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및 통진당 등 재판개입·판사 블랙리스트 등 혐의
"업무상 상하관계에 따른 범죄…임종헌 상급자 책임 물어야"
[서울=뉴스핌] 이보람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고영한(63·사법연수원 11기)·박병대(61·12기)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3일 청구했다. 관련 수사가 시작된 지 7개월 여 만에 전직 대법관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첫 사례다.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 검사)은 이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두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특히 임 전 차장의 구속영장청구서에 이어 이번 영장청구서에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공범으로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영한(63·사법연수원 11기, 왼쪽부터)·박병대(61·12기) 전 대법관 |
검찰 측 관계자는 "이 사건은 특정인의 개인적 일탈이 아닌 업무상 상하관계에 의한 지시감독에 따른 범죄 행위"라며 "두 전직 대법관은 이미 구속된 임종헌(59·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상급자로서 더 큰 결정 권한을 행사했기 때문에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책임을 묻기 위해 신중한 검토 끝에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의 독립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헌법 가치인데 이를 훼손한 이 사건은 관련 의혹 한 건 마다 중대한 구속 사안이라고 판단했다"며 "두 분 모두 혐의 내용을 부인하고 일부 하급자들의 진술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어 구속 영장 청구는 불가피하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앞서 검찰은 이들 두 대법관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장으로 지내면서 각종 재판개입을 비롯한 사법농단 의혹 전반에 깊숙이 관여했다고 보고 수사를 벌여왔다.
검찰에 따르면 고 전 대법관은 지난 2016년 2월부터 2017년 5월까지 법원행정처장을 지내면서 이른바 ‘부산 스폰서판사 비위 의혹’을 법원행정처가 축소·은폐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6년 당시 문 부장판사는 자신의 스폰서이던 건설업자 정모씨 재판 관련 내용을 유출했지만 당시 법원행정처가 이를 확인하고도 별다른 징계없이 사건을 무마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전 대법관은 이 과정에서 당시 부산고법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선고기일을 미루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관련, 고용노동부의 재항고 이유서를 대필하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도 있다.
같은 날 동시에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 전 대법관은 양승태 사법부에서 본격적으로 ‘상고법원’을 적극 추진하던 2014년 2월부터 2년 동안 행정처장을 지내며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지연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특히 그는 2014년 10월 청와대 비서실장 공관에서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윤병세 외교부장관 등과 함께 일제 강제징용 소송 진행방향과 결과 등을 직접 논의한 의혹을 받고 있다. 또 통합진보당 지방의원 지위확인 소송과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 관련 재판에도 개입한 의혹도 있다.
아울러 이들 전직 두 대법관은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도 핵심적으로 관여한 의혹을 받는다.
검찰은 이같은 혐의 외에도 수사를 통해 추가적인 재판 개입 혐의를 포착해 구속영장 청구서에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에 대한 영장 발부 여부는 이르면 5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거쳐 당일 늦은 밤 또는 다음 날 결정될 전망이다.
brlee1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