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 비판 "기업 투자 늘려 생산과 소비 진작"
안철수의 ‘성장의 사다리’, 문재인 후보의 ‘국민성장’ 차용도
한국적 경제현실 고민 흔적 적어.."낙수효과로 회귀" 지적도
[서울=뉴스핌] 김선엽 기자 = "국민들이 마음껏 뛸 수 있는 그런 국가시스템을 만들고 국가는 필요한 지원만 하자"
지난 16일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꺼내든 '국민성장론'이다. 비대위원장이 국가 성장동력까지 제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라는 비판도 있지만, 지금은 거대 담론으로부터 대정부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문재인 정부가 '국가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 내부에 제대로 된 성장담론이 없다는 문제의식도 녹아있다.
단, 아직까지 확 도드라진 내용은 찾기 힘들다. 어디선가 들어본 얘기들이다. 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듯 새로운 경제정책이 '툭' 하고 떨어질 수 없다. 과거 정책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배척할 수는 없다.
무엇을 조합하고 어디에 방점을 두는가가 정책의 결과에 차이를 낳는다. 그는 지금까지는 개념 정도만 추스른 정도라며 추석 이후 의원총회를 거쳐 브랜드와 구체적 정책을 가다듬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예방하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8.09.14 kilroy023@newspim.com |
◆ 안철수의 ‘성장의 사다리’, 문재인 후보의 ‘국민성장’ 차용
지난 16일 국민성장론을 발표한 김 위원장의 발언에서 '성장' 다음으로 가장 자주 등장한 단어는 '자율'이다. 총 8번 등장했다. 자율은 규제완화의 다른 말이다.
김 위원장의 자율 중시는 비대위 초기부터 시작됐다. 김 위원장은 국가주의 논쟁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원가공개, 먹방(먹는 방송) 가이드라인 등을 추진한다며 비판을 시작했다.
이번에 제시한 국민성장론에서도 그는 국가의 역할은 최소한으로 한정했다. △성장의 사다리 구축 △공정한 기회 제공 △사회 안전망 강화 등을 통해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성장론의 요지다.
국가는 분배 문제를 해결하면서 성장의 촉진자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고 본다. 정부의 과도한 간섭으로부터 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다분히 교과서적이다.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의 투자를 늘린다는 정책 기조는 98년 외환위기 이후 어느 정부든 최우선 과제로 꼽아왔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규제 전봇대를 뽑겠다고 외쳤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손톱 밑 가시'를 외치며 진돗개 정신으로 규제를 없애라고 지시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최근 '붉은 깃발'을 거론하며 취임 1년 만에 규제개혁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성장의 사다리'의 저작권도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에게 있다. 안 전 대표는 2012년 대선후보 시절 "중소기업이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성장의 사다리를 놓아주자"고 주장했다.
국가성장론이 제시하는 '공정한 기회 제공' 역시 문재인 정부의 '공정경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안전망 강화'도 그 동안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가 문제였을 뿐, 2000년대 이후 보수와 진보가 너나 할 것 없이 펼친 주장이다.
김 위원장이 성장 동력으로 제시한 스타트업·글로벌·리쇼어링 혁신밸리 패키지 역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또는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과 크게 다르게 다가오지 않는다. 심지어 '국민성장'이라는 네이밍(이름짓기)조차 2017년 문재인 대선 후보의 싱크탱크 명칭과 같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월7일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한 현장방문으로 강서구 마곡 소재 (주)엘컴텍을 방문해 관계자로부터 고압 수소발생기기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기재부 제공> |
◆ 한국적 경제현실에서 왜 교과서적 답변이 무력했는지 답해야
새로울 것 없는 주장들임에도 김 위원장의 ‘국민성장론’을 흘려듣기 힘든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최근 급격히 지지세를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아직까지 가계의 소득을 유의미하게 늘리지 못하고 있다. 또 향후 소득이 늘어난다고 해도 이것이 과연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인지 연결고리를 찾기 힘들다는 비판이 거세다. 현 정부가 복지정책(또는 경기부양책)과 성장론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 주류 경제학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소득주도성장의 위기 속에 ‘기업의 자율’이란 '오래된 답안'을 적어낸 김 위원장. 그의 구상대로 국민성장론은 소득주도성장의 대안으로서 폭넓은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나아가 '다이나믹 코리아'를 일깨우는 계기가 될까.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에서 그 동안 보수정부가 제출했던 교과서적 답안이 왜 성공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는가의 문제에 김 위원장이 우선 답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적 현실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간 기대했던 낙수효과는 없었고 전국 17개 도시에 위치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기술벤처기업의 인큐베이터가 되지 못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들이 위기를 타개하는 동안 가계는 부채로 부실해졌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민성장론과 관련해 "투자가 단지 규제완화만으로 촉진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이브(순진)하다고 본다"며 "낙수효과도 없었던 과거정책으로 돌아가는게 아닌지 우려도 된다"고 지적했다.
또 "사회안전망 강화 등을 주장하려면 상위 10%에 대한 증세 방안도 함께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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