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라씨로
KYD 디데이
정치

속보

더보기

[ANDA칼럼] 지세이(辭世) : JP의 유언

기사입력 : 2018년06월25일 06:00

최종수정 : 2018년06월25일 09:35

JP, 시원하게 석양주 한 잔 하시고 가셨나요
불꽃처럼 살다가 타고 남은 재조차 불태운 남자
한국 정치에 깊이‧해학을 더한 JP를 추모하며

[서울=뉴스핌] 이준혁 정치부장 = 김종필 전 총리(JP)가 지난 23일 귀천(歸天)했다. 올해 나이 92세.

      이준혁 정치부장

인생 졸업한다는 ‘졸수(나이 90세를 이르는 말·卒壽)’를 넘겼으니, 천수를 누리고 본향으로 돌아갔다고 해야 할까. 주변의 말을 들어보면 말년에 스스로 “정치인생 덧 없다”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JP만큼 한국 현대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긴 정치인이 있을까 싶다.

한 후배 정치인은 “JP 앞과 뒤에 그만한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인생 전부를 정치에 불 태운 사람 아닌가”라고 평가했다.

JP가 영면에 들어가면서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시대’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야당의 한 국회의원은 우스갯말로 “세월이 많이 지나면, ‘3김 시대’도 오래전 삼국시대(고구려·백제·신라)처럼 회자되지 않을까. 그만큼 세 사람이 한 시대를 크게 움직인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세 명의 정치인이 움직였던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가 모두 채워졌다는 얘기다.

궁금하다. 현대사 격동의 시대를 이끌었던 정치인들이 바라본 지금의 정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래서 JP의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JP의 메시지, 유언(지세이·辭世)이 무엇이었는지.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빈소에서 조문을 하고 있다. 2018.06.23 kilroy023@newspim.com

JP 묘비에 쓰여질 사무사(思無邪)’

일본에선 죽기 전 남기는 짧은 유언을 ‘지세이(辭世)’라고 부른다. 세상을 하직한다는 의미다. 죽음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JP의 ‘지세이’는 죽음을 맞은 순천향대병원에서 전승된 것이 아니다. 거동이 불편했던 몇 년 전부터 JP는 곳곳에 ‘지세이’를 남겼다.

지난 2015년 1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이미 묘비에 적을 글까지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내가 죽으면 집사람과 같이 누울 묘소를 고향 부여에 미리 만들어놨다. 묘비명도 만들었다. 내 인생철학은 '사무사(思無邪)'다. 허튼 생각은 일절 안 한다. 욕심 부리지 않는다.“

“젊어선 잘 몰랐는데 이제 졸수(卒壽·90세)를 넘기니 알겠다. 돌이켜보면 내가 뭘 남겨놨단 말인가. 한탄 밖에 안 나온다. 그것도 묘비에 써놨다. 내가 죽어 묻히거든, 나중에 시간 있을 때 산책 하러 한번 와봐라. 그럼 '이 사람이 여기서 이렇게 한탄하면서 누워있구나' 할 거다."

당시 인터뷰를 했던 기자가 ‘뭐가 그렇게 후회 되십니까’라고 묻자, JP는 막힘 없이 심사를 털어놨다. “조금 더 자유롭고, 조금 더 민주적으로 자기 희망대로 살 수 있는 기반이 국민을 위해 다져졌으면 해서 혁명도 하고 했는데, 미흡하니까 아쉽다. 미안하고 그런 감정이다. 더 잘 했었으면 하지만, 내 능력껏 한 것이니까.”

기자가 다시 물었다. “뭘 더 했으면 더 잘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JP는 “정치는 결과다. 국민이 지금보다 더 윤택하고 자유롭고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세상을 굳혔으면 더 잘했다고 했겠지만 미흡하기 짝이 없다”고 답했다.

국민이 더 윤택하고, 더 자유롭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 그래서 정치를 했던 사람으로서 그 책임 앞에서 미흡하기 짝이 없다고. 그 말을 묘비명에 그대로 써놓고 지나는 사람들마다 자신에게 욕을 하고 조롱을 해도 상관없다는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남자.

정치에 대한 불신과 정치인의 미흡함을 고스란히 죽은 뒤에도 받아들여, 후손들에게 ‘타산지석’으로 삼으라고 말하려는 듯, 확실히 JP는 정치의 본질을 꿰뚫어 본 정치인이다. JP가 생전 그렇게도 좋아했던 일본의 대하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대망)’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정치란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를 끝없이 고민하는 지난한 고통의 작업이다.”

JP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천생 정치 9단이다.

(좌)고(故) 김종필 전 국무총리,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우) [사진=뉴스핌DB]

불꽃 만으로 이뤄진, 타고 남은 재 조차 남지 않았다

JP는 주변에 공공연히 “불꽃처럼 살다 가기를 원한다”고 말했었다.

1997년 자민련 중앙위원회 운영위에 참석한 JP는 “내가 제일 보기 싫은 것은 타다 남은 장작”이라며 “완전히 연소해 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1998년 총리 서리 당시 기자들이 “서리 꼬리가 언제 떨어질 것 같으냐”고 묻자 “서리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녹아 없어지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같은 해 언론 인터뷰에선 “봉분 같은 것은 필요 없고 ‘국무총리를 지냈고 조국 근대화에 힘썼다’고 쓴 비석 하나면 족하다”고 인생을 돌아보기도 했다.

2001년 초에는 이인제 민주당 최고위원이 그를 두고 ‘서산에 지는 해’라고 발언하자 “나이 70이 넘은 사람이 저물어 가는 사람이지 떠오르는 사람이냐. 다만 마무리할 때 서쪽 하늘이 황혼으로 벌겋게 물들어갔으면 하는 과욕이 남았을 뿐”이라며 응수했다.

2004년 정계 은퇴를 선언할 때는 “노병은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다. 43년간 정계에 몸 담으면서 나름대로 재가 됐다”고 스스로를 평했다.

JP는 그러면서 “세상에 추한 게 타다 남은 나무토막이다. 이제 완전히 연소해 재가 됐으니 정치를 떠난다”고 했다. 평생 “재가 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정계은퇴를 발표할 때 “재가 됐다”고 했다. 후회 없이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불태웠다는 회한이었다.

정치판을 떠났어도, 정치 9단이 정치에 대해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2015년 부인의 장례식장에선 후배 정치인에게 쓴 소리도 했다. 그는 “국민에게 나눠주는 게 정치인의 희생정신이다. 정치인이 열매를 따먹으려하면 교도소 밖에 갈 일이 없다”고 매섭게 몰아쳤다. 비슷한 시기에 “대통령 하면 뭐 하나. 다 거품 같다”는 말도 남겼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지난 2015년 11월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조문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통령 하면 뭐 하나, 다 거품 같다

JP의 공과에 대해서는 역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5.16군사혁명의 주역, 유신독재의 심장부를 드나들었던 권력가, 1990년 '3당 합당'으로 노태우‧김영삼과 함께 민자당을 탄생시킨 책사,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성사시켜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를 일궈낸 일등공신 , 충청 계파를 만든 노회한 최다선(9선) 국회의원.

또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광화문 이순신장군 동상 건립을 일궈냈고, 세종문화회관에 동양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한 장본인, 건축가 김수근을 지원해 남산자유센터를 지었던 선구자적인 모습도 적잖이 남겼다.

JP는 생전 일본 전국시대 천하를 주름 잡았던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우화를 자주 언급했다. 예컨대 "울지 않는 새는 죽여버려라(오다 노부나가)", "울지 않는 새는 울도록 만들어라(도요토미 히데요시)", "울지 않는 새는 울 때까지 기다려라(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세가지 메시지에 심취했었다. 오늘날 일본인들의 피 속에 흐르는 3대 정신세계의 본류라고 할 수 있는 명언들이다.

결과적으로, JP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울지 않는 새는 울도록 만든다”는 메시지를 필생의 각오로 삼았다. 일각에선 JP를 두고 ‘지조 없는 정치인’, ‘이익만 되면 적과도 손을 잡는 처세의 달인’,‘살아남기 위해 이리 붙고, 저리 붙는 기회주의자’라고 혹평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울지 않는 새는 울도록 만든다“는 각오는 단순한 처세를 넘어, 생사를 건 치열한 도전정신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다.

젊은 시절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부인 박영옥 여사의 모습. 생전 김 전 총리는 두번의 국무총리 역임으로 국립현충원에 묻힐 수 있지만 사랑하는 아내가 누워있는 양지 바른 고향 땅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생전 유언에 따라 국립현충원이 아닌 고향 부여에 묻히게 된다. [사진=뉴스핌DB]

JP, 저승에서 만날 YS “씰~데 없는 소리에 뭐라 답할지..

JP의 한 측근은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JP가 한 일은 JP만이 알 것”이라고 했다.

스스로 선택한 자기의 길을 걸었고 원 없이 인생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는데, 혹평과 호평은 JP에게 큰 의미가 아닐 것이라는 전언이었다.

JP는 지난달 중앙일보와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2층 침실에 누운 채 “밤하늘의 유성, 조세핀, 불란서의 영광스런 군대...”라는 말을 전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자신의 운명이 유성처럼 떨어질 것을 예감했을 것이고,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평생의 반려자였던 부인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JP 인생을 바꾼 5.16 시절을 회상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JP는 마지막 인터뷰에서 특유의 쇳소리로 “벌써 한달째 내 입이 밥을 초청하지를 않아~”라는 유머도 남겼다.

신선하다 못해 놀라운 발상이다.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 속에서도 얼마나 해학적이며, 주체적인 발언인가. 과연 평생을 한국사회 정점에서 보낸 남자 다운 말이다.

정치권에선 JP를 ‘만년 2인자’로 평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보다 오래 ‘2인자’의 자리에 있었던 정치인은 없었다. 그만큼 오래 정치권력을 쥐고 정치권을 움직였다는 얘기다.

한 측근에 따르면 JP는 평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지세이(유언)'를 유심히 새겼다. “인생의 모든 영화가 새벽 이슬보다 짧구나.”

숙명의 정치 라이벌이었던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2001년 2월 자신의 서도전에서 ‘영광(榮光)’이란 글씨를 JP에게 보여주며 “영광의 시간은 짧았고 고뇌와 고통의 시간은 길었다는 뜻에서 쓴 글”이라고 말했다.

JP의 비서관을 지낸 한 인사는 “이 말을 듣고, 권력도 한순간이고 분노와 원망도 결국 세월과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런 말을 자주 했다”고 회상했다.

JP는 서로 화합하고 통합하는 것이 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측근들에게 말했다. 앞서 YS는 죽음을 앞두고 병상에서 붓을 들어 ‘화합’과 ‘통합’이란 글을 썼다. 이에 보폭을 맞추듯 JP는 “자신을 비롯해 우리 정치인들이 미흡하기 짝이 없다”고 국민들 앞에 깊이 머리를 숙였다.

저승에서 3김이 다시 만나면 재미있는 대화들이 많을 것 같다.

가장 늦게 찾아간 JP가 영국의 명재상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금언(金言)을 인용, “인생이 너무 짧다오. 시시하게 굴면 안되지~”라고 하면, 칼칼한 목소리의 YS가 “씰~데 없는 소리, 닮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카더니, 오기는 왔구만”이라고 받아치지 않을까.

그 시대, 진정으로 뜨거워질 수 있는 장소는 정치 밖에 없었다는 JP. 저승에선 '3김' 아닌 '김씨 삼형제'로 재미있게 지내시길... "삼가 머리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jh34@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트럼프 100일 승부] 뉴욕증시 '경고음' [서울=뉴스핌] 이홍규 기자 = 최근 미국 금융시장에서 금리와 주가가 함께 요동치는 상황은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집권 2년 차였던 2018년을 상기시킨다. 당시 뉴욕증시의 가격 부담은 높아져 있었다. 미국의 강한 경제가 되레 금리 우려를 부추겨 증시를 압박하던 차에 트럼프발 무역전쟁이 가세했다. 결국 그해 가을 S&P500 지수는 20%나 떨어져 약세장에 진입했다. [글싣는 순서] 트럼프 100일의 승부1. 규제 대못 뺀다…AI·자율주행·은행업 '더 쉽고 빠르게'2. 압도적 격차를 향한 전격전...MAGA 휘날리며3. 우크라 전쟁 100일 만에 끝내고 북미 대화 실마리4. 에너지 패권을 향해 '드릴, 베이비 드릴'5. 만능 치트키 관세...역대급 중국 압박6. 뉴욕증시 지진계 '경고음 요란'...2018년의 기억7. 증시 불확실성 MAGA 수혜주로 돌파..끝판왕은8. 관세와 달러, 복잡한 함수 관계9. 높아지는 미국의 만리장성...反이민 장애물도 산적 현재 뉴욕증시 여건과 시장이 직면한 위험은 당시와 닮았다. 시장에서 2018년을 반추하며 올해 뉴욕증시도 유사한 길을 걷지 않을까 하는 우려섞인 관측이 대두하는 이유다.특히 2018년 급락장에 앞서 출현한 충격파의 전조가 이번에도 포착되고 있다. 그 지진계의 수치가 이례적인 수준으로 치솟아 불안감은 더 크다. 바로 '블랙스완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스큐지수다. 1. 3주 전 신호 스큐지수는 S&P500의 극단적인 하락 가능성에 대한 옵션시장의 우려를 보여주는 지표다. 개략적으로 말하면 주가 폭락에 대비한 풋옵션 수요가 높을수록 그 값은 올라간다.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 시나리오에서만 가치가 있는, 그래서 당장은 가치가 없어 싼값에 거래되는, 즉 '외가격 풋옵션'이 높은 가격에 사들여진 결과다. 외가격 중에서도 가치의 무의미함이 큰 풋옵션 수요가 클수록 상승한다. 평소에는 헐값에 팔렸던 우산이 폭풍우가 예상되자 비싸져도 수요가 생기는 현상과 비슷한 셈이다. *스큐지수는 단순히 OTM 풋옵션뿐 아니라 OTM 콜옵션도 산출 대상에 포함된다. 구체적으로는 양자의 프리미엄 시세를 역산해 산출한 내재변동성이라는 개념을 통해서다. 다만 실제 산출 과정에서는 OTM 풋옵션의 내재변동성의 비중이 더 크다. 급격한 시세 변동을 염두에 둔 헤지 상품의 수요는 가파른 가격 상승을 기대한 콜옵션보다 가파른 하락에 대비하려는 풋옵션에 집중되기 떄문이다. 따라서 산출 과정에서 자연스레 OTM 풋옵션의 내재변동성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통상 스큐지수는 100~135 사이에서 변동한다. 135를 넘어서게 되면 옵션시장 참가자들이 급격한 하락 가능성에 대해 종전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고 150이 넘어가면 극단적인 하락 가능성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 스큐지수는 154다. 지금부터 3주 전인 지난달 24일에는 180으로 솟구쳤다. 두 달 전부터 수위를 높이더니 급기야 180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썼다. 지금은 이때보다 낮아졌지만 추세의 층위는 과거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형성돼 있다. 옵션시장 참가자들이 들어 올린 '가드'의 높이가 한층 더 올라갔다는 얘기다. 스큐지수의 수치에 내재된 '극단적인 폭락' 가능성은 대략 30일 내 실현을 상정한다. 스큐지수를 산출하는 데 사용되는 옵션의 잔존만기 대부분이 30일 안팎이기 때문이다. 예로 잔존만기가 20일인 근월물과 48일인 차근월물이 있다면 관련 만기의 옵션에 내재된 변동성(옵션의 프리미엄 시세를 역산해 산출)을 소위 보간하는 방법을 통해 30일치를 구한다. 그렇다면 현재 옵션시장에서는 2월 중순 안에 폭락장이 올 것으로 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말 그렇게 될까. 2. 2018년의 잔상 2018년 여름이 앞을 내다볼 수 있는 거울이 될지도 모른다. 2018년을 문두에 꺼낸 것은 당시와 현재 상황이 유사해서다. 2018년은 올해와 마찬가지로 전년도 주가 상승률이 19%가 넘어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였던 해의 이듬해다. 트럼프의 법인세 감면이나 규제 완화책, 인프라 투자 확대책을 반영한 결과다. 트럼프의 고율관세 공약은 '엄포' 정도로만 생각했다. 이듬해 경제도 좋았다.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정책금리 인상과 시장금리 상승 우려가 부담됐지만 강한 경제가 버텨주리라는 믿음이 더 컸다. 전형적으로 '우선 먹고 배아픈 건 나중에 생각하자'는 식의 장세였다. 2018년 스큐지수는 꾸역꾸역 고도롤 높여갔다. 당해 3월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 안보상의 이유로 철강·알루미늄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한 것을 시작으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수위를 끌어올리며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였다. 2018년 3월 하순 120이 채 안 됐던 스큐지수는 7월 150을 넘어서더니 8월 16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한 달 뒤 급격한 시세 하락을 예상한 스큐지수의 경고는 적중했다. 9월 2900선을 기록했던 S&P500은 11월 2600대까지 하락해 10% 떨어졌고, 그 뒤 하락세를 재개해 12월 2300선까지 추가 하락했다. 석 달 만에 20%가 무너졌다. *S&P500은 2018년 1~2월 당시 10% 떨어져 조정 국면에 진입한 적이 있다. 주가 하락의 발단은 고용통계 호조에 따른 장기금리 상승과 연준의 정책금리 인상 우려였다. 다만 그 떄 주가 하락은 빠른 시차를 두고 격렬하게 전개됐는데 그 배경에는 당시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던 변동성 하락 베팅 관련 상품(크레디트스위스의 VIX 선물 가격 역추종 상품<XIV>)가격이 붕괴해 시세 변동성을 증폭시킨 일이 있었다. 소위 '볼마게돈'으로 불리는 일이다. 공교롭게도 당시에도 스큐지수는 한 달 전 135를 넘어 시세 하락을 예고했었다. 3. 진짜 '오싹'할 떄는 스큐지수의 경보음이 격렬해지는 순간은 그 수치가 오히려 지금처럼 하락할 때다. 주가 하락이 시작하면 스큐지수 산출 대상에 있던 외가격 풋옵션 비중이 자연스레 작아져 스큐지수의 값은 하락한다. 흔히 '공포지수'로 알려진 VIX는 주가가 떨어져야 그제서야 반응한다. VIX는 주로 ATM(등가격) 부근 옵션의 프리미엄 시세를 바탕으로 산출되기 떄문에 이미 멀찍이 있던 외가격에서 경보음을 낸 스큐지수보다 한발 늦다. ATM 옵션은 현재 주가와 행사가격이 '거의 같은'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당장 옵션시장의 주가 상승과 하락에 대한 '양방향 베팅' 상황을 보여준다. 스큐지수가 건물의 '화재감지기'라면 VIX는 화재가 난 뒤에 내부 온도를 보여주는 '온도계'와 같은 셈이다. '스큐지수의 하락→S&P500의 급락+VIX 급등'의 순서는 2018년 8월의 급락장에서도 동일하게 실현됐다. 최근 스큐지수가 최고치를 찍고 하락한 것은 주식시장이 이 패턴을 따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VIX는 스큐지수가 최고치를 찍었던 지난달 24일 14를 기록했다가 현재 19.5로 올라선 상태다. 아직은 주식시장의 높은 변동성을 예고한다는 '20'을 넘어선 단계는 아니지만 방향성 자체가 위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S&P500도 지난달 6일 사상 최고가에서 4% 떨어지는 등 상기의 연쇄 흐름에 동참한 모습이 역력하다. 물론 스큐지수가 과거의 폭락장이나 거친 시세 흐름을 항상 예견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준의 정책금리 인하 지연 우려와 시장금리의 급등, 위안화 약세, 주식시장의 높은 밸류에이션, 조만간 출범하게 될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의 관세 염려 등 주가 하락을 시사하는 퍼즐들이 짜맞춰지고 있다는 점에서 급격한 시세 변동 위험이 현실화될 개연성을 높인다. 특히 위안화 약세의 파급력은 2015년 갑작스러운 평가절하나 2018년 중반 급격한 약세, 2019년 '7위안 돌파' 등의 사례를 통해서 목도한 바 있다. 옵션시장의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닐 수 있음을 뒷받침하는 재료들이다. 4. 실질금리의 중력장 1월 중순에 진입한 현재는 불안감이 들불처럼 번지기 쉬운 시기라는 점에서 스큐지수 경고에 담긴 의미를 배가시킨다. 과거 통계상 계절적으로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구간의 초입이다. 페퍼스톤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3년까지 VIX 추이를 월별로 평균해 연중 추이로 그려본 결과 1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연초에는 기관투자자가 새로운 투자 전략을 실행하거나 기존 포지션을 조정하고, 또 관련 기간에는 기업의 결산 보고가 맞물려 있어 시세가 각종 재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위험자산군의 시세를 주무르다시피하는 '실질금리'가 뜀박질을 재개한 점은 계절성의 현실화 가능성에 무게를 더한다. 미국 물가연동국채 10년물 금리로 본 실질금리는 지난달 초순 1.89%에서 중순 2.25%로 급히 올라섰다가 이달 초 숨고르기를 거친 뒤 최근 7일여만에 2.32%로 '레벨업'했다. 지난달 초순부터보자면 한 달 만에 43bp가 오른 셈이다. 통상 장기국채의 명목 금리가 오른다고 해도 대게 인플레 전망을 반영해 상승한 결과여서 실질금리 상승폭은 상쇄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실질금리 변동성이 작은 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 달 만에 43bp라는 상승폭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마이클 하트넷 전략가의 표현을 빌려쓰자면 최근의 금융시장 상황은 '터너(전환점)' 임박을 시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앞서 하트넷 전략가는 실질금리 2.5%를 주시해야 할 지점으로 꼽은 적이 있는데 2.5%에 도달하면 금융시장의 위험자산 회피 성향이 더 강해질 것으로 봤다. 2.5%는 2023년 10월 하순에 기록한 최근 10년 기준 전 고점에 해당한다. 당시 실질금리는 같은 해 7월 1.48%에서 2.5%까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같은 기간 S&P500의 시세를 10% 떨어뜨린 배경이 됐다. 하트넷 전략가에 따르면 현재 실질금리는 이미 지난달 중순부터 2%대로 올라섰음에도 불구하고 종전까지 주식시장의 시세가 어느 정도 방어가 됐던 것은 '강한 경제 펀더멘털이 실질금리 상승의 부정적 영향을 상쇄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종전의 고점을 넘어서는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하면 내성 역할을 해왔던 투자자들의 믿음에 균열이 가해질 수 있다고 봤다. 스큐지수의 급등과 급락이라는 전조가 보여준 경고는 실질금리 2.5% 돌파와 함께 현실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bernard0202@newspim.com 2025-01-13 14:12
사진
"엔비디아 주요 고객, 블랙웰 주문 연기" [뉴욕=뉴스핌] 김민정 특파원 = 엔비디아의 주요 고객사들이 최신 인공지능(AI) 칩인 '블랙웰(Blackwell)'의 주문을 연기하고 있다고 13일(현지시간) 정보기술(IT) 전문 매체 디 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이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아마존닷컴의 클라우드 부문, 알파벳의 구글, 메타플랫폼스 등 소위 하이퍼 스케일러 기업들은 엔비디아 블랙웰 GB200 랙의 일부 주문을 줄였다. 하이퍼 스케일러는 대규모 클라우드 컴퓨팅 및 데이터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인포메이션은 이들 기업이 100억 달러어치의 블랙웰 랙을 주문했다고 전했다. 블랙웰 [사진=블룸버그] 이들 기업이 블랙웰 주문을 연기하는 것은 출고 초기 발견된 과열과 작은 결함 때문으로 알려졌다. 인포메이션은 일부 고객사들이 차후 버전을 기다리거나 엔비디아의 기존 AI 칩 구매를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시설에 최소 5만 개의 블랙웰 칩을 탑재한 AI 가속기 GB200을 설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주문 지연이 발생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요 협력사인 오픈AI는 엔비디아의 기존 세대 칩인 '후퍼(Hooper)'를 탑재한 가속기를 제공해줄 것을 요구했다. 블랙웰은 엔비디아의 향후 실적과 관련해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된 제품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1월 4분기 블랙웰 매출이 기존 목표치를 초과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날 엔비디아의 주가는 약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동부 시간 오전 10시 54분 엔비디아는 전장보다 2.69% 내린 132.25달러를 가리켰다. mj72284@newspim.com 2025-01-14 00:58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