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2016년 9월 전달된 2억원은 뇌물 맞다”
‘문고리3인방’, 2심서 뇌물방조혐의 인정돼 형량 일부 가중
국정원장 회계관계직원 판단도 엇갈려…박근혜 2심 ‘주목’
[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국가정보원장 몫으로 할당된 특수사업비(특활비)를 대통령이 상납받았다면 뇌물이란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직 국가정보원장들로부터 특활비를 상납받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는 ‘문고리 3인방’의 뇌물방조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서울고등법원 형사합의4부(김문석 부장판사)는 4일 오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들에 대한 선고공판을 열고 이 전 비서관에 징역 1년6월, 안 전 비서관에 징역 2년6월·벌금 1억원 및 추징금 1350만원을 선고했다.
정 전 비서관에 대해서는 ‘비선실세’ 최순실 씨에게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확정된 형량을 더해 징역 1년6월·집행유예2년과 벌금 1억원이 선고됐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안봉근-정호성-이재만 yooksa@newspim.com |
◆ 2016년 전달된 2억원…1심 “뇌물 아냐” → 2심 “뇌물 맞다”
재판부는 1심과 달리 2016년 9월경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추석 격려금’ 명목으로 청와대에 전달한 국정원 특활비 2억원의 뇌물성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대통령은 국정원에 대한 지휘·감독권자로서 국정원의 인사·조직·예산 등 국정원의 전반적 운영에 관해 법률상·사실상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 대통령과 국정원장 사이에는 객관적인 직무관련성이 존재한다”며 “국정원에 막대한 영향력이 있는 대통령에게 거액의 금품을 제공하는 자체로 직무집행의 공정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또 1심에서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한 주요 근거인 ‘대가성’ 역시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국정원장들이 자신들의 특활비를 청와대에 상납하는 데 있어 대가를 받는다는 인식이 없었고, 실제로 대가로 주어진 것도 없다고 보아 뇌물이 아닌 횡령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대통령의 직무에 관해 2억원이 수수된 이상, 대통령이 국정원 측에 어떠한 선처를 해주거나 현실적으로 특혜를 제공한 사실이 없다고 하더라도 뇌물죄 성립에는 영향이 없다”며 “안 전 비서관과 정 전 비서관의 행위는 대통령이 뇌물을 수수하는 것을 용이하게 하는 것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 국정원장은 ‘회계관계직원’인가…맞다 vs. 아니다
전직 국정원장 3인의 항소심에서 논란이 됐던 ‘회계관계직원’ 판단 여부도 달라졌다.
현행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국고등손실죄는 회계관계직원 등의 책임에 관한 법률 제2조에 규정된 사람이 국고에 손실을 입힌 경우, 손실액이 5억원을 넘으면 무기 또는 징역 5년 이하 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국정원장이 회계관계직원으로 인정되면 가중처벌될 수 있는 것이다.
관련 사건의 1심 재판부는 이 부분에 대해 모두 일치된 의견으로 국정원장은 회계관계직원 등의 책임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는 ‘그 밖에 국가의 회계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문고리 3인방의 항소심 재판부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같은 판단을 내놨다.
하지만 전직 국정원장 3인의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선고에서 “국정원장은 회계관계직원을 감독하는 중앙관서장에 해당할 뿐이고 그 자신이 회계관계직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특경가법상 국고등손실죄가 아닌 일반 횡령죄를 적용했다. 전직 국정원장들은 이로 인해 각각 징역 1년 이상을 감형 받았다.
이는 박근혜 정부 시절 특활비 사건뿐 아니라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에서도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이 전 대통령의 1심 재판부는 김성호·원세훈 전 국정원장들로부터 특활비를 상납받은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와 관련해 이 전 대통령 측은 지난해 12월 7일 항소심 재판부에 특경가법 국고등손실 조항과 회계관계직원 등의 책임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가 위헌이라며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서를 제출한 바 있다.
결국 하급심 판단이 엇갈리면서 국정원장이 회계관계직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대법원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됐다. 현재 국정원장 3인과 검찰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쌍방 상고한 상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5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원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2017.05.23. yooksa@newspim.com |
◆ ‘뇌물’ 두고 달라진 판단…박근혜 2심서 형량 달라지나
국정원장이 상납한 일부 특활비가 뇌물로 인정되면서 수수 당사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항소심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통령은 1심에서 특활비 상납을 직접 요구하고 문고리 3인방에 특활비를 받으라고 지시하는 등 공모관계가 모두 인정돼 징역 6년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대가관계가 없었다며 뇌물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추석 격려금’ 2억원에 한해서는 박 전 대통령이 관여한 바가 없고 이병호 전 원장이 자발적으로 공여했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의 특활비 수수 사건은 검찰만 항소해 지난해 8월 서울고법 형사합의13부(정형식 부장판사)에 사건이 배당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6개월여간 심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현재 박 전 대통령은 2016년 총선 당시 새누리당 공천개입 혐의로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 받았고 검찰과 피고인 측 모두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 역시 상고하지 않았으나, 검찰이 상고해 현재 대법원에서 사건 심리 중이다. 국정농단 사건의 2심 재판부는 1심보다 형량을 가중해 징역 25년과 벌금 20억원을 선고했다.
‘특활비 수수’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가 특활비를 뇌물로 인정할 경우 박 전 대통령의 형량은 더 늘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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