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정태 유통부동산 담당 에디터 = 최근 문재인 정부 1년을 돌아보는 언론의 평가가 이어졌다. 정치, 사회, 경제 등 여러 분야 가운데 부동산 문제는 단연 단골 메뉴로 다뤄졌다. 국민들의 피부로 와 닿는 주된 경제 관심사이자, 정권의 성패를 가늠 짓는 첫 잣대라는 점 때문이다.
대체적 평가는 이렇다. 강남 재건축 발(發) 집값 급등이 수도권 전반으로 확산되자, 정부가 여섯 차례에 걸친 강력한 대출 및 재건축 규제 대책을 발표하면서 악전고투 끝에 집값을 잡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뤘다. 그도 그럴 것이 문재인 정부는 과거 노무현 정부 때 경험한 부동산 정책의 실기(失期)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듯 신속하고도 단호한 정책 의지를 보였다.
실제 고강도 규제에도 급등세를 계속 보이던 집값이 4월 이후 보합세로 돌아섰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 1분기까지 내내 오름세를 보였던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집값의 상승세가 크게 둔화됐다.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 집값은 5월 첫째 주 기준으로 5주 연속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집값 과열의 진원지인 재건축 시장은 지난해 9월 이후 4월 말 기점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최근 들어 집값만 놓고 볼 때 정부 정책은 뒤늦게라도 약발이 어느 정도 먹힌 듯하다. 갭투자로 인한 투기성 가수요를 걷어내고, 고분양가에 대한 간접적 규제를 통해 분양가 안정을 꾀하려 했다는 점은 평가 받을 만하다. 여기에 다주택자들의 양도세 중과를 시행하면서 주택 수를 줄이도록 하거나 임대사업자등록을 유도해 과세 기준의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 집값 안정? 수급 불균형 · 지역 양극화 키우고 있다
하지만 불안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첫째, 쏠림현상이다. ‘로또 아파트’의 양산이 대표적이다. 분양가를 규제하니 시세차익이 예상되는 아파트에는 수백 대 일의 청약 과열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별공급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일명 ‘금수저 논란’도 그렇고, 미계약분을 노린 떴다방이 활개를 치고 있는 부작용도 만만찮다. 특정 지역 아파트의 청약 과열은 입주 이후 또 다른 투기판으로 번질 공산이 크다.
둘째, ‘거래절벽’이다. 다주택자들에 대한 양도세 중과 시행 이후 거래량이 급감하고 있다. 4월 한 달 동안 부동산 거래량은 전달보다 절반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시 4월 아파트 거래량은 6307건으로 3월 거래량(1만3892건)에 비해 54%(7585건) 줄었다. 이 같은 거래절벽 현상은 강남4구에서 두드러졌다. 강남구의 경우는 75%, 서초구 역시 69% 급감했다. 정부의 연이은 압박에 다주택자들의 선택은 두 갈래로 엇갈렸다고 볼 수 있다. 일부 다주택자들은 양도세 중과를 회피하기 위해 보유 물량을 내놨다. 이들 매도물량이 3월까지 일시적으로 쏟아지면서 거래량이 급증한 것이다. 반면 버티기에 나선 다주택자의 매물이 잠기자 매수자들도 관망세로 돌아섰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일시적 조정 장세를 거칠 것이란 전망도 있지만 대세 하락이 시작됐다고 내다보다는 이도 있다. 이른바 ‘10년 주기설’이 그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폭락은 IMF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라는 ‘불가항력적’ 악재가 자리했다. 그 같은 대내외적 정치적·경제적 충격의 변수가 아니고서는 현재의 펀더멘털을 감안할 때 믿을 만한 근거는 못 된다.
다만, 집값은 거래량이 감소하면 가격하락으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 현상이다. 거래절벽 현상이 장기화된다면 시장의 위축은 불가피하며 조정도 그만큼 길어질 것이다. 문제는 집값 안정이란 측면에선 불안 요소다. 정부의 규제 일변도 정책이 수급의 불균형을 야기하고 지역별로 가속화시킬 수 있어서다. 이게 세 번째의 이유다.
◆ 규제 일변도 정책은 '똘똘한 한채' 학습효과 악순환…시장 수급 원리도 살펴야
주택 공급은 서울과 부산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는 넘치고 차올랐다. 지방은 이미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다. 수도권 역시 ‘입주 폭탄’이 현실화되면서 ‘역전세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올해에만 전국에서 44만여 가구의 아파트 입주물량이 쏟아진다. 2008년 이후 10년 만에 역대 최대 물량이다. 특히 경기도의 경우 16만가구가 넘는 입주물량이 들어선다. 전년보다 28% 늘어 역대 최대 기록이다. 자가 이주 수요 외에 입주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전세 수요가 얼마나 될지, 네 번째의 불안 요소다.
전세난도 문제지만 역전세난의 후유증 역시 만만치 않다. 집주인들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고스란히 세입자의 피해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갭투자 광풍의 후폭풍이 조만간 닥쳐 올 공산이 크다. 신규 분양이 순조롭게 됐어도, 중도금 대출을 떠 앉은 채 세입자도 구하지 못하고 잔금을 치르지 못한 미(未)입주 가구가 급증할 가능성이다. 가계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잔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건설사들도 자금경색에 시달리는 등 가계와 기업 중심의 부실이 내수 경기의 침체로 확대될 수 있다.
결국 내수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규제를 풀어 달라는 시장의 빗발치는 요구에 못 이겨 또 다시 정부가 꽁꽁 묶어놨던 재건축 규제를 푼다면... 이는 양극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강남 수요를 억누른 결과가 반복되는 셈이다. ‘똘똘한 한 채’의 학습효과를 이미 겪었지 않았나.
정부는 갖가지 재건축 규제를 통해 사실상 공급을 제한했다. 여기에 진입하고자 하는 실수요조차 차단하고 있다. ‘투기 수요’라고 아예 규정을 지어버렸다. 정부 스스로 재건축 아파트의 희소성을 부추기는 꼴이다. 돈이 된다는 투기 수요의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할 뿐이다. 강남 등 부동산 시장 과열을 우려해 무작정 규제만 할 것이 아니라 공급 측면도 고민해야 한다. 그동안 강남을 대체한다며 신도시를 조성했지만 대체가 됐냐는 물음에는 의문 부호가 붙는다. 갈수록 ‘직주근접’의 수요는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특히 입지 여건이 좋은 신축 실수요는 강남 뿐 만 아니라 서울 곳곳에 대기하고 있는 실수요는 존재한다.
◆ 시장 상황 변동없이 실수요를 위한 정책을 펴려면
일단 정부가 추진 중인 주거복지 로드맵과 도시재생 로드맵은 안착돼야 한다.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맞춤형 공급 계획과 구도심의 주거환경 개선 및 인프라 확충은 차질 없이 진행돼야 할 것이다. 그래야 서울 도심의 안정적 공급의 기대가 시장의 안정화로 연결될 수 있다.
내달에는 보유세를 강화하는 골자로 하는 부동산 세제대책이 예고돼 있다. 다주택자 아닌 1주택자라도 고가(高價)주택일 경우 과세 부담이 높아진다는 게 요지다. 세제 개편과 함께 재건축 시장에도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 특히 초과이익환수제 시행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사유재산 침해 논란을 야기하며 재건축 단지들의 위헌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이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재건축 추진(추진위 설립 승인일 기준) 공시가격이 아파트 준공 당시 공시가격보다 높으면 조합원이 발생이익의 최고 50%를 내는 구조다. 부담금이 첫 적용된 반포현대아파트가 ‘부담금 폭탄’으로 현실화된 게 그런 경우다.
문제는 공시가격의 실거래가 반영률이 60~70%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미래 미실현 이익에 대한 부담금을 물리는 것은 보유세를 현실화 하는 마당에 과세 형평성 또는 이중 과세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세제개편이 이뤄지면 그 불만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안전진단 강화는 사실상 재건축 아파트 공급의 족쇄가 되고 있다. 재건축 사업은 시장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속성이 있지만 이를 정부가 강남을 타깃으로 ‘원천 봉쇄’함으로써 비(非) 강남권 재건축 추진 아파트 단지들이 상대적 박탈감도 커지고 있다.
그래서 ‘재건축 로드맵’도 필요하다.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도시재생 뉴딜 정책도 중요하지만 주거 환경이 좋은 지역의 공급도 시장의 요구에 의해 적절히 진행될 수 있는 로드맵이 제시돼야 한다. 주거복지, 과세 그리고 주거의 질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공급 등 이 삼박자가 고루 갖춰져야 한다는 얘기다. '시장 상황이 변해도 실수요 위한 정책을 지키겠다'는 국토교통부의 다짐이 다음 정권에서도 지켜지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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