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선시 현대엔지니어링 지분 활용 주목
사업영역 상당부분 겹쳐 합병시 강도높은 구조조정 불가피
[서울=뉴스핌] 이동훈 기자 =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계열사인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간 합병설이 다시금 불거지자 현대가(家) 건설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실제 합병이 이뤄지면 상당한 규모의 인적 구조조정이 이뤄질 전망이라서다.
애초 현대엔지니어링은 플랜트 설계에 특화한 기업이었다. 하지만 주택사업으로 사업을 확장하자 두 회사 간 업무영역이 상당 부분 겹치고 있다. 해외시장에서도 지분을 나눠 수주하는 경우가 많아 인력을 감원할 여지가 많다는 게 건설업계의 관측이다.
1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의 합병을 결정하면 조직·인력 구조조정이 강도 높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의 업무 영역이 겹치는데 따른 것. 우선 현대건설의 관계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은 해외시장에서 화공·전력 설계, 용역을 주력 사업으로 했다. 지난 2016년 전체 매출액 중 42.2%를 차지했다. 그런데 작년에는 이 비중이 39.3%로 줄었다. 반면 국내 주택사업이 활발해졌다. 현대건설과 같은 ‘힐스테이트’ 브랜드를 사용하며 매출을 끌어올렸다. 2016년 전체 매출액의 24.7%에 불과했던 건축·주택부문 비중은 작년에는 38.0%로 급증했다.
주택사업 규모를 키우자 현대건설은 종합 건설사, 현대엔지니어링은 해외 플랜트 설계에 주력하는 애초 사업적 경계선이 옅어졌다. 매출 구조도 비슷해지고 있다. 특히 현대엔지니어링이 '종합건설사화(化)'하고 있는 것. 이렇다 보니 합병이 이뤄질 경우 구조조정이 뒤따를 것이란 관측이 많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현대차그룹 공사와 플랜트 설계에 집중하던 현대엔지니어링이 국내 주택사업으로 영역을 넓히자 현대건설과의 사업적 경계가 모호해졌다”며 “주택 정비사업을 중심으로 국내 주택사업의 발주가 줄어들 전망이어서 합병 시 상당한 인력 구조조정이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내부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합병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측면에 있어서다. 두 회사의 직원수는 총 1만2000명이 넘는다. 건설사 최대 규모다. 연간 매출액이 57% 많은 삼성물산(9422명) 보다 직원수가 3000여명 많아진다.
현대차그룹이 아직 합병에 관련한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았지만 두 회사 합병설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는 그룹의 후계 구도와도 관련이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발표하자 정의선 부회장이 자금줄 역할을 할 기업을 어떻게 운영할지 주목됐다.
비상장 회사 중 활용도가 가장 높은 계열사는 현대엔지니어링이 꼽힌다. 현대엔지니어링의 대주주는 현대건설(38.62%)이다. 정의선 부회장(11.72%)은 개인 최대주주이자 2대 주주다. 현대글로비스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도 주요 주주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분 4.68%를 갖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은 인수한 직후부터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글로비스와 함께 정의선 부회장의 최대 자금줄로 평가됐다. 현대엔지니어링이 그룹 공사와 해외사업으로 덩치를 키운 만큼 현대건설과 합병하면 정의선 부회장의 지분 가치가 크게 높아진다. 상장 주식을 더 빨리 현금화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기업공개도 한 방법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장외 시가총액은 5조4000억원 규모다. 기업공개가 이뤄지면 정 부회장은 6330억원을 손에 쥘 수 있다. 최근 기업 성장세를 고려할 때 시가총액 10조원대 진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 정 부회장의 지분 가치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다만 합병이나 기업공개가 당장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현대건설의 소액 주주들이 합병에 부정적인 의견이 많고 오너 일가의 이익을 위해 기업을 활용했단 사회적 시선도 부담이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기업공개 및 합병이 거론되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으로 검토된 사항이 없다”며 “이런 부분이 현실화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leed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