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글로벌

속보

더보기

일본, 연호 둘러싼 특종 경쟁…부담감에 '셀프 낙종'도

기사입력 : 2018년03월07일 14:05

최종수정 : 2018년03월07일 14:05

모두가 궁금해하는 신연호…언론사에겐 취재력 증명의 장
담당 기자들, 직접 중국 고서 뒤져보며 후보안 마련하기도

[뉴스핌=김은빈 기자] 연호에는 시대가 담긴다. 적어도 연호를 사용하는 지역에서는 그렇다. 중국 전한 무제가 최초로 연호(건원·建元)를 사용한 것도 황제로서 자신은 영토뿐만 아니라 시간까지도 지배한다는 사실을 과시하려 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덴노(天皇·일왕)도 일본에서는 한 시대의 상징으로 통한다. 쇼와, 헤이세이 등등 연호로 시간을 세는 일본에선 공문서를 비롯해 일상 곳곳에 연호가 스며들어있다.

연호가 바뀔 때마다 일본 내의 관심도 비상하다. 정부는 발표 전까지 새 연호가 누설되지 않도록 극비 중의 '극비' 취급을 한다. 물론 알리는 게 일인 언론에겐 특종 중의 '특종'감이다.

1989년 1월 7일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당시 관방장관이 헤이세이(平成)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NHK 화면 캡처>

◆ '극비 중의 극비'…오보에 '셀프 낙종'도

7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연호를 둘러싼 일본 언론의 취재 경쟁은 오래 전부터 치열했다. 모두가 관심을 갖는 사안인 만큼 영향력이 큰 데다, 철옹성같은 궁내청과 정부를 뚫고 정보를 얻어내야 해 언론사의 취재력을 증명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다이쇼(大正·1912~1926)는 아사히신문의 신인기자였던 오가타 다케토라(緒方竹虎)가 최조 보도했었다. 쇼와(昭和·1926~1989)는 지지통신이 특종을 했다.

영향력이 큰 만큼 오보를 했을 때 충격도 크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분(光文)사건'이다.

1926년 12월 25일 다이쇼 덴노 서거 직후, 도쿄니치니치신문(현 마이니치신문)은 "새 연호는 '고분(光文)으로 결정"이라고 호외를 냈지만, 이후 궁내청이 "새 연호는 쇼와(昭和)"라고 발표한 것이다. 대형 오보사건에 도쿄니치니치신문사 사장은 사임을 표명했다. 이후엔 편집국 주간이 사임을 했다.

고분 오보 사건의 영향은 63년이 지난 1989년 헤이세이 연호 발표에까지 이어졌다.  

당시 마이니치신문은 과거의 치욕을 설욕하겠다는 의지로 연호특종팀을 가동했다. 그리고 마이니치 연호특별취재팀은 발표 전에 새로운 연호가 '平成(헤이세이)'라는 정보를 고위 관계자로부터 어렵게 입수했다. 정치팀은 서둘러 석간 준비를 완료했다. 인쇄기만 돌리면 특종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망령'이 발목을 잡았다. 마이니치신문 편집국 회의에서 의견이 둘로 나뉘었다. 담당 데스크는 "이번에도 고분사건처럼 오보일 수 있다"며 크로스체크를 요구했다. 반면 정치팀장은 "'헤이세이'가 유출됐다는 걸 알게되면 정부가 바꿀 수도 있으니 크로스체크는 위험하다"라고 맞섰다. 

크로스체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에도 근거가 있었다. 고분사건 이후 30년이 지난 1956년, 당시 궁내청 편찬국 편찬관보였던 나카지마 리이치로(中島利一郎)가 방송에 출연해 "원래 다음 연호는 고분으로 하려했지만, 발표하기도 전에 언론에 유출이 돼버려 쇼와로 바꿨다"고 말했던 것이다. 

한번 더 체크하자는 입장과 보도해야한다는 입장이 맞서는 사이 시간은 흘렀다. 결국 '헤이세이'는 정부의 발표로 세상에 알려졌다. 마이니치신문은 '셀프 낙종(특종에 실패)'한 셈이 됐다.

◆ 사서오경 뒤져보고 직접 리스트 작성까지

신문사는 연호 발표시기가 가까워졌다고 느끼면 저마다 연호특별팀을 꾸린다. 

헤이세이(1989년~)의 경우 아사히신문은 1987년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당시 담당기자 중 한 명이었던 우에키 치카코(植木千可子)는 중국의 고서 '사서오경'을 펼쳐가며 약 100여개의 연호 후보를 추렸다. 그 안에는 헤이세이(平成)도 있었다.

당시 아사히 신문의 관방장관 담당기자였던 호시 히로시(星浩)는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당시 관방장관의 사택을 방문해 우에키 기자가 작성한 리스트를 보여주면서 취재를 시도했다. 오부치 장관은 당시엔 적당히 얼버무렸지만 '헤이세이'가 발표된 뒤엔 "솔직히 그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전담 기자들은 연호 후보를 고안한 것으로 여겨지는 인물들에게도 접근해 밀착취재를 진행한다. 우에키 기자의 경우 우노 세이치(宇野精一) 도쿄대 명예교수가 고안자라고 짐작해 출장에 동행하거나, 함께 바둑을 두면서 취재를 거듭했다. 헤이세이가 발표되던 당일엔 우노 교수의 자택에서 함께 신연호 발표를 라디오로 함께 듣기도 했다.

우에키 기자의 감은 정확해 우노 교수는 실제 연호 후보안을 제출한 당사자 중 한명이었다. 다만 우노 교수가 제출한 안은 헤이세이가 아니라, 최종 후보 3개 안에 올랐던 세이카(正化)였다.

우에키 기자는 "헤이세이 발표는 현행 헌법 하에서 처음으로 바뀌는 연호였기 때문에 의미가 남달랐다"고 회고한다. 

내년 4월 30일 아키히토(明仁) 덴노는 퇴위를 하고, 헤이세이(平成) 시대도 31년으로 막을 내린다. 나루히토(徳仁) 황태자가 즉위하면 이에 맞는 새 연호가 시작된다. 언론사들은 이번에도 저마다 연호 취재팀을 가동하며 '특종 경쟁'에 나서고 있다.

"국가의 '극비'와 취재의 '터부'를 가능한 한 줄이는 건 국민의 알 권리 확대와도 연결됩니다. 연호 취재의 의의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우에키 기자의 한마디가 여운을 남기는 이유다.  

  

[뉴스핌Newspim] 김은빈 기자 (kebjun@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김영훈 고용부 장관 후보자는 누구? [세종=뉴스핌] 양가희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로 임명했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23일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발표했다. 김 후보자는 1968년 부산에서 태어나 마산중앙고, 동아대를 졸업해 성공회대 NGO대학원에서 정치정책학(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사진=대통령실] 2025.06.23 sheep@newspim.com 김 후보자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2017년 정의당에 입당,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동본부장을 맡았다. 2021년에는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 대통령의 노동부문 지지단체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노동광장'에 공동대표로 참여한 바 있다. 지난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연합에서 비례대표 20번을 받았다. 현재 한국철도공사 기관사이자 부산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 비서실장은 "민주노총 위원장을 역임하며 노동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인물"이라며 "산업재해 축소, 노란봉투법 개정, 주4.5일제 등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 정부 관계자는 김 후보자에 대해 "합리적이다"라며 "민주노총이 그간 (사회적 대화 등) 제도권 밖에 있었다. 이를 계기로 제도권으로 들어오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프로필 ▲1968년 부산 출생 ▲마산중앙고, 동아대, 성공회대 NGO대학원 정치정책학 석사 ▲정의당 노동본부장 ▲민주노총 위원장 ▲철도노조 위원장 ▲철도공사 기관사 ▲부산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sheep@newspim.com 2025-06-23 14:57
사진
안규백 64년 만에 문민 국방 후보자 [서울=뉴스핌] 김종원 국방안보전문기자 = 국군 최고통수권자인 이재명 대통령은 23일 초대 국방부 장관에 민간인 출신인 안규백(64) 더불어민주당 5선 중진 의원을 인선했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이날 "안 후보자가 국회 국방위원회 간사와 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의 대부분을 국회 국방위에서 활동했다"면서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고 64년 만에 문민 국방장관으로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 [사진=대통령실] 안 후보자는 집권 여당인 민주당에서 국방위원장을 비롯해 국방위원으로서 15년 간 의정활동을 했다. 그 누구보다 군과 국방안보를 잘 아는 인물로 그동안 역대 정부에서도 꾸준히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으로 유력하게 거명됐었다. 특히 안 후보자는 국회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위원장 중책까지 맡았다. 여야 의원들을 아우르며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는 평가다. 이번 대선에서도 민주당 중앙선대위 총괄특보단장 핵심 보직을 맡았다. 계엄 사태 주역인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립하면서 어수선한 군을 안정적으로 이끌면서 군 전반을 개혁할 최적임자로 꼽힌다. 합리적인 성품에 남의 말을 귀담아듣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인물이다. 다만 상식과 원칙을 중시하며 불법적이고 정의롭지 않은 일에는 불같이 화를 내는 성격이다. 아들 둘 모두 육군과 해병대에서 현역으로 군 복무를 했다.  안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이재명정부의 초대 국방장관으로 취임하면 1961년 현석호 장관 이후 64년 만에 군인이 아닌 민간인 출신 국방장관이 된다.  한국 정치사의 격동기를 거쳐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장군 출신들이 독식했던 국방장관을 정치 안정기에 들어 사실상 민간인 출신의 진정한 '문민 국방장관'이 나올 수 있을지 초미 관심사다. ▲전북 고창(64) ▲광주 서석고 ▲성균관대 철학과 학사·무역대학원 무역학 석사 수료 ▲18·19·20·21·22대 국회의원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간사 ▲국회 '내란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 kjw8619@newspim.com 2025-06-23 14:13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