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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의 住食 이야기] 핵(核)보다 '미세먼지 포비아'

기사입력 : 2018년04월18일 10:38

최종수정 : 2018년04월19일 09:28

먹고 사는 문제는 우리 인생의 영원한 화두입니다. 상장된 기업들이 관련 뉴스에 따라 그날 그날 주가의 등락을 보이듯이 부동산과 유통의 부침은 내수 경기의 지표입니다. 우리 경제 생활에 미치는 시장의 흐름과 정부 정책을 어떻게 볼 것인지 에디터의 시각으로 톺아보고자 합니다.

[서울=뉴스핌] 김정태 유통부동산 담당 에디터= 봄이다. 4월 초 여의도 윤중로에는 어김없이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여느 때면 벚꽃놀이 인파에 여의도가 들썩였을 시기였지만 예전만 못하다. 장기화되는 저성장 효과 때문일까? 그보다는 미세먼지의 기승에 가까운 바깥 나들이 조차 몸을 움츠리게 한다. 출근길의 여의도 풍경 역시 달라졌다. 겨우내 두꺼운 패딩 점퍼 차림의 직장인들의 옷차림은 봄옷으로 바뀌었지만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되는 모습이다.

 최근 몇 년간 봄이면 찾아오는 황사 보다 미세먼지가 대한민국의 하늘을 뒤덮었다. 미세먼지는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초미세립자의 발암물질이라고 하나 뿌연 하늘일 정도로 심했고, 이런 날이 다반사였다. 심지어 지난달 26일은 송파구청 인근 송파대로에서도 우리나라 최고층 빌딩이 사라지는(?) 최악의 미세먼지 공습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공포감에 휩싸였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이날 서울은 2015년 관측 이래 역대 최악의 미세먼지 농도를 기록했다. 올 들어선 미세먼지 ‘나쁨’ 수준이 2~3일에 한번 꼴로 나타났다. 그나마 미세먼지를 씻겨 줄 수 있는 비 예보가 행락 철에 되레 반가울 뿐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의미가 이제 최악의 대기 환경을 뜻하는 어구로 표현될지도 모르겠다.

 

◆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수년간 반복되는 미세먼지 공포는 생활의 변화와 함께 유통가(街)와 산업에도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미세먼지 예보가 내려지는 날이면 자동 ‘외출 자제령’이다. 쇼핑과 외식 나가기가 꺼려진다. 그나마 주차시설이 잘 돼 있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그렇다 치더라도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인사동, 남대문 등과 같은 거리를 거닐며 즐길 엄두가 안 난다. 가뜩이나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인데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는다는 게 상인들의 원망 가까운 푸념이다.

대신 집에서 시켜먹는 배달음식은 주문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 최근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가 치킨값이 아닌 배달료를 일괄 올렸다는 사실 자체를 두고 뭐라 지적하기 어렵다. 지난해 치킨값을 올리려다 여론의 지탄을 받고 되돌리는 상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최근 배달앱 업체의 실적도 눈에 띈다.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90% 성장하고 영업이익도 8배 가까이 급증했다는 결과를 ‘미세먼지’의 영향도 있다고 하면 무리한 해석일까.

쇼핑 역시 온라인쇼핑이 대세다. 특히 모바일의 성장세는 무섭다. 통계청에 따르면 온라인쇼핑(PC+모바일) 시장규모는 지난해 80조 원대를 돌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19년에는 100조 원대를 예상하고 있다. 매년 20%씩 고속 성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물론 규제 강화와 중국 사드보복 여파가 실적 부진의 주된 이유지만 이제 중국 발(發) 미세먼지가 유통산업의 변화를 가속화 시킬지 모른다.

실제 유통 대기업이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복합몰과 대형 식품관 투자에 집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근교에 나가 자연의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점차 사라진다면 차라리 실내 공기의 질이 잘 관리되는 공간에서 여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할 것이다.

야외 스포츠 경기도 미세먼지로 인해 취소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6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국이 프로야구 세 곳에서 열릴 경기를 취소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37년 만에 초유의 일이라고 한다. 마치 황폐화되는 지구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해 외계 행성을 찾는 과정을 그린 미래공상(SF) 영화 ‘인터스텔라’가 연상된다. 야구 경기를 관람하던 관중들이 황사와 미세먼지 폭풍에 쫓기 듯 허겁지겁 대피하는 이 영화의 한 장면이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미세먼지로 인해 관중이 줄어든다면 조만간 야구 경기도 아예 실내 스포츠로 전환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달 26일 송파구청 인근 송파대로의 모습. 서울과 근교에서 보이던123층 롯데월드타워가 이날 최악의 미세먼지 때문에 인근에서도 형체를 볼수 없었다.

◆ 산업의 명암

 무엇보다 미세먼지 영향으로 시장 규모가 급속히 커지고 있는 산업은 생활 가전이다. 건강을 위한 ‘헬스 케어’에서 ‘미세먼지 가전’으로 세분화되는 양상이다. 공기청정기는 이미 필수가 됐다. 애초 공기청정기 제품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봄철이면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 때문이었다. 정작 특수를 누리게 된 것은 미세먼지의 공포가 현실화되면서다. 호흡기뿐만 아니라 암 과 알츠하이머 유발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 앞에 지푸라기라도 찾고 싶은 데 따른 생존 본능의 구매욕이 왕성한 소비력으로 발전했다. 집안 각 방마다 들여 놓은 것뿐만 아니라 공적 예산으로 이제 학교 등 교육시설에도 공기청정기를 설치할 것이란 보도는 씁쓸할 뿐이다. 여기에 세탁건조기와 의류 건조기 제품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이젠 집안 환기는 되레 독이 되고, 밖에 빨래를 널 수 없는 환경이 됐다는 반증이다.

내수 시장은 ‘미세먼지 포비아(phobia)’를 활용하거나 이에 대응 할 수 있는 제품이 마케팅의 주된 관심사가 됐다. 미세먼지를 걸러 줄 수 있다고 홍보하는 의료기기는 물론 화장품, 건강식품들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고 있다. 전기차와 수소차 등 친환경 자동차로의 전환은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 매캐한 공기와 뿌연 하늘이 뒤덮여 있는 한국을 잠시 떠나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가 있는 해외로 떠나라는 여행사들의 해외여행 유혹이 더 거세질 것이다. 이제 아파트도 숲으로 둘러싸인 ‘숲세권 아파트’가 높은 프리미엄을 받는 시대라는 전단문구를 받아 들게 됐다. 주식시장에서도 미세먼지에 대응 할 수 있는 제품과 의약품 그리고 신재생 에너지가 주된 테마를 이루고 있다.

미세먼지에 대응하려는 내수 시장과 산업의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변화가 가속화 될수록 전기 소모량도 많아지게 된다. 그만큼 전기를 일으킬 발전소를 필요로 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탈(脫) 원전을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석탄소비량이 OECD 국가 중 2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명의 이기(利器)로 미세먼지에서 탈피하려 하지만 더 많은 전기 소비에 값싼 에너지를 얻기 위해 공해 물질을 더 많이 배출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될지 모른다.

 

◆ 전쟁보다 '미세먼지 포비아'…‘환경 이민’ 엑소더스 가속화되나

 문제의 심각성은 대한민국의 경제활동 주축인 30, 40대들의 삶의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어린 아이를 두고 있는 부모들이 미세먼지 때문에 직장을 관두고 이민을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포털 커뮤니티 게시판에선 실제 이민을 결행한다는 글이 부지기수로 올라오고 있다. ‘환경 이민’이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핵 문제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이민이나 해외로 떠나겠다는 얘기는 들은 적은 없다. 전쟁보다 미세먼지의 공포를 느끼는 30, 40대들이 내 나라, 내 생활 터전을 버리고 떠나겠다고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은 국가경쟁력의 약화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

전적으로 국가의 책임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하는 아우성이 빗발치고 있는데도 정부가 내놓은 조치들은 근시안적이라고 지적 할 수밖에 없다.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 민간사업장의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확대 그리고 미세먼지 다량 배출 석탄발전소 감축 등인데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대책이다. 이런 대책들이 민간을 강제할, 지자체의 참여를 이끌어낼 만한 실효성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

미세먼지 문제가 국내 원인을 해결한다고 해소된다고 공감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고농도 미세먼지 주범은 공장, 석탄화력발전소 등이 밀집한 중국 동해안 지대 오염물질 때문이란 지적에 대해 정부가 ‘팩트 체크’를 외면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국회에서도 40여건이나 되는 법안을 발의했다고 하나 단 한건도 통과된 법안을 보지 못했다. 정부의 ‘허술한 대책’만을 질타만 할 게 아니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입법기관이라면 최우선의 민생법안 앞에 여야가 따로 있을까.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중국과의 외교적, 환경적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고 실행 하는 데는 단기적으로는 난망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수년간 국민들이 최악의 대기 환경 악화로 건강권에 심각한 침해를 받고 고통을 받고 있다는 점을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세먼지는 이제 사회적 문제를 넘어서 국가적 문제로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만큼 미세먼지 문제도 그런 자세로 임해야 한다.

dbman7@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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