공조 강화해 단속 효율성 높여야”
[서울=뉴스핌] 구윤모 기자 = 길거리에 담배꽁초를 투기해 지자체 단속공무원이 단속했음에도, 신분증 제시를 거부한 20대 남성이 무죄를 선고 받았다. 현행법상 단속공무원에게 사법권이 없어 신분증 제시 요구 과정에서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북부지법 형사4단독 홍은숙 판사는 지난달 18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28)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7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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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법원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4월 서울시 B자치구의 길거리에 담배꽁초를 투기해 B구청 청소행정과 소속 공무원들에게 단속됐다. 공무원들은 과태료 부과를 위해 A씨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으나 A씨는 해당 사실을 부인하고 반말을 하며 불응했다.
이에 공무원들이 A씨에게 욕설을 하자 A씨는 경찰에 신고 전화를 했다. 공무원 C씨는 경찰에 이미 협조 요청을 했으니, 제자리에 있으라며 팔을 뻗어 A씨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A씨는 C씨의 팔을 뿌리치고 팔과 가슴부위를 밀쳤다.
법원은 A씨의 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현행 폐기물관리법·질서위반행위규제법상 단속 공무원이 과태료 부과를 위해 위반자의 인적사항을 확인할 때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법원은 해당 구에서 마련한 단속 규정에도 피단속자가 신분증 제시 요구에 불응하는 경우 단속자는 경찰에 지원요청을 하도록 되어있을 뿐,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홍 판사는 “단속 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욕설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분증 제시 요구에 불응하는 피고인을 가로막아 자리를 이탈하지 못하도록 강제력을 행사한 단속공무원의 공무집행 행위는 적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실제 단속 현장에서는 단속공무원들의 볼멘소리도 나온다. 단속 권한을 강화해야 효율적인 단속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자치구 단속공무원 D씨는 “신분증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고 도망치는 경우 단속할 방법이 없다”며 “위법 사항을 단속하는 만큼,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단속공무원에게 사법권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런 입장을 보이면서도, 현행 단속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단속의 효율성을 위해 사법권이 필요하지만, 오히려 남용되면 시민들의 부담이 커질 것”이라며 “지자체와 경찰이 단속 업무를 공조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법권 확대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와 종합적인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iamky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