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직업훈련에 2358개 업체 참여... 훈련과정도 수천개
취준생들 "구직훈련 기술쪽 치우져... 대졸자 위한 훈련 없어"
'4차산업' 일부 훈련기관... 전문성 부족 지적 받아
[편집자주] 수천억원 청년일자리 예산이 줄줄 새고 있다. ‘취업 알선’을 돕고자 도입한 취업성공패키지가 현장에선 ‘공돈 벌이’ 용도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적잖다. 고용 절벽 위에 선 청년들의 정책 만족감도 높지 않다. 설상가상 올해 청년취업률도 제자리 수준. 취업성공패키지의 허점을 들여다보고 바람직한 취업지원 정책의 방향을 모색해본다.
[서울=뉴스핌] 김준희 기자 = “취업성공패키지는 3년 전부터 알았어요. 돈을 준다고 해서 지원했는데 막상 해보려니 정말 취업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었어요. 현실적으로 외국어 수업이 필요했지만 인문계 전공이 들을 만한 수업은 없었어요. 지원을 취소했습니다.”
박주현(28·여)씨는 ‘돌아온 취준생’이다. 최근 다시 취업성공패키지(이하 취성패)를 고려해봤지만 앞서 박씨를 중도 포기하게 만든 조건이 변하지 않았다. 박씨는 “컴퓨터나 회계 쪽 수업만 많더라”며 “그냥 들어보자니 지원금도 보조금 수준이라 실업급여를 받는 게 낫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박씨처럼 취성패로 ‘구직훈련’을 알아보다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구직 목표에 맞춰 필요한 훈련을 찾기 어렵거나 훈련기관이 양질의 수업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수습기자 =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년일자리센터에서 열린 ‘일자리 구하는 날 : 취업 성공 일구데이’에서 한 구직자가 행사장에 마련된 이력서 무료 사진촬영 부스에서 제공되는 양복을 입고 있다. 2018.12.19 pangbin@newspim.com |
실제로 취성패 사업은 취업상담(1단계)에서 구직훈련(2단계)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높지 않다. 특히 청년 구직자들이 1단계 종료 후 2단계에 참여하는 비율은 52.7%로 절반에 그친다. 20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7회계연도 결산 분석’에서는 “2단계 참여율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취준생들 “직업훈련, 양 많아도 가짓수 한정적”
취성패 구직훈련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고용노동부에서 지원하는 직업훈련 전반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취성패 2단계인 구직훈련이 고용부 구직자용 훈련 카드인 ‘내일배움카드’를 이용해 직업능력개발 훈련에 참여하는 과정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내일배움카드제(직업능력개발계좌제)는 구직자 및 영세자영업자 등에게 연간 200만원 한도의 금액을 지원한다. 범위 내에서 자기 주도적으로 직업능력개발훈련에 참여하게 하고 훈련 이력 등을 개인별로 통합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훈련을 받는 동안은 월 28만4000원의 훈련비를 받는다. 여기에 교통비 및 식비 등 11만6000원을 추가 지원 받으면 수당은 최대 40만원까지 늘어난다.
취업준비생에겐 돈도 벌며 국비지원으로 무료 취업훈련까지 받을 수 있는 기회지만 취성패 참가자 절반은 구직훈련을 외면했다. 왜일까. 경험자들은 “들을 수 있는 과목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고용노동부 직업훈련포털 HRD넷에서 ‘특정 과목 쏠림 현상’이 확인된다. 구직자 훈련과정 중 ‘내일배움카드’ 유형을 선택했더니 6일 기준 총 5166건의 훈련과정이 검색됐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과목은 컴퓨터·회계·요양보호사·미용자격증 등이었다. 실제 같은 기간 컴퓨터자격증(823건), 세무회계(452건), 요양보호사(427건), 미용(381건), 조리기능사(354건), 바리스타(168건) 등이 훈련과정 다수를 차지했다.
미취업 청년들이 선호하는 ‘외국어’는 무역영어가 포함된 글로벌 무역실무 전문가 양성이 전부였다. 인문계 전공자를 대상으로 설계된 청년취업아카데미 역시 마케팅과 예체능 등 일부 실무과목을 중심으로 진행돼 일반적인 4년제 졸업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적다는 해석이 나온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공급자’ 중심 직업훈련... 요양보호사·사무보조·회계 순
어문계 전공자인 취업준비생 이모(26·남)씨는 “용접을 한다든지 특수한 직업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좋아 보였지만 나처럼 4년제 대학을 나온 일반 전공자에게는 도움될 것이 없는 과정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지역별로 지원되는 프로그램 편차가 크다는 증언도 있었다. 대전에 거주하는 차모(29·여)씨는 “해외 무역 쪽으로 재취업을 원했는데 지방에선 그쪽으로는 지원되는 프로그램이 하나도 없었다”며 “제과제빵 같은 기술 분야에 한정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는 직업훈련이 공급자 중심으로 진행된 탓이 크다. 현행 훈련기관 선정 방식은 수동적이다. 업체가 공고문을 보고 국비 사업 참여를 신청하면 정부가 조건이 맞는 기관을 수용한다. 기준선만 넘으면 진입 제한이 없는 절대평가 구조라 특정 업종 쏠림 현상이 나타나기 쉽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업체는 8월 기준 2358개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고용부에서 파악하는 내일배움카드 훈련 직종의 비중은 참여인원을 기준으로 요양보호사(15%), 사무보조원·회계(13%), 간호조무사(8%), 이·미용(7%), 음식(4%) 정도다. 국가기간전략산업직종의 경우 소프트웨어개발자와 IT관련 디자이너 훈련 등의 참가 비중이 높다.
정부는 훈련기관들이 제공하는 구직훈련의 업종별 비중은 따로 통계를 내지 않고 있다. 구직자들이 훈련 가능 목록을 보고 선택하는 점을 고려하면 참가자 비중이 높은 순이 많이 제공되는 훈련과정일 가능성이 높다.
19일 고용노동부 직업훈련포털 HRD넷 훈련과정 검색순위. [사진=HRD넷 캡처] |
◆‘준비 안 된’ 4차산업 훈련... 국비만 꿀꺽?
신설된 훈련과정의 전문성 문제를 꼬집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4차산업이 트렌드가 되며 교육 준비가 덜 된 훈련기관들이 이름만 4차 산업을 표방해 국비 지원 사업을 따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4월 K대학에서 진행한 ‘바이오 의료 빅데이터 분석 및 활용 과정’에 참가한 수강생들은 ‘커리큘럼과 수업이 다르다’, ‘강사들의 준비가 부족했다’는 등의 후기를 남겼다. 특히 빅데이터를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되리라 기대했던 학생들은 “빅데이터보다는 IT 기초 교육 및 SAP 프로그래밍 교육에 가까웠다”며 “빅데이터에 초점을 둔 수업은 8개월 중 약 1~2주에 불과했다”고 토로했다.
A학원에서 ‘VR/AR Unity3D 게임 프로그래밍 과정’을 수료한 학생들도 업체의 전문성 부족 문제를 강조했다. 한 수강생은 “컴퓨터 사양이 너무 낮고 VR기기도 2대에 불과해 AR/VR실습환경에 전혀 맞지 않아 왜 개강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며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국비 따내고 원생 받아서 급하게 열린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두 기관이 약 6~8개월 동안 학생 한 명을 교육하는 대가로 받은 정부지원금은 각각 2065만원과 482만원이었다. 4차산업 관련 훈련은 국가기간전략산업직종으로 분류돼 계좌 한도(200만원)에 상관없이 훈련 전액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A학원의 경우 같은 비용을 내는 개인 수강생과 비교해 국비반 수강생이 받는 수업의 질이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비반의 수강인원이 30명이라면 정규수업은 절반인 15명 정원으로 진행된다.
학원 관계자는 “정규반이나 국비반이나 질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면서도 “아무래도 정규반이 1대 1 코칭이라든지 수준별 수업이 가능해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국비 지원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한 업체. 본 기사와 직접 연관 없음. |
취업난을 빌미로 훈련기관이 ‘국비’(세금)를 잡았다는 말도 나온다. 일부 영세사업장은 국비지원 사업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졸자 겨냥 직업훈련기관은 많지 않고 전직기관은 제조업체 출신을 서비스업종으로 돌리기 위한 교육을 제공한다”며 “사회서비스업이 비용이 안 드니 그런 훈련이 많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훈련기관들도 워낙 많다보니 돌아가는 돈이 많지 않을뿐더러 교육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할 여유가 없다”며 “(일부 훈련이라도 고도화할 수 있게) 차라리 선택과 집중을 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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