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전기수 이야기를 통해 전하는 풍자와 해학
오는 22일까지 정동극장 공연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조선시대 사람들은 심심한 시간을,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 풀었을까? 한번쯤 궁금했다면 뮤지컬 '판'을 보는 것이 좋겠다. 신명나는 놀이는 물론, 시원한 풍자와 해학이 가득하다. 전통연희에 뮤지컬의 다양한 요소를 더해 한층 세련되고 흥겹게 관객과 만나고 있다.
뮤지컬 '판' [사진=정동극장] |
뮤지컬 '판'(연출 변정주)은 양반가 자제 '달수'가 조선 최고의 전기수 '호태'를 만나 최고의 이야기꾼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 정동극장(극장장 손상원)의 2018년 두 번째 기획공연으로, 지난해 3월 CJ문화재단 스테이지업 기획공연, 12월 정동극장 '창작ing' 시리즈로 선보인 후 재정비해 돌아왔다. '전기수(傳奇?)'란 조선 후기 이야기를 읽어주고 돈을 버는 사람을 뜻한다.
작품은 책을 빌려주는 세책가 앞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이덕'을 따라가다 매설방(이야기를 파는 곳)의 존재를 알게 된 부잣집 도련님 '달수'가 금지된 이야기에 빠져들고 급기야 전기수 '호태'에게 낭독의 기술을 전수받는 과정이 그려진다. 금지된 이야기란 야한 것은 물론 흉흉한 세상을 풍자하는 패관소설들, 때문에 매설방은 존폐위기를 맞고 '달수'와 '호태'도 잡혀가지만 이야기로서 위기를 극복한다.
뮤지컬 '판' [사진=정동극장] |
공연은 극중극 형식으로 진행돼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들과 전기수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내용이 함께 펼쳐진다. 큰 줄기 속에 독립적인 에피소드들이 담기면서 매우 풍성해졌다. '달수'가 살아가는 현실은 이야기를 검열하고 통제하려 하지만, 그의 이야기 속에는 오히려 이들을 풍자한다. 이러한 모습이 현재의 우리와 닮아있다. 뇌물을 받는 정치인, 문화예술계 검열, 촛불시위 등 어딘가 익숙한 향기가 풍긴다.
이를 전통 연희 구조로 풀어내면서도 스윙, 보사, 탱고, 클래식 등 서양의 장르가 접목돼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서양 음악과 국악 퍼커션이 어우러진 새로운 음악이 흥을 더한다. 전자악기, 장구 등 타악기를 담당하며 극의 이야기꾼이 되는 '산받이'의 존재도 독특하다. 배우들은 전통 마당놀이처럼 직접 관객들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꼭두각시 놀음, 인형극 등 다양한 요소로 볼거리와 메시지를 전한다.
뮤지컬 '판' [사진=정동극장] |
'판'은 배우들이 노래와 연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게 한다. 직접 이야기 속의 주인공으로 분하는 것은 물론, 탑을 쌓거나 줄을 타는 인형극을 펼치고, 의자 혹은 받침대처럼 여겨졌던 카혼으로 장단을 치며 극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탈과 새 등의 소품과 종이 꽃가루의 무대 효과도 직접 연출한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다채로운 볼거리, 배우들의 열정적인 무대는 지루할 틈이 없다.
이번 공연에는 초연 때 함께 했던 멤버가 모두 출연한다. '달수' 역의 유제윤과 김지철, '호태' 역의 김지훈과 김대곤, '춘섬' 역의 최유하, '이덕' 역의 박란주, '사또' 역의 윤진영, '분이' 역의 임소라, '산받이' 역의 최영석이다. 이와 함께 '이덕' 역의 유주혜, '춘섬' 역의 김아영, '산받이' 신광희가 합류해 더욱 강력해졌다.
지난달 12일 막을 올린 뮤지컬 '판'은 오는 22일까지 정동극장에서 공연된다.
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