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미전실' 해체 주역 김상조 공정위원장 "컨트롤타워 필요" 주장
기업 조직 개편은 기업에 맡겨야…정부 개입할 사안 아니야
[서울=뉴스핌] 백진엽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기존 미래전략실과 다른 새로운 그룹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 최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주장이다. 지금과 같은 체제로는 삼성그룹을 제대로 관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지난 2016년까지는 그룹에 미래전략실이라는 컨트롤타워가 있었다. 각 계열사들의 개별 사안이 아닌 그룹 전체와 연관된 현안들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2016년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이 부회장이 해체하기로 약속하면서 2017년 문을 닫았다. 대신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을 중심으로 전자, 비전자, 금융 등 계열사별로 소그룹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이번 주장은 이같은 소그룹 체제로는 한계가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삼성그룹에 대해 지배구조 개편을 비롯해 요구하거나 논의해야 할 사안이 많은데, 미전실의 부재로 카운터파트너가 없어진 것에 따른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에 대해서는 그룹 안팎에서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다. 하지만 이를 떠나 김 위원장의 이번 주장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일단 김 위원장은 미전실 해제의 주역이다. 그는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삼성그룹의 의사결정은 각 계열사의 이사회가 아닌 미전실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안다"며 "미전실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래서 무리한 판단을 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불법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덧붙였다.
공정위원장 취임 전에도 삼성그룹의 미전실에 대해 '대주주의 이익을 대변하고 대관창구를 하면서 금력 등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구태의연한 조직”이라며 강하게 비판해 왔다. 이런 논리를 청문회에서도 일관되게 강조했고, 여기에 국회의원들의 강요에 의해 삼성은 자의반타의반으로 미전실을 해체했다.
그러던 김 위원장이 하루 아침에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공정위원장으로 지내면서 삼성에 카운터파트너가 없다는 불편함을 체감했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본인이 시민단체 등에 있을 때는 마치 미전실 등 그룹들의 컨트롤타워를 온갖 악행의 온상처럼 여기다가, 기업들과 상대해야 하는 공정위원장으로 지내보더니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며 "소위 인터넷에서 자주 사용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더 큰 문제는 기업이나 그룹의 조직이나 인사 등에 대해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기업의 조직 개편은 해당 기업의 필요에 따라 이사회에서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이사회와 주주의 역할을 중요시해왔던 김 위원장이 기업의 조직 변경 문제에 간섭하고 나선 것이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이 현 정부 전체의 기업에 대한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재계에서는 현 정부가 '이사회의 역할'에 대해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사회 위에 정부가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크다. 얼마전 야권에서 제기된 "현 정부가 삼성을 국유화하려 하고 있다"는 주장도 비슷한 우려에서 나온 의혹이다.
기업의 체제 개편은 앞서 말했듯이 기업의 필요에 따라야 한다. 미전실을 부활하든 다른 컨트롤타워를 만들든, 현재 체제로 가든 선택은 삼성과 이사회 등에 맡겨야 한다. 공정위원장은 물론 정부의 어느 누구도 감놓아라 배놓아라 할 사안도 아니고 해서도 안된다. 정부가 기업을 입맛에 맞게 재단하려는 순간, 과거의 구태가 반복되면서 대한민국의 시장경제는 다시 흔들리게 된다.
jinebit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