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일자리 볼모로 정부에 강도높은 협상 압박
정확한 실사 거친후 구조조정과 지원책 결정 필요
[뉴스핌=황남준 논설실장] 철수설이 끊이지 않던 한국GM이 13일 전격적으로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내렸다. 5월말까지 군산공장을 폐쇄하고 직원 2천명도 일시에 정리한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현 정부에 파격적인 금융 및 재정 지원 등을 요구하며 배수진을 친 것이다. 시한도 보름밖에 남지 않은 2월말이다.
황남준 논설실장 |
GM은 정부 지원 카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주력인 부평, 창원공장까지 폐쇄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초강경수를 띠웠다. 이번 조치가 그야말로 기업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정상적인 구조조정의 일환인지 아니면 한국시장에서 완전 철수를 위한 명분 쌓기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일자리를 볼모로 정부와 강도 높은 숨막히는 협상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GM측은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하면서 한국 정부에 2월말까지 신규 대출과 산업은행을 통한 5000억원 가량의 유상증자 참여를 포함한 금융 및 재정 지원을 요구했다.
◆ 한국GM 시장 실패와 곶감 빼먹기식 '이전 가격' 논란
금융계에서는 한국GM의 적자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1조9456억원, 지난해 8000억원 이상의 손실이 예상돼 누적적자가 3조원을 넘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국GM은 이미 자본잠식 상태로 금융기관 차입이 불가능하다. 한국GM 측은 정부 지원이 없으면 군산공장 폐쇄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고 부평, 창원공장 등으로 악영향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GM은 한국시장에서 이미 영업력이 약화돼 시장 실패에 따른 경연난을 겪어 왔다. 여기에 GM 본사가 한국GM의 경영 악화에 ‘이전 가격’ 등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운영자금을 높은 이자에 빌려주며 고금리 돈 장사를 했고, 부품을 비싸게 팔고 완성차를 싸게 공급받는 ‘이전가격’ 논란도 가세하고 있다. GM은 금융계의 한국GM 경영실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융권은 한국GM감사보고서 분석결과 로열티, 이자, 연구개발비 등 모두 2조3000억원이 넘는 돈을 GM본사에 지급했다고 보고 있다. GM이 한국에 투자한 9252억원의 2배를 훨씬 넘는 금액이다. 여기에 한국GM이 GM에 지급한 로열티가 2조원 이상으로 추정돼 GM 본사는 모두 3조원 이상을 한국에서 벌어들였다는 분석이다.
또 GM이 한국GM에 재료 부품을 공급할 때 비싸게 팔고 한국GM의 완성차는 저렴하게 공급받는 등의 방법으로 원가 비중을 높여 본사의 이익을 챙겼다는 주장도 있다. 그 결과 매출액대비 매출원가 비중이 경쟁사보다 무려 10% 가량 높은 93%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 미국발 한국 철수 여론몰이, 남북정상회담, 지방선거 앞두고 초강경 압박 모드
GM의 최고경영자인 메리 바라는 구조조정 전문가로 유명하다. 침몰하는 GM을 위기에서 구해낸 장본인이다. 유럽 사업 철수, 호주·인도네시아 공장 철수 등 굵직굵직한 결정은 내린 그는 한국시장 철수를 일찌감치 결정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GM은 글로벌 신차 배정을 위한 중요한 갈림길에 있다"며 "GM이 다음 단계에 대한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2월 말까지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내야만 한다"고 언급했다. 한국 GM이 글로벌 신차 배정을 받지 못하면 자력 생존은 힘들어진다. 한국시장 철수는 다음 수순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의 지원 대책 발표 시한까지 못 박고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있는 셈이다.
댄 암만 GM 사장은 12일(현지시간) "GM이 한국 공장에 투자할지는 한국 정부의 자금 조달 의지와 인센티브 제공, 노조의 임금 삭감 동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ㆍ노동조합과의 협상 결과를 바탕으로 수주 내에 나머지 영업장들의 미래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GM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환호하고 나섰다. 그는 13일(현지시간) “GM이 한국GM 군산공장을 폐지하고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 돌아온다"고 말하고 이를 자신의 업적으로 돌렸다.
한국GM측은 미국보다 논조가 덜 강경하지만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데는 결코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GM 측은 "정부, 노조, 주주 등에게 한국 사업을 유지하고 경영을 정상화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제시했다"며 "이를 위해서는 모든 당사자들의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GM의 이번 기습적인 군산공장 폐쇄 발표와 정부의 고강도 지원책 요구는 일자리 마련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현 정부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놓고 미국과 긴밀한 입장 조율을 하고 있는 마당에 나왔다는 점에서 초강경 압박 모드로 해석된다.
◆ 경영위기 남의 일 아니다.. 제2 GM, 다른 업종도 예외없다
한국GM의 위기는 다른 국내 자동차 회사에도 예외 일수 없다. 문제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글로벌 경쟁에서 국내 자동차 산업 전체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마당에 고비용·저효율 구조는 이미 체질화됐고 개선될 기미가 없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1996년이후 20년 넘게 국내에 공장을 세우지 않았다. 국내 완성차업체의 1인당 평균 연봉은 2016년 기준 9213만원에 이른다. 일본 도요타가 9104만원, 독일 폴크스바겐이 8040만원에 불과하다.
반면 생산성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1인당 연간 자동차 생산량은 도요타 93대, 폴크스바겐 57대인데 현대차는 31대에 그쳤다.
위기 징후가 자동차 기업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현재 구조조정 중인 대우조선 대우건설 금호타이어 등은 물론 전자 등 잘나가는 업종의 기업들 조차 강건너 불 구경할수 없는 처지이다. 한국제조업은 저비용 고효율 흐름을 타지 못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내 자동차 산업이 구조조정에 소프트랜딩할수 있게 사려깊고 치밀한 정책을 제시하길 바란다. 물론 무조건적인 퍼주기식 구조조정 지원책은 곤란하다. 정확한 실사 작업을 거쳐 합리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 한국GM의 사업 구조조정과 철수는 동전의 양면일수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매각이라는 변수가 양자를 연결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코 별개의 사안이 아니다. 서민경제와 산업에 미치는 측면에서 한국GM 구조조정 대책 마련은 중차대한 사안이다. 우선 서민과 지역경제를 위한 안정대책이 우선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뉴스핌 Newspim] 황남준 논설실장 (wnj77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