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들' 우민호 감독 신작…1970년대 이면 담아내
[서울=뉴스핌] 장주연 기자 = 마약도 수출하면 애국이 되던 1970년대 대한민국, 하급 밀수업자였던 이두삼(송강호)은 우연히 마약 밀수에 가담한다. 이 과정에서 마약 제조와 유통 사업에 본능적으로 눈을 뜬 그는 본격적으로 마약 사업을 시작, 뛰어난 눈썰미와 빠른 위기대처능력으로 단숨에 마약업을 장악한다. 로비스트 김정아(배두나)를 만난 후 그가 만든 마약은 ‘메이드인 코리아’란 브랜드를 달게 되고 이두삼은 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한다.
‘마약왕’은 제목 그대로 마약왕이 됐다가 몰락하는 한 남자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1970년대 실존 사건과 인물들을 모델로 삼아 우민호 감독이 재가공했다. 캐릭터의 대립 구도를 발판 삼아 내달리다 통쾌한 결말을 선사한 전작 ‘내부자들’(2015)과는 완전히 다른 서사 구조다.
우 감독은 마약으로 백색 황금시대를 누린 마약왕의 흥망성쇠를 통해 유신정권 아래 온갖 범죄가 활개 치던 대한민국의 암울했던 시대 이면을 담아낸다. 특히 어쭙잖은 미명하에 범법 행위를 저지르고 또 몰락하는 이두삼의 삶은 박정희 정권과도 묘하게 맞물린다. 이를 풀어가는 과정이 대단히 새롭지는 않으나 충분히 흡입력은 있다.
음악의 도움도 컸다. 1970년대 대중가요, 팝 음악, 클래식 등 다양한 음악이 러닝타임을 채운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김정미의 ‘바람’을 비롯해 정훈희의 ‘안개’, 군가 ‘멸공의 횃불’, 직소의 ‘스카이하이’, 슈베르트의 ‘마왕’, 도니제티의 오페라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 등이 적재적소에, 혹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흐른다. 초반부 극의 재미를 더하는 것도 후반부 루즈해진 이야기를 조이는 것도 음악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마약왕’의 가장 큰 강점은 이두삼을 열연한 송강호다. 송강호는 오랜 시간 쌓아온 자신의 수많은 얼굴을 하나씩 끄집어낸다. 이두삼의 파란만장한 10년은 매 장면 각기 다른 얼굴을 만들어내는 송강호로 하여금 생명력을 얻는다. 그의 연기는 영화의 빈틈마저 촘촘히 메워 낸다. 송강호는 ‘역시’ 송강호다.
물론 송강호 외에도 조정석, 배두나, 김소진, 조우진, 이희준, 김대명, 이성민 등 배우들 역시 노련한 연기를 펼친다. 다만 캐릭터가 그들의 열연을 감당하지 못한다. 초반부 활력 넘쳤던 캐릭터들은 하나둘 힘을 잃고 급기야 몇몇은 후반부 소리소문 없이 증발해버린다. 너무 많은 인물이 등장한 탓인지, 이두삼을 위한 집중과 선택이 필요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우 감독이 그리는 여성 캐릭터와 유흥 장면은 여전하다. 필요 이상으로 선정적이고 변함없이 불쾌하다. 19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jjy333jjy@newspim.com [사진=㈜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