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수요' 증가가 가져온 '농식품 기술' 개발
푸드밸리를 이끄는 신(新) 협업 체계
[서울=뉴스핌] 김세원 기자 = "모든 대형 농업 기업의 모습은 과거 70년대 무너질 날만을 기다리던 메인프레임(대용량 고속 컴퓨터) 기업의 모습과 흡사하다"
애플에서 아이팟 개발에 기여해 '아이팟의 아버지'라고도 불렸던 토니 파델은 한 때 과거 농식품 분야를 두고 이와 같은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파델 외에의 많은 전문가 역시 농식품 산업을 한물 간 산업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세계인구 증가에 따른 식품 수요 증가와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와 함께 농식품 분야의 기술 개발은 투자자의 관심을 끌며, 미래를 이끌 신(新)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농식품 분야의 심장으로 불리는 곳은 네덜란드 헬데를란트주(州)에 위치한 바헤닝언이라는 지역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5일(현지시각) 농식품 분야의 실리콘밸리인 '푸드밸리'라고도 불리는 바헤닝언이 어떻게 전 세계의 농식품 생산 산업을 주도하는지에 관해 심층분석 한 보도를 내놓았다.
바헤닝언 지역은 바헤닝언대학교 및 연구센터(UR)를 중심으로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립대 데이비스(UC 데이비스)캠퍼스 그리고 코넬대학교와 함께 전 세계 농식품 산업 연구를 주도하는 대표적인 연구 센터 중 한 곳으로 꼽힌다. 바헤닝언의 반경 10km 내외에만 약 200여개의 기업이 모여 하나의 농식품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FT는 농식품 기술에 대한 쏟아지는 관심이 최근 전 세계 트렌드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설명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단백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식량 공급을 압박하고 있을뿐더러 서방 국가에서는 소비자들의 취향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식품에서 건강하고, 독특한 제품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단백질 수요 증가 및 소비자들의 식품 취향 변화가 유전자 편집 기술부터 인공지능(AI), 디지털 기술과 같은 식품 생산 및 농작물에 적용되는 과학 기술의 혁신을 도래했다는 분석이다.
바헤닝언 대학교의 에른스트 반 데 엔데는 FT에 "10년 전까지만 해도 농업은 대화거리가 될 만큼의 매력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가 바헤닝언에서 공부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친구들은 '왜 바헤닝언에 가려고 하나? 그곳은 농부들만을 위한 곳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 바헤닝언대학교의 과학자들은 단백질 함량이 높은 곤충을 이용한 식품 개발을 인구증가가 초래할 식량부족을 대비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았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 '식량 수요' 증가가 가져온 '농식품 기술' 개발
한때는 시대적으로 뒤처진 산업이라 여겨졌던 농업 기술에 투자자들의 이목이 쏠리면서, 수직 농장부터 농업용 로봇, 육류 대체 식품까지 농식품 기술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자금이 흘러들고 있다. 농업 온라인 투자 플랫폼 애그펀더(AgFunder)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식품 기술에 대한 전 세계 투자는 3배 이상 증가한 100억달러를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농식품 기술의 진화가 세계 인구 증가에 대처할 방안을 마련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유엔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는 오는 2050년 100억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이 토지 파괴 및 수자원 접근 제한을 초래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대로 가면 세계가 식량난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인구증가로 인한 육류 소비가 오는 2050년까지 76%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농식품 기술 발전이 증가하는 식량 수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희망을 걸고 있다.
바헤닝언대학교는 식품 개발 중에서도 단백질을 함유한 식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바헤닝언대학교의 총장인 루이스 프레스코는 개발 도상국의 국민이 갈수록 부유해지는 만큼 단백질 식품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중에서 육류의 수요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식물과 물고기, 곤충을 이용한 단백질 함유 식품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단백질 함유 식품 개발 외에도 바헤닝언에서는 로봇공학을 농식품 산업에 접목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로봇 팔에 익은 후추를 감별하는 센서를 장착하는 연구를 진행 중인 릭 반데 제드는 FT에 "우리는 (로봇 팔이) 과일과 채소를 상하지 하지 않고 정교하게 측정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로봇 공학이 농업 분야가 직면한 노동력 부족 문제를 완화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비록 과일과 채소의 모양과 익음 정도가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기술적인 도전은 여전히 광범위한 편이지만, 과학자들은 인공지능(AI) 기술이 로봇 팔이 제대로 익은 과일과 채소만을 골라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있다.
◆ 푸드밸리를 이끄는 새로운 협업 체계
바헤닝언대학교의 명성은 수많은 기업과 전문가가 거주하는 '푸드밸리'에서 비롯됐다. 바헤닝언 지역의 푸드밸리에는 작은 스타트업 기업부터 작물 육종 분야를 주도하는 키진(Keygene) 그리고 대형 식품회사인 크래프트 하인츠까지 여러 연구소와 글로벌 기업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바헤닝언 농식품 클러스터의 가장 큰 경쟁력은 바로 이들의 특유 '협업 체계'에 있다.
바헤닝언대학교는 2004년 공식적으로 푸드밸리 재단을 설립해, 기업들 간의 새로운 협업 체계를 구축했다. 푸드밸리 재단을 통해 바헤닝언대학교는 스타트업 및 소기업과 대형 기업들 간의 전략적 협업을 추진할 뿐 아니라, 법적 자문 서비스도 지원하고 있다.
키진의 아옌 반 툰엔은 FT에 "이런 생태계의 일원이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푸드밸리에서 정보를 주고받을 뿐 아니라, 경쟁을 벌이고 있는 기업과도 "전략적인 동맹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헤닝언에서 근무하고 있는 유니레버의 임원 역시 푸드밸리의 협업 체계를 두고 "새로운 작업 방식"이라고 묘사했다. 이어 그는 "지속 가능하고, 건강하고, 안전한 식품 생산은 혼자서는 해낼 수 없다"며 "우리는 다른 이들과 함께 협력해야 한다"고 바헤닝언 특유의 협업 체계를 장점으로 꼽았다.
하지만 이 같은 연구 체계에도 우려는 존재한다. 바헤닝언대학교에서 근무하는 한 연구원은 바헤닝언이 지금처럼 대형 기업들과 협력해 나갈 것으로 보이지만, 기술 개발의 초기 단계에서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대기업의 특색이 바헤닝언 푸드밸리에 들어선 일부 기업들의 성격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어 "대형 기업만이 항상 최고인 것도 아니며, 혁신을 가져올 빠른 루트도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saewkim9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