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사회 서울시

속보

더보기

[여기!서울] 도심 속 다섯 섬, 숨은 사연 들어보세요

기사입력 : 2018년06월11일 14:50

최종수정 : 2019년03월14일 14:32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서울의 섬, 여의도·밤섬·노들섬·서래섬·선유도 등 5개
철새도래지부터 정치·경제 중심지까지 각양각색

[서울=뉴스핌] 글·사진·영상 박진범 기자 = [여기!서울]은 1000만 시민의 도시 서울 곳곳의 명소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핫플레이스는 물론, 미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공간을 만나보세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한강 둔치를 신나게 달리다 곁눈질로 슬쩍 봤던 섬들. 서울에 남아 있는 다섯 개의 섬은 저마다 재밌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양화대교를 건너다 본 작고 예쁜 섬 선유도

선유도는 축구장 15개 정도 크기(11만400㎡)의 섬이다. 행정구역은 영등포구 양화동. 조선시대에는 섬이 아니라 육지에 붙은 봉우리였는데 ‘신선이 놀던 산’이란 뜻으로 선유봉이라 불렸다. 1741년 화가 겸재 정선이 이곳을 배경으로 진경산수화를 남겼을 정도로 절경을 자랑했다.

선유도는 약 80년간 아픔을 겪었다. 1925년 일제가 홍수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암석을 채취해 섬 전체가 크게 훼손됐다. 1965년 양화대교가 섬을 통과해 건설됐고 1978년에는 선유정수장이 세워지면서 아름답던 옛 모습을 대부분 잃게 됐다.

섬이 명소로 다시 태어난 것은 2002년이다. 서울시는 164억원을 들여 쓸모를 다한 정수시설을 재활용, 생태 및 수생 공원으로 만들고 물을 주제로 식물원과 정화원을 만들었다.

현재 선유도에 조성된 한강공원은 연인들이 손을 맞잡고 거닐고, 한강과 어우러진 풍경을 즐기는 데이트 코스가 됐다. 바람 따라 흔들리는 선유교에서 바라보는 섬과 강의 조화가 일품이다.

밤섬 [사진=박진범 기자]

◆도심 속 철새의 땅 밤섬

여의도에서 서강대교로 진입하면 양 옆으로 녹색 습지가 펼쳐진다. 인적 없이 고요한 가운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 들린다. 주변에는 빌딩과 아파트가 무성하지만 이 곳만은 한적하다. 도심 속 섬에서 비롯되는 묘한 부조화는 영화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밤섬은 밤알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부터 해방 후까지는 ‘율도’로 불린 이곳은 원래 사람이 살던 곳이다. 고려시대에는 귀양지였고 조선시대에는 희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군락을 이루며 살았다. 섬이 꽤 커 주민도 많았다.

밤섬도 아픈 기억을 지니고 있다. 1968년 여의도가 개발되면서 한강 흐름을 방해한다고 ‘폭파’ 당했다. 이때 섬 내 주민들을 모두 이주시켜 무인도가 됐다.

시간이 흐르며 밤섬은 퇴적 작용을 거쳐 서서히 원래 몸집을 회복했다. 오히려 지금 면적(24만1000㎡)이 폭파 당시보다 넓다. 사람이 떠난 자리는 철새가 대신했다. 야생조류 49종을 포함, 세계적으로 희귀한 물새도 날아들어 2012년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다. 현재는 사람의 접근이 금지됐고, 차량으로 서강대교를 지날 때 경적을 울려서도 안 된다.

서래섬 [사진=박진범 기자]

◆유채꽃·일몰 명소 서래섬·노들섬부터 정치금융 일번지 여의도까지

서래섬은 반포대교와 동작대교 사이에 있는 3만3000㎡의 아담한 섬이다. 15분이면 전체를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작다. 1980년대 올림픽대로와 한강을 종합개발하면서 조성된 인공섬으로 매년 5월 유채꽃 축제가 열린다. 이 때를 맞춰 방문하면 노란색으로 물든 장관을 즐길 수 있다.

노들섬은 면적 11만9855㎡의 인공섬이다. 원래 모래벌판이었는데 일제 강점기 이촌동에서 노량진까지 철제 인도교를 건설하면서 주변 모래를 쌓아 만들었다. 조선 시대에는 ‘사촌’, 즉 모래밭 마을로 불렸으며 이 곳에서 바라 본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현재 여의도 불꽃놀이 관람의 명소다.

지금은 서울의 랜드마크가 된 여의도는 한 때 보잘 것 없는 모래땅이었다. 한강 범람원으로 형성돼 면적이 8.4㎢에 이른다. 잉화도(仍火島), 나의도(羅衣島), 여의도(汝矣島) 등으로 불렸는데 모두 넓은 섬이란 뜻이다. ‘나의 섬’ ‘너의 섬’ 등 말장난이 발단이 돼 여의도가 됐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여의도는 원래 농사에 쓸모가 없는 땅이었다. 그러나 현재 천지개벽 수준으로 발전했다. 1970년 마포대교, 1980년 원효대교가 개통되면서 개발이 가속화됐고, 정치·경제·금융 중심지로 발돋움했다. 

◆잠실도와 저자도..사라진 서울의 섬들
서울에는 과거 잠실도, 난지도, 저자도 등 다른 섬도 있었다. 지금은 육지로 연결되거나 한강 개발 과정에서 섬 토사가 사용되며 자취를 감췄다. 명칭 때문에 흔히 섬인 줄 착각하는 뚝섬은 섬이 아니다. 큰 깃발을 뜻하는 ‘독(纛)기’서 유래해 독도→똑섬→뚝섬이 됐다.

강 위에 ‘떠다니는’ 세빛섬도 있다. 면적 9995㎡의 인공섬이다. 혈세를 퍼부었다는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영화의 단골 촬영지 및 시민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서울은 아니지만 한강 하류의 백마섬(김포)은 군사지역으로 남북 대치를 실감케하는 곳이다. 지난 2013년 43년 만에 민간에 딱 하루 개방된 바 있다.

beom@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변상문의 화랑담배] 제2회 광복군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 가릉호텔에서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창설식이었다. 미국 한인 동포들이 보내온 돈 4만원으로 조직한 군대였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20억 원 정도 된다.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 참모장 이범석 장군, 제1지대장 이준식, 제2지대장 고운기, 제3지대장 김학규, 제5지대장에 나월환을 임명했다. 지대장은 지금의 사단장에 해당한다. 모두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를 비롯하여 남북 만주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에 직접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군 출신이었다. 한국광복군 훈련반 제1기 졸업사진. [사진= 독립기념관]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포고문을 통해 "국내외 동포들에게 알립니다. 1940년 9월 17일부로 대한민국 광복군을 창설하였습니다. 광복군은 1907년 8월 1일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한 날이 바로 광복군 창설일임을 선언합니다. 광복군은 구 한국군의 후신으로 33년간에 걸친 의병과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을 계승한 전통 무장 조직입니다"라고 했다. 대한제국 국군-의병-독립군의 군맥(軍脈)과 군혼(軍魂)을 분명하게 잇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부대 편성은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여단, 사단 6단으로 편성하였다. 총 3개 사단을 조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인원이 적은 상황에서 우선 지대를 만들고, 각 지대를 구대와 분대로 연계한 전투부대를 구성했다. 임시정부에서 1940년 9월 19일 중국 국민당 정부에 통보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직원 명단'에 의하면, 부대 규모가 총사령부와 4개 단위부대, 여기에다 조선혁명군 부대까지 포함하여 5000여 명이었다. 임시정부에서는 1941년 12월 연합국의 일원으로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1942년에는 미국 측에 "미국이 제주도를 해방 시켜 주면,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제주도로 옮긴 후, 광복군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 상륙작전을 전개하겠다."라고 제안하였다. 이 제안은 실제로 미국 OSS 부대(지금의 CIA)와 1945년 4월부터 8월까지 강도 높은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주요 훈련은 3개월 기간에 고공낙하, 암살법(권총에 특수장치를 하여 소리 없이 암살하는 방법), 통신(암호의 작성 및 해독법, 무전기 조작 및 수리), 교란 행동, 정보수집, 폭파 등 이었다. 일과는 07:00∼12:00 오전 훈련, 13:00∼18:00 오후 훈련, 19:00∼22:00 야간 훈련이었다. 주요 임무는 대한민국으로 낙하산과 잠수함으로 침투하여 미 공군 공습에 필요한 지형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일본군 군사시설 탐지 및 파괴 지하 유격대를 조직하여 연합군 상륙작전 시 제2선에서 연결하는 작전이었다. 마침내 1945년 8월 7일 모든 훈련을 마치고 국내진공작전 출정식을 개최했다. 개시일은 8월 10일이었다. 출정식 때 장준하 경기도 공작 반장은 "나는 조국광복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나의 죽음을 지불하면, 내 능력껏 그 대가가 조국을 위해서 결제될 것입니다. 나의 각오는 한 장의 정수표입니다. 발생인은 장준하, 결제인은 조국입니다"라는 유서까지 작성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5-09-08 08:00
사진
'포스트 이시바' 누구?...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 [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직 사임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정국의 관심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로 쏠리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곧 총리직을 맡는 일본 정치 구조상 이번 총재 선거는 사실상 다음 총리를 뽑는 절차다. 자민당은 조만간 새로운 총재 선거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지난 2024년 9월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경합했던 주요 인사들이 다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정국 운영이 소수 여당이라는 제약 속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차기 총재가 야당과 어떻게 연대할지, 어떤 연립 구도를 짤지가 최대 쟁점으로 꼽힌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농림수산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고이즈미·다카이치 선두권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지난달 29~3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다카이치가 23%, 고이즈미가 22%를 기록했다. 나란히 1, 2위다. 자민당 지지층으로 한정하면 고이즈미가 32%로, 다카이치(17%)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카이치는 2024년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에게 역전패했다. 고이즈미 역시 의원 표에서 선두에 올랐지만 당원 표에서 밀리며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당내 기반과 대중적 인지도를 겸비해 차기 선거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주자들이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1981년생(44세)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다. 2009년 중의원 첫 당선 이후 줄곧 '포스트 아베',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았다. 환경상, 농림수산상을 거쳤으며 개혁 성향과 젊은 이미지로 지지층을 넓혔다. 2024년 총선에서 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농림수산상으로 복귀해 쌀 유통 개혁 등 농정 개혁에 매진했다. 대중적 인지도와 '고이즈미 브랜드'라는 정치 자산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1961년생(64세)으로 보수 강경파로 분류되는 여성 정치인이다. 2021년 총재 선거에 첫 도전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3위를 기록했다. 2024년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의원 72표, 당원 109표)를 얻었으나 결선에서 이시바 총리에게 역전 당했다. 유일한 여성 후보로서 '보수의 아이콘'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아베 전 총리와 가까웠던 의원 그룹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이시바 정권에서 당직 제안을 거절하며 독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포스트 이시바' 후보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일본 경제안보담당상 [사진=로이터 뉴스핌] ◆ 하야시·모테기 등 잠룡도 주목 고이즈미와 다카이치 두 선두 주자 외에 잠룡들의 행보도 주목된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옛 기시다파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시바 정권의 2인자로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모테기 도시미쓰 전 간사장은 당내 경험과 풍부한 인맥을 강점으로 삼고, 아소 다로 전 부총리와 교류를 통해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5선 의원으로, 동기 의원들과 옛 니카이파의 지원을 받으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 총재 선거 이후에도 정국 '안갯속'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표와 당원·당우 표를 합산하는 방식이 원칙이지만, 긴급 시에는 국회의원과 지방 지부 대표만 투표하는 '양원 의원 총회' 방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경우 의원 표의 비중이 커져 파벌 역학이 중요해진다. 차기 총재가 선출되더라도 곧바로 정권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헌법상 총리는 국회에서 지명되는데, 자민·공명 양당은 현재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을 잃은 상태다. 따라서 야당이 단일 후보를 세워 결집할 경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지명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민당 총재가 총리에 오르더라도, 예산안·세제 개혁 법안 등 국정 운영은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차기 총재는 곧바로 '연립 확대'나 '정책 연대'를 추진할 수밖에 없고, 총재 선거 과정에서도 어떤 야당과 손을 잡을지가 핵심 화두가 된다. 결국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단순히 차기 지도자를 뽑는 절차를 넘어, 일본 정치가 다당제 속에서 어떤 연립 구도를 구축할지 시험대가 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goldendog@newspim.com 2025-09-08 09:26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기사제목
기사가 번역된 내용입니다.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