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지점 언제든 재가동 가능…남북경협 확대시 역할 기대
[서울=뉴스핌] 최유리 기자 = 최호열 우리은행 개성지점장은 지난 2016년 2월 10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오후 3시 홍영표 당시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발표했다. 출입 제한이나 잠정 중단 등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전격적인 조치였다. 철수까지 주어진 시간은 단 30분. 오후 5시 북측에서도 발표가 있을테니 30분 안에 개인 사물만 챙겨 바로 정리하라는 통보가 있었다.
2년이 지난 현재 우리은행 개성지점은 여전히 영업 중이다. 다만 장소를 북한 개성공단에서 서울 우리은행 본점 지하 1층으로 옮겼을 뿐이다. 최 지점장과 부지점장이 개성공단 입주 업체의 사후관리를 하고 있다.
최 지점장은 "입주기업들이 대부분 계좌를 유지하고 잔고도 남겨놓은 상황"이라며 "개성에서 사용하던 전산시스템과 인력도 그대로이기 때문에 개성공단이 정상화되면 언제든 개성지점도 재가동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 지점장이 꼽은 자산은 북한에서 쌓은 경험이다. 특수한 환경에서 북한 임직원들과 손발을 맞춰 개성 입주기업들과 신뢰를 다진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3통(통행·통신·통관)에 대한 규제로 인터넷을 전혀 쓸 수 없어, 내부 통신망이나 팩스를 사용해야 한다"며 "100만평 규모의 개성 공단 내에서만 활동이 가능하고 금융 업무의 경우 단순한 송금이나 입출금으로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 개성임시영업점 [사진=우리은행] |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남한 사람을 대상으로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북한 여직원들이 창구 영업을 어색해했다. 손님이 와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업무상 전화가 와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최 지점장은 "회계나 상과를 전공한 직원들이었기 때문에 업무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손님에게 인사를 하거나 전화를 받는 것을 어려워했다"며 "금융업이 서비스 업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전임자들의 경험도 전달하면서 긴장을 풀려고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한 달이 지나자 변화가 나타났다. 창구 손님을 대하는 일도 한결 자연스러워졌을 뿐만 아니라 거래 업체와 고객 이름을 줄줄 외웠다. 더러 시재가 맞지 않는 날에도 서로 머리를 맞대고 두꺼운 전표를 뒤져서 금방 해결했다.
2년 전 경험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는 최 지점장에게 현재 남북관계 해빙무드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개성공단지점 정상화뿐 아니라 평양이나 다른 산업단지 내에 지점을 확대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남북 경제협력이 활발해질 경우 북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참여나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영업 등에도 주목하고 있다. 북한에 금융을 이식해 합자은행이 설립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최 지점장은 "북한은 특수한 지역이기 때문에 관계를 구축한 경험이 중요하다"며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 모르겠지만 우리은행 개성지점이 다시 문을 여는 것을 넘어 남북금융의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