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재판으로 이미 性범죄자 '낙인'
미투 '가십화' 피로감↑...사회적 약자 소외 우려
[서울=뉴스핌] 김범준 기자 =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안경태(가명·24)씨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은근히 피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 이상한 생각에 한 선배에게 이유를 묻자 "너 성추행했다며, 소문 다 났어"라는 충격적인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아보니 군대 가기 전 잠시 '썸'을 탔던 한 여자후배가 안씨를 지칭해 "만남을 강요하고 원치 않은 스킨십을 했다"는 대자보를 교내 게시판에 내걸며 '미투(#Me Too)'를 했던 것.
자보는 금방 자진 철거됐지만, 몇명 안 되는 학과 특성상 이 둘을 알던 사이라면 누구든 쉽게 유추 가능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안씨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서로 좋은 감정을 갖고 잠시 만남을 이어갔던 것이지 일반적인 상식선 이상의 행동과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안씨는 너무 억울한 마음에 따져보려고도 했지만, 상대방은 이미 대화와 만남의 여지조차 차단해버린 상태다. 더 접근하면 '스토킹'으로 몰릴 것 같아서 포기했다고 한다. 안씨는 명예훼손으로 법적 대응을 진지하게 고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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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현직 여검사의 '용기 있는 고백'을 시작으로 '미투의 불길'이 사회 각계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가짜 미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안씨의 사례처럼 진위 여부 파악이 어려운데도 '망신주기식' 일방적인 폭로도 무분별하게 이어지면서 미투 운동의 순수성과 본질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도 따른다.
지난 2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미투운동이 일부에 의해 그저 돈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등 심각하게 변질되고 있다"면서 '무고죄 특별법'(양예원법) 제정을 요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양예원(24·여)씨는 3년 전 한 스튜디오에서 모델 촬영 당시 성추행 및 노출사진 강제 의혹을 두고 경찰 조사를 받으며 관계자들과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해당 청원은 4일 만에 13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수사당국도 '미투 바람'에 따라 평소보다 성범죄 관련 수사를 확대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내 한 경찰 관계자는 "명백한 강간·추행이 아닌, 남녀사이 연애의 감정이 수반되는 경우 수사와 판단이 참 애매하다"면서 "시점이 오래 돼 정황 증거도 거의 없는 경우 특히 더 난감하다"고 말했다.
이어 "미투 움직임 전에는 (성범죄 관련 수사기록이) 하루 두어 건 정도가 올라왔다고 하면, 요즘은 많을 때 열 건도 넘는 경우가 있다"면서 "혐의가 있으면 경찰뿐만 아니라 검찰과 법관 등 여러 기관을 거치며 다양한 판단을 받도록 하는 게 오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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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하게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재판을 통해 오명을 씻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짧게는 수 개월에서 길게는 수 년 간 지속되는 재판 과정에서 채 유무죄가 갈리기도 전에 이미 '성범죄자'로 낙인찍혀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직장인 고모(31·여)씨는 "미투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그걸 넘어 남녀 간 지나친 성대결과 원색적 비난으로 번지는 분위기는 옳지 않다"며 "여러 곳에서 '누가 그랬네, 아니네'하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 오히려 그(미투) 뉴스 나오면 거르게 된다. 'wear-out'(지나친 반복으로 관심은 줄고 피로감·거부감이 느는 현상)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신업 변호사(전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는 "미투 열풍 현상에는 '명암'이 있다"면서 "일반 대중들뿐만 아니라 수사기관과 미디어까지 정치인·유명인 위주로 관심이 쏠리다보니, 비정규직이나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은 그만큼 소외받고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언론과 여론을 통해 우선 해결하고자 하는 태도는 상대방의 인권을 침해할 위험이 크다"며 "법치주의 안에서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성숙된 자세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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