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빅4'만 가상계좌 계약…다른 거래소 암담
금융당국 "민간의 문제...은행을 설득할 일"
[뉴스핌=강필성 기자] 금융당국이 오는 30일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가상화폐 거래소는 은행에서 실명 확인을 투자자와 함께 해야한다. 하지만 '빅4'로 꼽히는 가상화폐 거래소를 제외한 중소 거래소는 은행의 협력을 받지 못해 문을 닫아야할 처지에 놓였다.
현재 실명확인 입·출금 시스템을 도입한 6대 은행(신한, NH농협, IBK기업, KB국민, KEB하나, 광주은행)은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4대 거래소와만 가상계좌 공급 계약을 맺고 있다. 이 외에 다른 모든 거래소는 은행과 계약을 맺지 않아 실명확인 입·출금 시스템을 적용할 수 없다. 이에 중소 거래소들은 사실상 금융당국이 은행을 통해 퇴출을 유도하고 있다고 보고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24일 가상화폐 업계에 따르면 국내 중소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정부의 ‘가상통화 특별대책’에 대해 집단 반발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대책이 사실상 중소 거래소에 대한 사망 선고에 가깝다고 보고 때문이다.
이들이 가장 반발하는 대목은 바로 ‘실명확인 입·출금 시스템 도입’이다. 좀 더 정확히는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이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가상화폐 거래소가 실명확인 입·출금 시스템을 도입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은행의 자체 판단에 따라 일방적으로 법인계좌를 폐쇄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전날 브리핑에서 “사실상 법인계좌를 갖고 영업하는 거래소는 법인계좌를 유지하기 앞으로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중구 빗썸 광화문 고객상담 센터 앞에서 시민들이 가상화폐 시세를 확인하고 있다. /이형석 기자 leehs@ |
문제는 은행이 4대 가상화폐 거래소 외의 중소 거래소에 대해 실명확인 입·출금 시스템 공급을 꺼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은행에게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자금세탁 감시의무를 지운 탓이다. 신규회원에 대한 가상화폐 계좌도 발급을 꺼려하는 상황에 더 이상 계약 가상화폐 거래소를 늘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은행권의 속내다.
은행권 관계자는 “최근 가상화폐 투기에 대한 이상 과열에 대한 정부의 우려가 적지 않은 상황이라 4대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해서도 신규 가입자에 대한 가상계좌 발급을 보류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중소 가상화폐 거래소는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시중은행과 실명확인 입·출금 시스템 도입을 준비하면서 내·외부, 해당 은행의 실사까지 받았는데 이번 발표 전후로 갑자기 은행에서 중단의사를 밝혔다”며 “이건 4대 거래소 외에는 모두 말라 죽으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들은 4대 거래소만 은행과 계약을 맺게 된 것이 오로지 회원이 많기 때문이라는 점이라고 꼽고 있다. 이들 대형 거래소 일부가 집단소송에 휘말리거나 범죄혐의 관련 수사를 받고 있음에도 은행과 계약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의 방침은 이해하지만 적어도 4대 거래소와 같은 기준으로 정당하게 실사를 받고 계약 여부를 선택할 수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중소 거래소라고 하더라도 회원수가 100만명이 넘는데 규모만으로 4대 은행으로 제한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측은 어디까지나 민간의 문제라며 뒷짐을 지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원천적으로 법인계좌를 통한 가상화폐 거래소 운영이 금지된 것은 아니다”리며 “중소거래소가 자금세탁방지를 위해 더 노력해서 은행을 설득해야 할 일”이라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정부 정책에 대해 중소거래소의 반발은 있을 수 있지만 현재까지 제도권 밖에 있는 가상화폐 거래소 내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알 수 없다”며 “당국으로서는 당연히 소비자의 자산이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덧붙였다.
[뉴스핌 Newspim] 강필성 기자 (feel@newspim.com)