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한 대안 없어...유연근로제 도입 검토 중
어쏘변호사 매달 평균 20건 서면 작성 야근
대표변호사 사건 수임 계약, 자문 활동 야근
[서울=뉴스핌] 이정용 기자 ="납품기일 맞추려면 밤 새야죠" 국내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 A씨(33)의 말이다. 제조업 현장에서 나올 법한 납품기일이 법조계에서는 재판부에 제출하는 서면작성기일과 같은 말로 통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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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변호사나 시니어 파트너변호사들이 요구하는 서면 작성은 대부분 퇴근 시간 이후에 업무다. 로펌 채용 경력 7년 미만의 '어쏘변호사'들은 한달 평균 10건에서 30건의 서면을 작성한다.
일반적인 직장인의 근무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들의 일정 대부분은 재판이나 의뢰인 상담, 보고서 작성 등이다. 다음날 새벽 1~2시까지 일을 하고 오전 7시에 출근하는 생활 패턴이 반복된다.
A씨는 "저녁식사 후 서면 작성하는 게 주중 일과"라고 말했다. 그야말로 '칼퇴근'과 '워라밸(일과 삶의 조화)은 꿈꾸기 어려운 현실이다.
300인 이상 상시근로자를 보유한 대형 로펌들이 하반기부터 도입되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자구책 마련에 분주하지만,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20일 대한변호사협회(변협)에 따르면 300인 이상 변호사를 보유한 로펌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 광장, 태평양, 세종 등 4곳으로 다음달부터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적용 대상 사업장이다.
여기에 사무장 등 직원을 포함하면 300인 이상 상시근로자를 보유한 로펌 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로펌들은 자체 TF를 구성해 변호사 등 전문가 및 직원들의 근무형태에 따라 재량근로시간제와 탄력근로시간제 등 다양한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A 로펌 관계자는 "7월부터 시행이 되면 어느정도 가이드라인이 잡히지 않겠냐"며 "다른 로펌들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B 로펌 관계자는 "일방적으로 단축근무에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며 "사측과 구성원 간 논의기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변호사의 업무량과 직결되는 사건 수임 건수가 매달 일정치 않은데다, 의뢰인과 통화상담 시간도 퇴근 이후가 빈번하다. 대표변호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사건 수임 계약과 자문 활동 등이 대부분 퇴근 이후에 이뤄진다.
근로 시간이 초과할 경우, 기존 근로수당의 1.5배의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해야한다. 당장 줄어든 근무시간 만큼 변호사를 충원해 사건을 분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법조계 반응이다.
단축근무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일하는 시간에 비례해 급여도 일정부분 줄어들수 밖에 없다. 재판 결과에 따라 급여를 차등으로 지급 받는 이들은 개별 사업자와 가깝다.
정부 방침에 부합하는 근로시간 단축이 변호사들과 같은 전문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변호사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검사와 판사도 사건 기록 등을 업무 시간 외에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펌에 채용된 변호사들도 이 같은 업계의 현실을 알고 근로 계약을 체결했다는 점에서 향후 시행이 제대로 이뤄질 지도 주목된다.
대한변호사협회에도 이들을 위한 대안책을 제시하고 있진 않다. 서범석 변협 수석대변인은 “현재까지 단축시간과 관련해서 의견은 없다”고 말했다.
0479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