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처벌법, 벌금 10만원 '유명무실' 논란
피해자 보호 미흡, 살인 등 흉악범죄로 이어져
수법도 교묘하고 악랄…GPS, 카메라도 동원
법무부, 가해자 징역형 법안 추진
[서울=뉴스핌] 박진범 기자 =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하던 A(29·여·강동구)씨는 최근 일면식 없는 남성이 집 앞까지 수차례 찾아와 밤잠을 설쳤다. 반복해서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 밖에서 얼쩡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참다 못해 112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딱히 방법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호신용품을 사놓아도 불안한 밤은 계속됐다. A씨는 결국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 증세를 견디지 못하고 부모가 사는 본가로 피신해야했다.
지난해 12월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윤태진(31)씨는 스토커가 보낸 협박성 문자 메시지를 공개해 충격을 줬다. 해당 메시지에는 “아파트 앞이다. 안 자는 거 안다. 불 켜져 있네. 당장 나와라. 뺨 한대 맞아줄 테니. 벨 누를까? 소리 한번 칠까” 등 섬뜩한 문구가 가득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이처럼 하루가 멀게 쏟아지는 스토킹 사건에 많은 여성들이 피해를 호소한다. 2016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 신고 접수는 555건으로 전년 대비 35%(192건) 증가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스토킹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 분석이다.
범죄 예방 및 대책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우선 '있으나 마나'한 법이 문제다. 현행법상 스토킹 범죄는 경범죄로 분류되며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법원이 접근금지명령을 내리거나 경찰이 스토커를 스토킹하는 등 적극 대응하는 외국과는 다르다. 어렵사리 범인을 잡아도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科料)의 형에 그친다. 경찰은 강간이나 추행, 주거침입 등 '본격적인 범죄'가 벌어지지 않으면 좀처럼 수사에 나서지 않는다.
적절한 피해자 보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더 큰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서울 송파구에 사는 30대 여성은 사귀다 헤어진 남성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다. 석 달 전부터 가해자에게 스토킹 당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경찰은 비극을 막지 못했다.
지지부진한 법안 개정도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15대 국회부터 19대 국회까지 스토킹 범죄 처벌법이 여덟 차례나 발의됐지만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번 20대 국회에서도 ‘데이트 폭력 등 관계집착 폭력 행위의 방지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발의됐으나 계류된 상태다.
정부는 뒤늦게 스토킹 범죄 가해자를 징역형에 처하는 새 법안을 마련했다. 지난달 법무부에 입법예고된 제정안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거나 이용하면 징역 5년 이하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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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문가는 처벌만 강화해서는 범죄를 막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변혜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은 “신고부터 법원 판결, 실제 가해자 처벌까지 가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험난하다”며 “그동안 피해자가 겪는 어려움이나 2차 피해에 대한 의료·심리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갈수록 교묘하고 악랄해지는 스토킹 범죄를 막을 실질적 대책도 시급하다. 변 원장은 “근래 스토킹 범죄는 잘못된 구애 방식에서 비롯된 범행뿐 아니라 반사회적 협박, 광적인 집착, GPS나 초소형카메라 동원 등 수법과 유형이 매우 다양해졌다”며 “미국에서 경찰이 피해자 신변 보호에 나서는 것처럼 보다 확실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헤어진 연인 간에 발생하는 스토킹은 그간 사랑싸움이나 개인의 영역으로 치부돼 왔다”며 “명백한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 개선과 동시에 관련 신고·수사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beo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