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불거져
상고법원 도입 위해 전교조·원세훈 등 재판 개입
최종적으로 양승태·박근혜 조사 불가피
[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양승태 사법권 남용 의혹의 시작은 법관 뒷조사, 끝은 정권과의 ‘재판 거래’로 구분할 수 있다. 지난해 본격적으로 불거진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권과 거래를 해왔다는 은밀한 정황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지난해 4월,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가 일부 법관들의 성향을 분석하고 관리해왔다는 폭로가 나왔다. 대법원은 파문이 커지자 진상조사위를 꾸렸지만 아무 성과 없이 조사가 마무리됐다. 여론은 들끓었다. 그러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추가조사를 거부하고 임기 만료로 퇴임하고, 김명수 대법원장이 그해 9월 취임했다.
[경기=뉴스핌] 이형석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박근혜 정부 당시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법원행정처 ‘재판거래’ 파문에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18.06.01 leehs@newspim.com |
김 대법원장이 취임하고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 두 달 만에 추가조사위원회를 발족시켰기 때문이다. 추가조사위는 3개월여의 조사 끝에 지난 1월 22일 “인사나 감찰 부서에 속하지 않는 사법행정 담당자들이 법관 동향이나 성향 등을 파악, 작성한 문서 가운데 법관의 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다수의 문서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추가조사위 발표 결과에 따른 후속조치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은 5월 25일 조사 대상이 됐던 문건 410건 중 92건을 공개했다. 공개된 문건들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 당시 법원행정처는 정권이 불편해 할 만한 의견을 내는 판사들을 뒷조사하고 재판 과정에 개입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 거래 대상이 된 재판...김기춘 등 朴청와대 실세들도 개입
법원행정처가 7월 31일 공개한 190여개의 추가 문건들을 들여다 보면 사안은 더욱 심각하다. 양승태 사법부는 3심인 상고심 사건만을 담당하는 법원인 ‘상고법원’ 설치를 대가로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소송’과 ‘원세훈 댓글 공작 사건’ 등에 개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정권 핵심 인사들이 개입한 정황을 포착했다. 검찰은 8월 2일 외교부 압수수색을 통해 2013년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주철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만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사건에 대해 논의한 정황이 담긴 문건을 확보했다.
검찰은 이와 관련, 지난달 14일 박근혜 정권의 ‘실세’로 불렸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소환 조사에서 2013년 12월 1일 당시 법원행정처장이던 차한상 대법관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서울 삼청동 비서실장 공관으로 불러 만난 것을 시인했다고 한다.
또 김 전 실장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판결을 최대한 늦추거나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해달라 요구한 사실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PC에서 전교조 법외노조 소송에 개입한 정황도 발견했다. 고용노동부가 재항고이유서를 재판부에 채 내기도 전에 임 전 차장과 고용노동부 사이의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 양승태-박근혜 조사 불가피...양승태 수사가 최종 목적지
결국 검찰의 최종 목적지는 재판을 두고 거래를 벌였던 전 행정부와 사법부의 수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찰의 칼 끝이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통령을 향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이 당시 정권과 연결고리가 됐던 대법관 등 관련자들의 압수수색 영장을 줄줄이 기각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직 대통령을 직접 수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은 이미 지난 해부터 ‘국정농단’을 비롯한 모든 재판을 거부하고 면회도 거부하는 상황인데 검찰이 부른다고 출석하겠냐”며 “검찰도 전직 대통령을 두고 강제구인 카드까지 꺼내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법관 사찰 문건이나 재판 동향 등 사법행정권 남용 문건을 작성한 일선 판사들과 전 정권 관련자들을 불러 조사하는 방식으로 막힌 수사를 돌파하고 있다. 검찰은 실무진들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 짓는 대로 대법관 등 윗선을 소환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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